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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에 포획된 농업·농촌·농민 … 해방 위한 연대 절실

KBEP 2024. 2. 10. 10:49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2024.02.08

지난 2일 서울 대방동 스페이스살림 다목적홀에서 열린 `2024 체제전환운동 포럼' 농업세션 중 한살림연합 실무자 김진아씨(오른쪽)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http://www.ikpnews.net)

 

자본에 포획된 농업·농촌·농민의 해방. 기후위기를 야기하고 민중 생존권을 침해해 온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주체들의 농업 분야 목표다.

지난 1~3일 서울 대방동 스페이스살림 다목적홀에서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 조직위원회’ 주최로 ‘2024 체제전환운동 포럼’이 열렸다. 포럼 둘째 날인 2일엔 농업세션 ‘자본에 포획된 농업으로부터 정의로운 전환’이 열렸다.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살펴보자.

화석·생명·금융자본에 포획된 농업·농촌·농민

정치학자 채효정씨(기후정의동맹)는 현재 3농(농업·농촌·농민)이 마주한 곤경을 언급했다. 채효정씨는 농민 인구 감소 및 고령화, 소농·빈농의 외국인 노동자로의 대체, 농촌사회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 등이 최근 농촌사회의 양상이라며, 이 과정에서 농민운동의 침체도 수반되고 있다고 밝혔다.

채효정씨는 “농촌의 ‘마지막 농부’들이 사라질 때를 대비해 스마트팜·팩토리팜(식물공장)을 운영하라는 게 작금의 농촌소멸 대책이다. 소멸지역의 좌초 산업에 투자하는 건 세금 낭비라 여기고, 주민의 삶을 위해 필수적인 공공인프라를 철수시켜 소멸을 부추기는 게 현재의 농정”이라며 “사회운동 역시 이런 소멸론에 적극 반격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바라본다. 또 이들이 사라지면 농민운동의 대도 끊기지 않겠느냐고 한다”고 현 상황을 지적했다.

전업 농민이 사라져가면서 ‘투잡’, ‘쓰리잡’도 일상화됐다. 농사지으며 또 다른 일을 하는 삶의 방식을 뜻하는 ‘반농반X’는 강제된 선택이기도 하다. 농촌 내 대부분의 일자리는 저임금·불안정·임시고용직 노동이다. 안정적 생활을 하는 농촌 주민의 다수는 농민이 아니라 공무원 또는 은행원이거나 토지·건물을 가진 자산소득층이다. 농촌 마을 사이에 들어선 전원주택단지는 팔레스타인 내 이스라엘 불법 정착촌을 바라보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이것이 채효정씨가 목격한 최근 농촌의 모습이다.

채효정씨는 이와 함께 3농을 포획한 3대 자본으로서 △화석자본 △생명자본(농식품기업) △금융자본을 언급했다. 기후위기 속에서 자본은 수직통합·부채종속·금융화 등의 수단을 통해 농업을 포획하려 한다는 게 채씨의 설명이다. 식품대자본이 종자부터 비료·약재·설비·가공·유통까지 농업 전 영역을 계열사를 통해 장악하고 각 단계마다 농가에 기업 제품을 구매토록 하는 ‘수직계열화를 통한 종속’, 시설농업·기술농업으로의 전환 및 규모화 압박 과정의 ‘대출을 통한 부채종속’ 등이 자본의 농업 포획 방식이라는 뜻이다. 농민은 시설비용을 갖추는 과정에서 채무자가 되고, 금융자본은 농민의 부채에서 발생한 이자를 가져가는 금융 자본주의적 수탈을 감행한다. 채씨는 이와 관련해 신세계그룹의 사례를 이야기했다.

신세계그룹은 2021년부터 스마트팜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수직형 컨테이너에서 채소류 양액 재배를 시도했다. 신세계는 수직형 컨테이너가 비닐하우스와 달리 이동·적재가 가능한 점, 이상기후에도 안전하게 농사지으며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점 등을 선전했다. 신세계는 벤처 스타트업 엔씽과의 협업으로 해당 스마트팜을 구축했는데, 신세계 물류센터 옆에 컨테이너를 설치해 물류 이동비용을 줄였다.

채씨는 “지난해 신세계푸드는 한 농업법인에 설비비를 먼저 지원하고 5년간 토마토를 전량 납품받는 직거래 계약을 맺었다”며 “계약재배 방식에서 흔히 사용되는 설비비 지원은 공짜가 아니라 ‘당겨쓴 돈’으로, 계약기간 동안 상환해야 하는 채무로 전환될 뿐이다. 스마트팜 진출 식품대기업들은 농민을 위해 정부 지원금과 은행 대출금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밝혔다.

자본의 농업 분야 약탈은 한국뿐 아니라 범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채씨는 사스키아 사센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2005~2011년 사이 (아프리카·남미·아시아 등지에서) 2억ha 이상의 토지(멕시코 영토보다 넓은 면적)가 외국 정부·기업의 손에 넘어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러한 토지취득의 주된 원인은 팜나무 등 환금성이 높은 특용작물 수요를 맞추기 위한(즉 특용작물 재배지를 확보하기 위한) 토지 강탈이었다고 지적한 내용을 인용했다.

전남 곡성군 항꾸네협동조합 조합원 ‘연어(활동명)’씨는 귀농 청년의 관점에서 자본에 포획된 3농의 상황을 발제했다. 연어씨는 정부가 1990년대 농산물 시장개방 이래 ‘농업인 경쟁력 강화’ 목적의 대농·기업농 육성정책을 펼치면서 농촌 내 양극화가 심화된 점과 함께, 최근에도 ‘청년농업인 육성정책’ 및 스마트팜 중심 기술대응형 접근을 통해 농촌사회를 경쟁공간으로 만들고 농민 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음을 지적했다.

연어씨는 정부의 청년창업농 지원정책과 관련해 “단순히 농사짓는 것만으론 돈 벌기 어려우니 다양한 아이디어나 기술을 결합해 부가가치를 올려 농사로 ‘사업’ 하라고 청년에게 홍보하는 거다. 창농계획서 작성 시에도 어떻게 이윤을 창출해낼지 써야 한다”며 “자연에 해를 덜 끼치는 방식으로 자급하는 소농이 되고자 하는 저나 제 친구들은 정체를 감추고 ‘소설’을 써야 심사에 통과해 지원받을 수 있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농업혁신’ 수단으로 이와 함께 거론하는 것이 스마트팜·인공지능(AI)농업이다. 연어씨는 “스마트팜 ‘경영자’의 이미지를 내세워 청년을 유입”하려는 게 정부의 농업정책임을 지적하면서, ‘창농’과 ‘스마트팜 도입’을 통한 농업경영 과정은 철저히 개인에게 성공과 실패의 몫을 짊어지게 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농생태적 전환’ 실천 공간 늘리기

지난 2일 서울 대방동 스페이스살림 다목적홀에서 열린 `2024 체제전환운동 포럼' 농업세션 중 박미정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총장이 지난해 세상을 떠난 고(故) 정철균 농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상기후로 인한 탄저병 심화에 추석 당일에도 단감밭에서 일해야 했던 고인이 농막에서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는 박 사무총장의 증언에, 청중들은 하나같이 탄식했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http://www.ikpnews.net)

 

3농의 해방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참가자들은 대안을 놓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첫 번째로 거론된 것은 ‘농생태적 전환의 확산’이었다.

박미정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총장은 지난해 9월 30일 세상을 떠난 고(故) 정철균 농민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상기후로 인한 탄저병 심화에 추석 당일에도 단감밭에서 일해야 했던 고인이 농막에서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는 박 사무총장의 증언에, 청중들은 하나같이 탄식했다.

박 사무총장은 “일상화된 기후재난은 극단적인 날씨와 병해충 증가를 심화시켰다. 농민들은 늦은 저녁 시간까지 일해야 했고, 농업노동환경은 악화됐다”며 “현재 농산물 수급 위주 정책 하에선 목표 생산량 달성을 최우선 순위로 두며, 농민권리와 생산자인 농민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주요 논의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비판했다.

박 사무총장은 ‘농생태학’을 기반으로 한 농업의 정의로운 전환(농생태학 실천 농민 및 공동체 지원, 농민수당·공익직불금·바우처 등 직접지불 형태의 소득지원 확대)을 촉구한 뒤 “농민들은 기후적응형 농업, ‘맞춤형’ 기술 등 기업·기관이 추구하는 기술적 해법 이면의 기업 기득권을 폭로할 것이며, 농생태학의 생태적 혜택을 상품화·금융화하는 시도에도 맞설 것”이라고 다짐했다.

전남 곡성 농민 문영규씨는 ‘농생태적 전환’을 위한 공간을 늘리자고 주장했다. 대안적 삶(생태친화적 농사, 자립적 삶에 필요한 적정기술 구사, 먹거리공동체 구성, 자원순환 실천 등)을 살아가려는 이들이 모이는 ‘신념의 공동체’를 지역마다 만들자는 것이다. 문씨는 꼭 농촌이 아니더라도, 도시에서도 생태적 삶의 거점 공간으로서 도시텃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해방을 위한 연대

표현 방식은 달랐지만, 참가자들이 한목소리로 이야기한 것은 ‘해방을 위한 연대’의 중요성이었다.

채효정씨는 생태적 대안사회로 도달하기 위해 ‘농(農)’을 체제전환운동의 중심 의제로 설정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농촌사회의 변동과 계급분화 속에서 농촌의 새로운 주체들이 등장하는 신호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씨는 “인구가 줄고 노인세대가 떠나고 나면 농촌·농민은 소멸할 것처럼 말하지만, 농촌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반농반X(농사 지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또 다른 일을 함께하는 삶의 양식) 주체들이 나타나고 있고, 농민운동 역시 전통적 조직운동의 틈새와 바깥에서 새로운 얼굴의 농민들과 새로운 양식의 농촌·농민운동이 출현하고 있다”며 “뿔뿔이 흩어져 있는 농촌의 다양한 이주민(결혼이주여성, 외국인 농업노동자, 국내 이주민 등)들이 만나고 모일 수 있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조직화’와 ‘세력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원규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선임연구위원은 ‘운동과 운동 간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기후운동진영 내에서 농(農)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문제, 기존 농민·먹거리운동에서 기후정의에 대한 담론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문제가 맞물린 만큼, 해당 운동주체들 간의 관계 형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연어씨는 지난해 11월 11일 곡성군농민회 회원들과 함께 전국농민대회에 참가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연어씨는 “농민들은 농민기본소득·농지개혁·농산물 수입저지 등을 요구하나 정부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힘과 세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치적으로 연대해 세력을 키우고, WTO 주도하의 농산물 개방화 정책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세력화 방안으로서, 연어씨는 농활(농민학생연대활동)의 재활성화 구상을 이야기했다. 봉사활동 및 학점 취득 목적 활동으로 역할이 축소된 농활을, 과거처럼 다시금 정치적 목적하에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한살림연합 실무자 김진아씨는 “정부와 기업이 만들어주는 관계 대신, 삶의 필수요소인 먹거리부터 시작해 ‘농’을 소재로 여러 공동체에서 주체적 관계를 맺어나간다면 체제전환에 좀 더 가까워질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먹고 사는 일이 돈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이들이 있다. 사라져 가는 토종씨앗을 지키며 먹거리를 나누는 농민들이 있고, 삶의 자립을 위해 마을공동체의 땅을 가꾸는 인도 칸치푸람 지역 여성 소농들이 있으며, 시장 기준에 미달돼 버려지는 농산물(파치)의 가치를 알리는 이들도 있다. 이들의 실천이 ‘쓸모없는 일’이 되지 않고 당연한 것이 될 수 있도록, 자본의 논리가 농민의 삶을 집어삼키기 전에 그 논리가 잘못됐다는 걸 증명해 내면 좋겠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http://www.ikpnews.net)

기사원문 : https://www.ikp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628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