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팬데믹이나 전쟁이라는 거대한 재난에 늘 직면하지만, 이를 예측하거나 피할 수 없는 존재다.
초기 로마 역사가들은 무언가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고, 중국은 '천명'을 통해 왕조가 순환된다고 믿었다. 근래에는 계량경제사나 역사동역학(Cliodynamics)의 신봉자들이 이러한 순환론적 접근법을 부활시키려고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모델들은 분명 예견됐을 법한 사건들이 실제로는 벌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설명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역사는 모델로 만들어 설명하기엔 너무나 복잡한 과정이다. 한국인들은 혹시 모를 한국전쟁이 가장 큰 파괴적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 재앙의 패턴을 찾기 어려워한다. 재난이 벌어지는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상상력은 결핍돼 있으며 전쟁이나 위기에 맞서 싸우려 하며 위협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또 행동하는 데 있어 우물쭈물하고 결코 오지 않을 확실성을 한없이 기다린다.
이 때문에 인류는 예측 모델을 만드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는 재난이 닥쳤을 때 더 빠르고 더 나은 대응을 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래를 보려고 하는 것보다 빠르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위기 분석 전문가인 나심 탈레브는 우리의 한정된 경험에 기초해보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건을 '검은 백조'라고 일컬었다. 대응이 중요하다. 탈레브는 대재앙이 닥치면 어떤 국가는 '깨지기 쉬운(fragile)' 상태가 되고, 어떤 국가는 회복 재생력이 크며, 어떤 국가는 재난을 버텨내고 더 강해지는 '안티프래질(anti-fragile)'이 된다고 강조했다.
역사는 다음 팬데믹(범유행 전염병)이 언제 일어날지, 전쟁이 언제 날지 알려줄 수 없지만, 팬데믹과 전쟁으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는 알려줄 수 있다. 나는 코로나19가 처음 발발할 당시 "사망의 파동을 예상하고 최소 2년은 갈 것으로 전망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한 적이 있다. 역사는 타이밍을 알려주진 않지만 재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인류는 역사의 교훈을 여기서 찾아야 한다. 팬데믹으로 혼돈에 빠진 국가는 많다. 예를 들어 에티오피아는 내전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는 데다 팬데믹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약한 국가들이 전염병에 더 취약해졌다. 반면 잘 대응한 국가들도 있다. 한국을 포함해 대만, 이스라엘, 북유럽 국가들을 꼽을 수 있다. 다만 한국은 초기 억제에 성공하다 보니 백신 접종을 서두르지 않아 오늘날 코로나19 억제에 실패했다.
이들 국가는 외부 위협에도 불구하고 매우 회복력이 강한 국가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외부로부터 위협이 없다 보니 내부 논쟁에 수많은 에너지를 쏟았고 이로 인해 대응이 늦었다. 더 흥미로운 사례는 중국이다. 중국은 매우 무자비한 '제로 코로나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이로 인해 경제에 타격을 받고 있다. 중국은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향후 10년간 고군분투할 것이다.
팬데믹이 우리 앞에 와 있는 재앙이라면, 전쟁은 앞으로 찾아올 재앙이다. 올해 우크라이나에서 발발한 전쟁은 아마도 내년에는 대만에서, 그 이후에는 이란에서 발발할 수 있다. 러시아가 군대를 철수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문제는 외교적인 돌파구마저 없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인류가 미국과 중국 간 또 다른 냉전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냉전(cold war)'이 '열전(hot war)'이 된다고 해도 놀라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 대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조만간 전쟁을 벌이더라도 인류는 놀라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2~3년 내 주요한 전쟁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전쟁 발발 가능성이 크더라도 2차 냉전이 1차 냉전보다 대재앙으로 번질 위험은 비교적 높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 스탈린은 호전적이어서 핵무기를 급속히 발전시켰고 지정학적으로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를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하지만 중국은 핵무기만 놓고 볼 때 미국에 한참 뒤처져 있다.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인류에 대한 위협이나 세계적인 재앙으로 격상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크지 않다고 본다. 당장 직면한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은 기술을 둘러싼 스파이 활동과 비군사적 경쟁이다. 그동안 중국은 서양의 지식재산권을 활용해 서양을 따라잡았다. 이제 서양은 중국인의 접근을 차단하고, 줄이려는 신냉전의 발판 위에 서 있다. 인공지능, 양자컴퓨팅과 같은 연구에 있어서도 중국이 앞서지 않도록 더 노력하고 있다.
나는 책 '둠: 재앙의 정치학'을 통해 미국이 이미 대응에 나선 상태라고 분석했다. 미국은 소련과 1차 냉전을 통해 교훈을 얻었다. 그것은 기술 경쟁에 매우 집중한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재래식 전쟁은 베트남전에서처럼 매우 많은 비용이 투입되고 승자를 구분하기 어렵다. 미국은 동맹국을 중심으로 냉전을 벌이고 전선을 기술 전쟁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더욱이 2013년 이후 중국 금융기관들이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총 4610억달러를 외국에 대출했지만, 국제결제시스템에서 달러의 지배력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숙제다. 1940년대 헤게모니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바뀔 때는 미국 달러가 국제준비통화가 될 준비를 끝냈지만 오늘날 중국 인민폐는 갈 길이 먼 상태다.
그럼에도 재앙의 징조는 도사리고 있다. 대만을 둘러싼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대만과 중국 본토의 통합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자, 그가 임기 제한을 없앴던 명분이기도 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여력이 있는지에 대해 미국 국방부는 회의적이긴 하지만, 중국 인민해방군은 실력을 쌓아가고 있다.
그레이엄 엘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업 죽이기가 일본에 대한 석유 수출 금지가 절정에 달했던 1939~1941년의 대일본 제재와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일련의 봉쇄 조치들 때문에 궁극적으로 전쟁이라는 도박을 택했는데, 중국 기업의 옥죄기가 전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냉전 없이 이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상태가 이어질 것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대표적으로 에릭 슈밋 전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삼성과 애플이 그랬듯이 미국과 중국 역시 경쟁과 동시에 협력을 지속하는 이른바 '협쟁(coopetition)'의 모델로 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몇 해 전 나는 한 국제회의에서 현시점을 2차 냉전이라고 진단한 적이 있다. 그때 중국 참석자 중 그 누구도 그것을 반박하지 않아 놀란 기억이 있다. 그때 왜 반박을 안 하느냐고 한 중국인 국제기구 수장에게 물었더니 "당신 말에 동의하기 때문에 반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만약 중국이 사실상 냉전을 선언한 상태라면, 미국이 중국과 냉전을 치를지는 이제 미국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냉전이 시작되는 지점에 서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국과 같은 수출 주도형 개방경제 국가들은 전 세계의 자유무역 수준이 높을 때 성장하기 쉬운 구조를 갖고 있다. 하지만 2차 냉전이 벌어지면 미국은 일본, 호주, 인도 등을 주축으로 안보를 우선시할 것이다. 한국이 늦지 않게 살펴봐야 할 사례는 호주의 선택이다. 호주는 양자택일에서 안보를 우선시하면서 베이징을 적대시하는 결정을 내렸다.
호주는 전통적으로 중국과 관계가 좋았다. 중국에 광물과 농산물을 수출하고 중국으로부터 값싼 소비재를 수입했다. 하지만 호주는 미국 편에 서기로 했다. 호주와 중국은 코로나19와 홍콩보안법을 놓고 갈등을 겪었다. 호주는 이후 4자 안보 대화인 쿼드에 참여하기로 결정했고 한발 더 나아가 미국, 영국과 함께 3자 안보 파트너십인 오커스(AUKUS)를 발족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쇠고기 수입 규제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고, 이후 보리와 와인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며 석탄마저 수입을 금지시켰다. 전문가들은 호주의 대중국 수출액 중 25%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을 정도다.
한국은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기 때문에 중립이 어려운 국가다. 대다수 국가는 이러한 선택을 할 경우 무역보다 안보를 택한다. 현재 한국에 필요한 것은 미국과 안보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 충돌하지 않는 전략이다. 신냉전 속에서도 중국과 무역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10년 전보다 한국이 외교적으로 어려운 위치에 놓였지만 능숙한 외교로 헤쳐나가는 것이 꼭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글 = 니얼 퍼거슨 스탠퍼드대 교수 / 정리 = 실리콘밸리 이상덕 특파원]
[ⓒ 매일경제 & mk.co.kr,
'지식창고,뉴스 > 월드 뉴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유식의 온차이나] 우크라이나 늪에 빠진 중국 (0) | 2022.03.28 |
---|---|
EU 27개 회원국, 앞으로 가스 공동 구매…러 의존도↓ (0) | 2022.03.28 |
약소국 설움 달래준 우크라 국민음식 ‘살로’[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0) | 2022.03.21 |
전쟁, 곡물대란, 금리인상, 중국봉쇄…사면초가 세계경제 (0) | 2022.03.16 |
우크라이나 다음은 대만?… 中 아킬레스건은 싼샤댐 (0) | 2022.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