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광용의 인문교양 기행 / 하광용 에세이스트
다소 아리송한 언어의 조합인 이 제목은 어떤 작가가 쓴 작품의 제목을 나열한 것입니다. 그가 쓴 두 권의 소설 제목을 한 줄로 엮은 것입니다. 현대 프랑스 문학을 빛낸 작가로 출생에서 죽음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 광풍처럼 다이내믹한 인생을 살다 간 그였습니다. 가히 풍운아라 불릴만한 그의 이름은 로맹 가리(Romain Gary)입니다. 과연 그답게 그는 에밀 아자르(Emile Ajar)라는 역시 또 유명한 이름도 갖고 있습니다. 실은 유명하지 않은 다른 이름들도 더 있었습니다. 이렇게 알려진 두 개의 이름으로 활동한 그였기에 덕분에 그는 평생 한 작가에겐 한 번 밖에 수여 안 한다는 프랑스권 문학 작품 중 최고의 작품에게 수여하는 콩쿠르상을 두 번이나 수상할 수 있었습니다.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 그 둘이 동일인임을 모르기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로맹 가리가 그것을 노리고 숨긴 것은 아니겠지만 진실은 끝내 가려졌습니다. 생전엔 에밀 아자르의 대리인을 통해 수상 거부 의사를 밝히긴 했으나 본인이 로맹 가리와 이명일인(異名一人)이라는 사실은 끝내 밝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그가 죽고 나서야 밝혀졌습니다. 콩쿠르상 주최 측은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기네스북에나 오를 법한 발칙한 일이 벌어졌으니까요. 한마디로 문단을 농단한 것입니다. 과연 로맹 가리답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역설적으로 로맹 가리 그가 얼마나 대단한 작가라는 것을 반증하는 사건일 것입니다. 지구 상에서 한 해 프랑스어로 쏟아진 수많은 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에게 수여하는 상을 한 사람이 두 번이나 받았으니 말입니다.
1956년엔 로맹 가리가 <하늘의 뿌리>로, 1975년엔 에밀 아자르가 <자기 앞의 생>으로 그 상을 수상했습니다. 콩쿠르상(Prix Goncourt)은 음악계에서 주로 들리는 콩쿠르(concours)와는 다른 것으로 프랑스의 작가 에드몽 콩쿠르의 유언에 따라 제정된 문학상입니다. 불어를 쓰는 사람들은 불어를 모르는 우리완 다르게 미세하게라도 다르게 발음하겠지요. 그 상은 노벨문학상과 영어권 작품 중 최고의 작품에게 수여하는 맨부커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큰 상입니다.
나중에 사용한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은 결국 로맹 가리의 필명이라 할 수 있겠는데 그는 그 이름으로 활동하던 시기에도 동시에 로맹 가리란 이름으로도 작품들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시기에 로맹 가리의 작품들은 인기가 없어서 한물 간 작가의 작품으로 치부되었는데 떠오르는 신상 에밀 아자르의 작품들은 인기가 좋았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동양의 성명 철학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그래서인가 개명이 자유로워진 우리나라에서 요즘 주변에 이름을 바꾼 분들이 꽤나 많이 보입니다.
로맹 가리는 20세기 초인 1914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리투아니아, 폴란드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프랑스 남부 휴양 도시인 니스에 정착해 끝까지 프랑스인으로 살았습니다. 그의 일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명의 여자가 있다면 한 명은 그의 엄마 니나 카체프이고, 또 한 명은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유명 영화배우 진 세버그일 것입니다. 그의 엄마는 그에게 화려한 삶을 주었다면 그의 연인은 그에게 어두운 죽음을 주었습니다. 아, 물론 그녀는 연인으로서 큰 기쁨도 당연히 주었겠지요. 할리우드를 빛낸 미녀 스타인 데다가 여러 여자와 살았던 로맹 가리에게 유일한 자녀인 아들을 낳아준 여인이니까요.
본인의 작품을 영화화하면서 연을 맺게 되어 영화감독으로도 활약한 로맹 가리는 진 세버그와 이혼 후에도 흑인 인권운동에 연루되어 슬럼프에 빠진 그녀를 재기시키기 위해 그의 작품에 출연시키는 등 그녀와의 교류와 지원을 이어갔습니다. 이혼도 그런 외부적 요인으로 갈등이 증폭되어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 와중에 1979년 그녀의 자살 소식에 로맹 가리는 FBI 연루설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다 그런 혼란 속에 그 또한 1년 후인 1980년 자살로 세상을 떠납니다. 천재들의 자살이야 범부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지만 그의 죽음의 그림자에 그녀가 없었다고 단정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의 그림자엔 그에게 화려한 삶을 선사한 그의 엄마도 있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의 삶에 그녀가 차지하는 비중은 일반 모자 관계와는 달리 유별났기에 그가 죽음을 대하는 순간에 엄마도 떠올렸을 거라 추론하는 것입니다. 그의 엄마 니나 카체프는 그의 부인인 진 세버그와는 달리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억척스러운 그리고 또 억척스러운 여자로 평생을 살다 간 우리네 엄마와 같은 여자였습니다. 그 억척스러움의 방향이자 목표는 오직 그녀의 아들 로맹 가리뿐이었습니다. 사생아로 그를 낳자마자 여자로서 그녀 개인의 인생은 포기하고 오로지 그의 교육과 뒷바라지에만 일생을 쏟아부은 그녀였습니다.
<새벽의 약속(La Promesse de L'aube)>은 로맹 가리의 자서전 성격의 소설입니다. 저는 이 작품을 동명의 제목인 영화로 보았습니다. 스토리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입신양명하기까지의 그의 삶을 보여주는데 그의 주변엔 늘 엄마가 맴돌고 있었습니다. 같이 있을 땐 그것이 당연했지만 그가 혼자일 때도 그는 엄마와 함께 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육열로 치면 헬리콥터맘으로까지 불리는 우리나라 엄마를 따라올 자가 전 세계에 누가 있으랴 하지만 로맹 가리의 엄마는 그 이상으로 헬리콥터가 못 가는 곳까지 가는 드론맘이었습니다. 그가 군대에 있을 때에도 그곳까지 따라갔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제 눈엔 그가 마마보이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그런 홀어머니의 치마폭 안에서 교육만큼은 최고로 받으며 자란 그였습니다. 엄마 니나 카체프는 로맹 가리에게 그렇게 교육을 할 때마다 거의 최면 수준으로 주입을 하곤 했습니다. "너는 최고가 될 거야", "너는 최고의 작가가 될 거야", "너는 프랑스의 대사가 될 거야", "너는 최고 무공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을 거야".. 작품의 제목 <새벽의 약속>은 그가 이렇게 엄마와 한 약속으로 그녀가 희망하는 미래의 그가 되는 약속입니다.
결국 로맹 가리는 엄마에게 한 약속을 다 지켰습니다. 르네상스적 천재형 인간이기에 그것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프랑스 최고의 작가, 아니 더 나아가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고, 프랑스를 대표하며 20여 년간 스위스, 불가리아, 페루, 볼리비아, 미국 등 전 세계를 도는 외교관이 되었으며, 젊은 시절엔 2차세계대전에 공군으로 참전해 전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습니다. 외교관을 마치고 한 할리우드 영화감독은 보너스였습니다. 엄마의 꿈을 모두 이뤄준 자랑스러운 아들이 된 것입니다.
문제는 그의 엄마가 그런 그의 모습을 하나도 보지 못하고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녀는 오로지 헌신만 했을 뿐 그로 인한 영광은 보지도, 누리지도 못했습니다. 아들이 엄마의 죽음을 알면 혹여 흔들릴까 싶어 죽기 바로 전 전장의 로맹 가리에게 보낼 편지를 미리 대량으로 써놓고, 죽은 후에도 계속해서 타인을 통해 그녀의 사랑과 격려가 담긴 편지를 아들에게 보낸 것은 정말 희생의 백미였습니다. 저승에 가서도 이승의 아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뒤늦게 그것을 안 성공한 아들 로맹 가리의 심경이 어땠을까요?
이런 엄마의 교육으로 로맹 가리는 우리가 아는 로맹 가리가 되었습니다. 그가 작가로서 우리에게 이름을 알린 것은 <유럽의 교육(Education Europeenne)>이라는 그의 첫 소설인데 이 책이 대박이 난 것입니다. 전 지금 그 책의 독서를 마치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실 <새벽의 약속> 영화는 2년 전에 보았습니다. 그 영화 속에서 이 <유럽의 교육>을 진력을 다해 쓰는 로맹 가리가 나오기에 관심을 갖고 바로 읽어야지 했던 책인데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구입을 해서 읽게 된 것입니다.
로맹 가리는 이 작품을 2차 세계대전 전쟁터에 나가 전투기를 타고 독일군과 전투를 하며 틈틈이 썼습니다. 주경야독이 아니고 주전야독(晝戰夜讀)하듯이 미친 듯이 써내려 간 것입니다. 그 사이 엄마와는 편지로 이 작품에 대해 계속해서 필담 디스커션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1945년 1월 대전이 끝나기 전 프랑스에서 <유럽의 교육> 초판이 발행됩니다. 책과 함께 세상에 로맹 가리란 이름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프랑스를 비롯하여 전 세계로 뻗어 나가 다양한 언어로 인쇄되는 작품이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정작 로맹 가리가 성공한 그 순간을 가장 보여주고 싶고, 자랑하고픈 사람인 엄마는 그 순간을 못 보게 된 것입니다. 이 책은 본격 출간 1개월 전인 1944년 12월 영국에서 <분노의 숲(Forest of Anger)>이라는 제목으로 먼저 선을 보였습니다.
<유럽의 교육>은 레지스탕스 소설입니다. 독일의 히틀러와 소련의 스탈린이 자존심을 걸고 한판 크게 벌인 2차세계대전 동부 지구의 최고의 전투인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배경으로 활동하는 폴란드의 빨치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배경과는 달리 엇갈린 이념이나 참혹한 전쟁이 묘사되지는 않습니다. 그 안에 있는 다양한 군상과 사건들의 인간사를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저는 이 책의 제목이 주는 선입감으로 인해 무슨 교육 관련 서적인 줄 알았습니다. 장 자크 루소의 <에밀> 같은 책으로 인지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로맹 가리가 그의 엄마에게 교육되는 과정을 영화 <새벽의 약속>을 통해 보았기에 그런 선입견까지 더해서 더 그랬습니다. 이래서 무식은 늘 문제가 됩니다. 제목으로만 보면 영국에서 먼저 출간해 베타 버전 성격이 되어버린 <분노의 숲>이 더 선명해 보입니다.
<유럽의 교육>도 <새벽의 약속>처럼 로맹 가리의 자전적 성격이 들어간 작품으로 저는 해석을 합니다. 이 책은 야네크라는 소년이 주인공인데 정탐이 주 임무인 그가 빨치산 소년병으로 활동하며 14세에서 15세까지 겪는 전쟁통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조직 안엔 그보다 10살 위인 도브란스키란 대학생 빨치산이 나오는데 그는 그곳에서 글을 씁니다. 쓴다고만 말로, 아니 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는 도브란스키가 쓴 글을 작품 안에서 직접 간간이 보여줍니다. 소설 안에 소설이 들어있는 특이한 구조의 작품입니다. 마치 꿈속에서 또 꿈을 꾸는 영화 <인셉션>처럼 말입니다. 책 끝부분에 도브란스키는 총탄을 맞고 죽게 되는데 그는 죽어가며 야네크에게 그가 전장에서 쓰던 작품의 완성을 부탁합니다. 그가 쓰던 그 책의 제목이 <유럽의 교육>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성장통을 겪는 야네크의 이야기가 로맹 가리의 성장 이야기로도 보여 그의 자전적 소설 성격도 있다고 저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어가며 야네크에게 <유럽의 교육> 책의 완성을 부탁하는 도브란스키는 로맹 가리의 엄마로 보입니다. <새벽의 약속>에서 엄마가 로맹 가리에게 죽는 순간까지 약속을 걸 듯 도브란스키는 야네크에게 약속을 건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결국 야네크로 분한 로맹 가리는 같은 전쟁인 2차세계대전 전쟁터에서 <유럽의 교육>을 완성했습니다. 픽션과 논픽션이 혼재된 로맹 가리의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가 <새벽의 약속>과 <유럽의 교육>에 이렇게 스며있는 것으로 제 눈에 보였다는 것입니다. 소설 속 야네크도 현실의 로맹 가리처럼 도브란스키와의 약속을 지켰을 것입니다.
<유럽의 교육>은 인간의 존엄성, 형제애, 그리고 자유 같은 아름다운 이념들이 태어난 문명의 요람 유럽의 대학에서 펼쳐지는 교육만이 교육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총살, 구속, 고문, 강간 등 유럽의 아름다운 삶을 파괴하는 것도 교육이라고 강변합니다. 대학과 도서관, 그리고 대성당 같은 곳에서 훌륭한 교육이 이루어지지만 결국 그러한 교육은 자기한테 아무 짓도 안 한 사람을 죽이는 데 소용이 될 만한 그럴싸한 이유와 용기를 찾아내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입니다. 결국 인격과 문명의 파괴를 위한 교육이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그 속에서 희망의 메시지도 이야기합니다. 전쟁은 없어지고 새로운 세상이 올 거라고, 전 유럽이 자유를 찾고 서로 손을 잡을 것이라고, 그리고 비옥하고 건설적인, 지금까지는 없던 정신의 르네상스가 올 것이라고 작품 속 인물을 통해 염원합니다. 전쟁 속에서 신문명의 시대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전후 파괴된 낡은 유럽을 버리고 새로운 유럽으로 가기 위한 교육을 작가인 로맹 가리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 : <유럽의 교육> / 로맹 가리 지음 / 한선예 옮김 / 책세상 출판)
제가 로맹 가리의 자살 안에 그의 전 부인인 진 세버그 이외에 그의 엄마도 있을 거라 또 추론하는 것은 그가 모든 것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엄마와의 약속을 다 지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그에겐 더 이상 이룰 것도 없고 목표도 없었을 것입니다. 66세가 적은 나이도 아니었겠고요. 실제 로맹 가리의 아들 디에고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만들 것도, 말할 것도, 할 것도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완성되었고, 그에게는 진행 중인 작품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태연히 얘기하는 것 같은 그이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엄마와 아버지가 1년 사이로 연속 자살해 고아가 된 아들 디에고의 심경은 어땠을까요? 불현듯 지금 그의 소식이 궁금해집니다. 아무튼 로맹 가리는 이런 이유까지 들어가 그가 자살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천재의 의식 세계는 다르니까요.
로맹 가리는 1980년 권총으로 자살했고 그 20여 년 전인 1961년 미국의 헤밍웨이는 엽총으로 자살했습니다. 둘 다 모든 것을 다 이룬 사람들입니다. 로맹 가리의 유서는 이렇게 끝납니다. "마침내 나는 나를 완전히 표현했다". 마치 엄마에게 말하는 듯합니다. "엄마, 당신의 자랑스런 아들을 보세요"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엄마와의 약속을 다 지킨 로맹 가리의 자살에 역(逆)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까지 작동했다고 하면 너무 많이 나간 것일까요? 그리고 혹시 그때까지 로맹 가리의 엄마가 살아있었다면... 엄마는 그런 아들에게 그의 죽음을 막는 어떤 새로운 약속을 또 걸었을지도 모릅니다.
하광용은 대학 졸업 후 오리콤, 이노션 등에서 광고인 한 길로만 가다가 50세가 넘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세상사 이때 저때, 이곳 저곳, 이것 저것, 이사람 저사람에 대한 인문학적 관심이 많다. 박학다식한 사람은 깊이가 약하다는 편견에 저항한다. 그래서 그는 르네상스적 인간을 존경하고 지향한다. 박학과 광고는 어찌보면 ‘넓다’라는 측면에서 동일성을 지닌다. 최근 ‘지명에서 이순으로의 기행’이라는 인문교양 에세이집을 출간한 그는 태평양인문학교실의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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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스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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