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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노마드] 34살에 처음 은행계좌 만든 IMF 총재, 게오르기에바는 누구

KBEP 2023. 2. 6. 07:08
입력 2023.02.05 07:00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로이터 뉴스1

이달 말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됩니다. 국제 사회에서 많은 지도자들이 전쟁을 끝내지 않고 있는 러시아를 성토하고 있죠. 국제기구 수장 중에서 이 전쟁에 두드러지게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리더로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꼽힙니다.

게오르기에바는 전쟁 자체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고, 전쟁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타격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충격이 전쟁의 후폭풍과 맞물려 경기 침체로 귀결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는 주문도 내놓고 있습니다.

두달 전 게오르기에바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미·중 갈등이 격화돼 세계 경제의 분열이 심화되고 있다”며 “우리는 더 가난하고 덜 안전한 세계로 몽유병 환자처럼 걸어가고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2의 냉전은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2023년 1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AFP 연합뉴스

강한 어조로 반냉전(反冷戰) 메시지를 전달한 건 그가 살아온 인생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불가리아 사람입니다. 냉전 시대 옛 소련 공산당 영향에 놓였던 시절을 견뎌냈습니다. 불가리아는 EU(유럽 연합) 27회원국 가운데 가장 가난한 나라입니다. 2021년 기준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1만2221달러로 EU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태어나 그것도 여성의 몸으로 IMF라는 굴지의 국제기구 수장에 오른 그의 인생 살이는 분명 들여다볼만한 하나의 스토리입니다.

◇불가리아 19세기 혁명가의 후손으로 태어나다

게오르기에바는 1953년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도로 건설을 감독하는 토목직 공무원이었습니다. 공무원이긴 했지만 그는 장기간 중병에 시달렸고, 게오르기에바는 어린 시절 가정 형편이 나빴습니다. 그는 트위터에서 “조부모는 학교 교육을 거의 못 받았고 부모는 고졸이었다”고 밝힌 적 있습니다.

그래도 주변에서 게오르기에바 집안은 제법 유명세를 치렀다고 합니다. 19세기 불가리아의 전설적인 혁명가 이반 카쇼프스키(1839~1914)가 게오르기에바 아버지의 외할아버지였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변호사이자 언론인이었던 카쇼프스키는 불가리아가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근대적인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작업을 주도했습니다. 게오르기에바에게 명망 있는 국가적 영웅의 피가 흐르는 거죠.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의 조상인 19세기 불가리아 혁명가 이반 카쇼프스키/위키미디어

유년 시절 게오르기에바는 학업에 열중했다고 합니다. 소련의 영향력에 좌우되는 가난한 동구권 나라에서 형편이 여의치 않은 집안의 아이가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도였습니다.

게오르기에바는 냉전 시대 불가리아의 명문대였던 칼마르크스고등경제연구소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쭉 밟았습니다. 학교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냉전 시대에 공산주의 사상에 집중하던 학교였습니다. 소련 체제가 붕괴된 후 지금은 불가리아세계경제대학으로 개칭했습니다. 게오르기에바의 박사 학위 논문은 ‘미국의 환경 보호 정책과 경제 성장’이었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빨리 서방의 환경 정책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냉전 시대의 민감한 이념적인 주제를 피하긴 했지만, 당시 동유럽에서는 보기 드물게 도전적인 분야를 택했습니다.

◇런던에서 34살에 처음 은행 계좌를 만들다

박사 학위를 받은 1987년 게오르기에바는 영국 문화원 장학생으로 선발돼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게 됐습니다. 런던에 갔을 때가 34살인데요. 이때 게오르기에바는 처음으로 자신의 명의로 된 은행 계좌를 개설했다고 합니다.

런던정경대에서 받은 장학금 361파운드와 불가리아를 떠나올 때 지갑에 담아온 21파운드를 학교 정문 앞 내셔널웨스트민스터은행 지점에 입금시켰다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공산권 국가의 학생이었던지라 금융거래를 안해봤다는 겁니다.

왼쪽이 1980년대 후반 런던정경대에서 유학하던 시절의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의 모습이다. 오른쪽은 2017년 세계은행 최고경영자 시절 런던정경대를 방문한 게오르기에바의 모습./세계은행

그는 후일 “(1987년 런던에서) 모든 것이 매우 새로웠고 그 이전에 경험했던 것과 너무나 달랐다”고 했습니다. 미래의 IMF 총재가 될 인물이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처음 금융 거래를 시작했다는 건 상당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게오르기에바는 세계은행 최고경영자로 근무하던 2017년 언론 인터뷰에서 “삶이 힘들수록 더 많이 웃고 지냈고, 고난은 나를 더 빨리 성숙하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게오르기에바는 소련이 해체된 1991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박사후 과정으로 환경 정책과 자원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답답한 불가리아 체제를 벗어나 자본주의가 가장 꽃피운 미국·영국에서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일찌감치 공산주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해외로 나가 동유럽에서 ‘글로벌 노마드’의 선구자격으로 활동 범위를 넓힌 게 성공의 발판이었습니다.

냉전 시대부터 공산주의 체제에 갇히지 않았던 게오르기에바는 소련 붕괴 후 불가리아를 대표하는 경제학자로 발돋움합니다. 냉전 시대가 끝나자마자 이름값을 높인 준비된 학자였습니다. 논문을 100편 넘게 저술했습니다. 그가 쓴 미시경제학은 고국 불가리아의 경제학 전공 대학생들이 가장 널리 보는 교과서라고 합니다. 공산당이 사라지자 내로라하는 세계 명문대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 제약없이 참여할 수 있게 됐습니다.

게오르기에바는 영어와 러시아어에 모두 능통하고 프랑스어도 어느 정도 구사합니다. 불가리아인 엔지니어 남편과의 사이에 딸이 하나 있습니다.

2022년 11월 한덕수 국무총리가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며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인사하고 있다./뉴시스

◇런던정경대·MIT에서 공부하고 세계은행·EU에서 근무

1993년은 정식으로 게오르기에바가 국제기구 근무를 시작한 때입니다. 그는 세계은행에서 유럽과 중앙아시아의 환경 경제학자로 채용됐습니다. 이후 세계은행 환경국장까지 쭉 승진해 환경 전략, 환경 정책 및 그와 관련한 개발사업을 담당했습니다. 2004~2007년까지는 모스크바에서 세계은행의 러시아 사무소 대표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후 승승장구합니다. 2008년 세계은행 부총재가 됐습니다. 2010년부터는 조국 불가리아를 대표해 EU(유럽 연합) 고위직으로 중용됐습니다. 2010년부터 4년간 국제 협력 및 인도적 사업 담당 EU 집행위원으로 일했고, 2014년부터 2년은 예산 및 인적 자원 담당 집행위원으로 일하면서 EU 부위원장을 겸임했습니다. EU 예산 담당 집행위원은 한해 1600억유로(약 215조원)에 달하는 EU 집행위 예산을 총괄하는 막강한 자리입니다.

2010년 EU 집행위원이 됐을 당시의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EU 의회

EU 집행위에서 커미셔너는 쉽게 말해서 장관과 같은 역할을 수행합니다. 회원국당 1명씩이니까 모두 27명이 각 분야별 실무를 총괄합니다. 게오르기에바는 조국 불가리아를 대표해 EU에서 고위 간부로 6년간 활동한 거죠. 2016년에는 반기문 유엔 총장의 뒤를 이을 후보로 거론된 적도 있습니다. 최초의 여성 유엔 사무총장이 탄생하느냐가 관심거리였지만 포르투갈 출신인 안토니우 구테흐스 현 유엔 사무총장에게 막판에 밀렸습니다.

게오르기에바는 2017년 세계은행으로 돌아와 총재 다음으로 높은 6자리 중 하나인 최고경영자가 됩니다. 세계은행에서 사실상 2인자에 해당하는 직책입니다.

◇한국계 김용 세계은행 총재 물러나자 권한대행 맡아

2019년은 게오르기에바의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시기였습니다. 그해 1월 김용 당시 세계은행 총재가 갑자기 사임을 발표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5살 때 부모를 따라 이민 간 김 총재는 2012년 아시아계로는 처음 세계은행 총재로 선출된 인물입니다. 연임에 성공해 2017년 7월부터 두번째 5년 임기를 시작한 지 1년 반만에 전격적으로 사퇴한 겁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세계은행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해 김 총재가 부담을 느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2012년 김용 당시 다트머스대 총장이 백악관에서 자신을 세계은행 신임 총재로 지명한 버락 오바마(오른쪽) 미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나란히 선 채 웃고 있다.

게오르기에바는 갑자기 김 총재를 대행해 2개월간 세계은행 총재 권한대행을 지냈습니다. 그러나 세계은행 총재 자리를 이어받지는 못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에서, IMF 총재는 유럽에서 차지하는 걸로 암묵적인 협약이 돼 있습니다. 김 총재가 세계은행 수장이 된 것도 국적이 미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김 총재의 후임으로 미국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이었던 데이비드 맬패스를 지명했습니다.

◇마크롱 도움 받아 65세 나이 제한 규정 뛰어넘어 IMF 총재 취임

그런데 게오르기에바에게 금세 다시 기회가 옵니다. 2019년 9월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가 중도 사퇴합니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로 갈아타기 위해서였죠. 유럽 정상들이 재빨리 누구를 IMF 수장으로 밀어올릴 지 논의에 들어갔습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와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 2019년 모습이다./로이터 뉴스1

이때 게오르기에바가 불가리아 출신이란 게 단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유럽 강대국 출신이라면 라이벌 국가의 견제가 심하게 마련입니다. 독일이 보내고 싶어하면 프랑스에서 탐탁지 않아하고, 프랑스가 보내려 들면 독일에서 브레이크를 거는 식입니다. 게오르기에바는 국제 무대에서 경력이 준수한 데다, EU에서 가난한 나라 출신이고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반대가 적었습니다.

유럽 정상들은 게오르기에바를 IMF 총재로 추대하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총재 나이가 65세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내부 규정이 있었는데요. 당시 게오르기에바가 66세였습니다. 나이 문제가 불거지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앞장 섰습니다. 마크롱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IMF는 총재 후보 추천 마감일을 하루 앞두고 65세 상한 규정을 폐지했습니다.

2022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AP 연합뉴스

마크롱으로서는 프랑스인이었던 전임 라가르드 총재에 이어 후임 IMF 총재도 프랑스의 입김이 닿는 인물을 추천하고 싶어했습니다. 게오르기에바를 포함해 역대 12명의 IMF 총재 가운데 5명이 프랑스인이었고, 이들 5명이 총재직을 역임한 기간을 합치면 44년에 이릅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외환 위기 시절 한국인들에게 ‘저승 사자’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미셸 캉드쉬인데요. 캉드쉬는 IMF 총재를 1987년부터 13년간 역임했습니다.

◇최초의 비(非)선진국 출신 IMF 총재

IMF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질서 재편을 논의한 1944년 브레턴우즈 조약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1945년 정식 출범했습니다. 쉽게 말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 나라가 전쟁을 일으키는 도발적 행위를 막기 위해 세계 통화·금융 체제를 안정시키자는 목적이었습니다. IMF의 쌍둥이 형제격으로 출범한 세계은행은 개발도상국의 경제 개발에 초점을 맞춘 기구죠.

미국 워싱턴DC 국제통화기금(IMF) 본부에 있는 IMF 로고/로이터 뉴스1

IMF는 세계 각국에 빌려주는 돈이 1조달러(약 1220조원)에 달하는 거대한 국제기구입니다. IMF 총재는 150국에서 온 2700여명의 IMF 직원들을 이끄는 역할도 합니다. 이런 IMF에서 게오르기에바는 최초의 동유럽 출신 총재입니다. 또한 IMF가 분류하는 비(非)선진국 출신 최초의 총재입니다. 여성 IMF 총재로는 라가르드 ECB 총재에 이어 역대 두번째입니다. 불가리아에서는 국가적 영웅이죠.

2019년은 EU가 새로 최고위직을 선출하던 시기인데요. IMF 수장이 되기 직전 게오르기에바는 EU를 대외적으로 대표하는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의 유력한 후보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2022년 7월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가 젊은 IMF 직원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고 있다./IMF

게오르기에바는 세계은행과 EU에서 국제개발 분야에서는 오랜 경험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IMF의 핵심 업무인 재정 분야의 경험은 짧은 편입니다. 그래서 IMF의 수많은 현안을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가 의문이라는 꼬리표가 달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영국이나 독일에서는 적극적으로 IMF 총재가 될 수 있도록 밀어준 마크롱과 프랑스의 입김에 약하다는 불만도 있습니다.

인간적인 면모로는 호의적인 평가가 많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유럽 언론은 “유머가 있고 따뜻한 리더십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에는 항상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을 듣는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한 적 있습니다.

◇親中 꼬리표가 약점

IMF 총재가 된 이후 게오르기에바는 친중(親中) 성향이라는 비판을 받있습니다. 특히 2018년 세계은행 최고경영자 시절 게오르기에바와 일부 세계은행 간부들이 기업환경평가를 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실무 직원들에게 데이터를 바꾸라는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이와 관련한 경위에 대해 미국 로펌 윌머헤일이 세계은행 윤리위원회 의뢰로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2022년 12월 리커창 전 중국 부총리와 만났을 때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중국 CCTV 연합뉴스

2021년 윌머헤일은 조사를 마친 뒤 보고서에서 “게오르기에바가 대만과 홍콩의 수치를 중국 본토 순위에 통합하는 등의 방식으로 중국의 관련 데이터 수치를 변경하도록 직원들을 과도하게 압박했다”고 밝혔습니다. 원래는 중국이 기업환경평가에서 85위를 해야 했지만, 데이터를 바꿔서 78위로 끌어올렸다는 게 윌머헤일의 결론이었습니다. 세계은행이 대규모 유상증자를 앞두고 중국의 협조를 얻어내기 위해 순위 조작을 했다고 윌머헤일을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중국은 애초에 지분율대로 전체 유상증자 금액의 4.68%를 내기로 했지만 실제로는 6.01%를 출연했습니다.

이 사건은 상당히 심각했습니다. IMF 이사회가 게오르기에바의 축출까지도 논의했습니다. 미국 언론들은 “친중 의혹이 불거지자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게오르기에바 총재의 전화도 받지 않고 거리를 둔다”고 보도했습니다.

2022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로이터 연합뉴스

이에 대해 게오르기에바는 강력하게 부인했습니다. 그는 “모두 전임 김용 총재 때 벌어진 일”이라는 입장을 표시했죠. 당시 게오르기에바가 강하게 반발했고, 총재직에서 끌어내릴만큼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서 IMF 이사회는 그냥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그가 중국에 친화적인 인물이 아니냐는 의심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정부의 긴축 재정 기조를 지지

게오르기에바는 ‘중국 스캔들’ 이후에는 대외적으로 적절한 메시지를 내면서 큰 무리없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중국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표현을 쓰며 조심하는 모양새입니다. 워낙 세계 열강끼리 갈등이 첨예한 시기라서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세계 경제 안정을 위해 평화를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미·중 대결 구도가 세계 경제에 악재라고 경고합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큰 소용돌이를 일으키자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2022년 10월 G20 재무장관 회의 참석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한 추경호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와 만났다./기획재정부

게오르기에바는 작년 10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추경호 경제 부총리와 만나 우리나라의 긴축 재정 정책 기조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는 “한국의 굳건한 펀더멘탈과 높은 대외 신인도를 감안할 때 과거와 같은 위기 가능성은 없다”며 “낮은 정부 부채로 기초체력이 좋고 긴축재정 기조를 통해 재정의 지속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남다른 삶을 걸어온 게오르기에바 총재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 지 궁금합니다. 이상으로 최초의 동유럽 출신 IMF 총재인 게오르기에바의 삶을 들여다 봤습니다.

 

출처 : 조선일보

기사원문 : https://www.chosun.com/economy/economy_general/2023/02/05/2RLLIXKM4RAOLBRKSQYRZ4P6Z4/?utm_source=kakaotalk&utm_medium=shareM&utm_campaign=M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