Майк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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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文化/샘터

나는 이제 한국의 나머지 다른 것은 더 보지 않아도 알겠다

KBEP 2022. 4. 24. 08:13

“신은 죽었다.”고 말한 독일의 시인이며 철학자였던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 미쳐서(치매) 죽었습니다. 그의 말년(末年) 모습은 강렬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1889년 겨울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휴가를 보내던 니체는 하루는 집을 나와 우체국으로 편지를 부치러 가다 광장에서 매를 맞고 있는 늙은 말을 발견합니다. 무거운 짐마차를 끌고 가던 말은 미끄러운 빙판길에서 그만 발이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겁먹은 말은 마부(馬夫)가 아무리 채찍을 휘둘러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마부는 화가 나서 더욱 세차게 채찍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 광경을 본 니체는 갑자기 마차로 뛰어들어 말의 목에 팔을 감고 통곡을 하였습니다. 그 장면을 우연히 발견한 지인이 그를 집으로 데려다 줬습니다. 그는 침대에서 이틀을 꼬박 누워 있다가 몇 마디 말을 웅얼거렸습니다. “어머니, 전 바보였어요." 그 후로 11년 동안 정신 나간 상태로 침대에 누워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니체가 늙은 말을 부둥켜안은 것은 존재에 대한 삶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지 않았을까? 짐마차를 끌고 가는 말과 삶의 등짐을 지고 가는 자신을 같은 처지로 여기고 감정이입(感情移入)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지도 못한 채 채찍을 맞아야 하는 삶이라면 얼마나 고달플까요? 그것이 가죽 채찍이든, 세파(世波)의 채찍이든 말입니다. 니체가 눈물샘이 터져 울부짖은 것이 바로 그 순간입니다.

1960년 방한한 미국 소설가 펄벅(Pearl Sydenstricker Buck, 1892~1973)은 니체와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녀는 늦가을에 군용 지프를 개조한 차를 타고 경주(慶州)를 향해 달렸습니다. 노랗게 물든 들판에선 농부(農夫)들이 추수(秋收)를 하느라 바쁜 일손을 놀리고 있었습니다. 차가 경주 안강(安康) 부근을 지날 무렵, 볏가리를 가득 실은 소달구지를 목격하였는데, 그 옆에는 지게에 볏짐을 짊어진 농부가 소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차에서 내려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펄벅이 길을 안내하는 통역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저 농부는 왜 힘들게 볏단을 지고 갑니까? 달구지에 싣고 가면 되잖아요?” 그러자 통역하는 사람이 “소가 너무 힘들까 봐 농부가 짐을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요.” 펄벅은 그때의 감동을 글을 옮겼습니다.

"나는 이제 한국의 나머지 다른 것은 더 보지 않아도 알겠다. 볏가리 짐을 지고 가는 저 농부의 마음이 바로 한국인의 마음이자, 오늘 인류가 되찾아야 할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이다. 내 조국, 내 고향, 미국의 농부라면 저렇게 힘들게 짐을 나누어 지지 않고, 온 가족이 달구지 위에 올라타고 채찍질하면서 노래를 부르며 갔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농부는 짐승과도 짐을 나누어지고 한 식구처럼 살아가지 않는가.”

동물이든, 사람이든 모든 생명체는 자기 삶의 무게를 지고 갑니다. 험난한 생을 견뎌내는 그 일만으로도 충분히 위로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하물며 같은 종의 인간끼리라면 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그런 마당에 최근에는 SNS에서 비수(匕首) 같은 말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늙은 말에 채찍질하는 마부(馬夫)일까요? 아니면 등짐을 나눠지는 농부(農夫)일까요?

가진 것도 없고, 배움도 많이 못해도 더불어 살고 나눔과 배려하는 마음을 실천하는게 우리 선조들의 덕목과 지혜가 아닐까 합니다.

온라인상이지만 지금 모두가 어려운 시기이니 글이라도 서로의 등짐을 나누어지고, 격려하는 인터넷의 농부가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출처 : 아름다운사람들의 모임 (밴드)

원문 : https://band.us/band/70725833/post/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