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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데스크칼럼] 이러다 인삼이 잡초된다

KBEP 2023. 3. 8. 19:29

전지현 기자

입력2023-03-07 18:22

전지현 글로벌이코노믹 유통경제 부장

인삼이 '정관장' 명찰을 단지 123년만에 풍파에 흔들리고 있다. 모기업 KT&G가 행동주의 펀드 공세에 시달리자 덩달아 맥못추는 중이다.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이하 FCP)는 인삼공사를 독립해 'K-푸드' 산업으로 키울 것을 주장하더니 급기야 차석용 전 LG생활건강 대표를 새수장으로 앞세우고 있어서다.

다행히 인삼공사 분리상장은 7일 취하됐다. 그러나 FCP측이 재추진 의사를 밝힌만큼 불씨는 남은 상태다. 한 인터뷰에 따르면 이들이 내세우는 표면상 이유는 한국 인삼 브랜드의 글로벌 경쟁력에 있다. 담배 회사가 모자회사로 연결되면서 담배 회사 임원이 인삼공사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되는 등 폐해가 있으니, 투명한 지배구조를 통해 '정관장'을 세계적 슈퍼 푸드 브랜드로 자리매김시키겠단 것이다.

두 대표의 상반된 전공(?) 때문일까, 이들의 주장에 어쩐지 묘한 느낌이 든다. 차 전 대표는 LG생활건강 사령탑을 이끌던 18년간 'M&A 귀재', '마이더스의 손' 등 화려한 수식어구가 따라다녔던 신화 속 주인공이었다. 회계사 출신의 차 전 대표는 리스크 관리에 능통한 '재무통'이자 M&A를 초기단계부터 직접 검토하고 추진한 '전략가'로 평가됐다.

덕분에 그가 재임하던 기간 LG생활건강은 17년 연속 실적이 상승했고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도 갖췄다. 이 같은 차 전 대표의 경영 노하우를 정관장에 심어 '제2의 마누카 꿀' 같은 브랜드화를 이룬다는게 사모펀드 측 목소리다. 하지만 KGC인삼공사는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대표 기업으로, 팬데믹이전까지만 해도 매년 승승장구하던 KT&G의 '효자 계열사'였다.

하늘길이 막히면서 면세점과 로드샵 등 수익성 높은 주요 판매채널들이 개점휴업 상태가 됐을 뿐이다. 따라서 해외여행 수요가 본격화될 올해부터 영업과 성장이 정상화될 곳 중 하나로 꼽혀왔다. 이를 감안하면, 올해부터 정관장에 필요한 리더십은 비용 효율화를 통해 기초체력을 키우고 실적을 높이는 숫자의 달인보단 불황에도 정면대결에 나선다는 비즈니스의 꽃 '영업사령탑'이다.

 

중국 판매비중이 높은 정관장이 올해부터 알래스카에서 냉장고를 팔듯 중국 유통망을 공격적으로 확장한다면, 팬데믹 이전보다 높은 성장까지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허철호 KGC 인삼공사 현사장은 어떤가. 허 사장은 지난 1996년 KT&G에 입사해 KGC인삼공사의 중국사업실장, 대회협력실장을 지냈다. 이후 KT&G 홍보실장, 대구본부장, 남서울본부장을 거치는 등 인삼과 담배, 해외와 국내 시장을 두루 섭렵한 이력을 갖고 있다.

실제로 허 사장은 지난해 3월 KGC인삼공사 대표로 선임된 뒤 중국, 미국, 일본, 대만 등 주요 국가 위주로 해외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에 힘입어 2022년 KGC인삼공사의 해외 수출액은 2017억 원으로 2021년보다 8.0% 늘었다. 허 사장이 추진하는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사업 전략이 서서히 빛을 발하며 글로벌 인삼전문가로서의 모습이 보여지고 있는 것이다.

인삼사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일반적인 사업과 결이 다르다. 6년근 인삼 수확에는 재배지 선정부터 토양 관리 2년, 인삼 재배 6년을 거쳐 총 8년이 걸린다. 인삼창 조직선별사는 30년 이상 경력을 갖춘 '홍삼 장인'만 할 수 있고, 재배 관리를 위한 전문 담당 직원은 2000여 계약 농가 인삼 생산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노하우를 전수할만큼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업에 대한 이해도도 높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인삼을 신성시했다. 농인들은 인삼 농사가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닌, 하늘, 사람, 땅 등 '천지인' 삼재의 기운을 받고 인삼이 자란다고 믿어 인삼을 신령스럽게 여겼다. 이 때문에 '땅의 모든 기운을 받아 아낌없이 인간에게 돌려주는 인삼의 환원정신'을 살려, 인삼 상인들은 인삼에서 얻은 막대한 부를 교육사업이나 장학금에 쓰곤 했다.

인삼이 독립운동 자금으로도 사용된 것도 이 정신과 맥을 같이 한다. 조선의 고종황제는 전매청의 홍삼수익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지원했고, 박완서 작품 '미망'에는 거상이 된 주인공 남편이 독립자금을 대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는 실화가 바탕이다.

우리 선조들은 고려인삼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극한적인 수단도 서슴지 않았다. 과거 인삼공사가 전매청이던 시절, 인삼 작황이 좋아 수확량이 너무 많으면 정부는 직접 나서 불태워 수급을 조절했다. 오늘날 글로벌 시장에서 하나의 국가 브랜드가 된 정관장을 일반 상품브랜드로만 여길 수 없는 이유다.

'귤화위지(橘化爲枳)'란 사자성어가 있다. 귤이 심어지는 곳에 따라 탱자가 된다는 말로, 기후와 풍토가 다르면 동일한 것이라도 그 성질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모펀드가 정관장을 흔들고 있다. 그러나 인삼의 진정한 역사와 숭고한 가치를 무시한 채 단순 숫자나 브랜드로만 정관장을 대한다면, K-인삼은 잡초가 될 것이다.


전지현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gee7871@g-enews.com

 

출처 : 글로벌이코노믹

기사원문 : https://news.g-enews.com/article/Opinion/2023/03/202303071554276046fd3ea9dd48_1?md=20230307194831_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