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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기후위기, 영조 때부터 내려온 ‘인삼재배 방식’까지 바꾸다

KBEP 2021. 6. 7. 15:40

박수지 기자 등록 :2021-06-07 04:59

전통 ‘경사식 해가림시설’ 아침 빛 받고 낮 직광 피했으나
지난해 역대 최장 기간 장마로 인삼 뿌리가 쉽게 녹아버려
8년 만에 ‘소형터널 해가림’ 개발…비싸지만 생산량 80% ↑

 

인삼.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인삼은 서늘한 날씨를 좋아하는 반음지 식물이다. 한해 농사를 망쳤다고 해서 훌훌 털고 이듬해 새롭게 시작할 수도 없다. 짧게는 2~3년, 길게는 6년까지 무탈히 키워야 상품성 있는 작물로 수확할 수 있다. 다른 작물과 구별되는 이 두가지 인삼재배 요건을 고려하면, 최근의 기후변화 흐름은 한국 효자 수출 상품 1호로 수백년간 명맥을 이어온 ‘고려인삼’에 명백한 위기다. 앞서 2016년 농촌진흥청은 기후변화를 염두에 둘 때, 2020년대 국토에서 인삼을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이 75.8%라면 2060년대엔 23%, 2090년대엔 5.1%까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기후변화는 조상의 지혜를 바탕으로 이어온 인삼 재배방식에도 혁신을 요구한다.

 100년 전통 재배시설 혁신 중

국내 인삼 생산량의 약 30%를 수매하는 케이지씨(KGC)인삼공사는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기후변화에도 더 잘 버틸 수 있는 품종 개발과 시설 개선이다. 품종과 관련해선 2019년 개발한 온난화에 상대적으로 강한 품종 ‘선명’ 등을 내놓은 바 있다. 이번엔 최소 100년 넘게 이어온 인삼재배 시설을 바꾸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인삼 재배농가는 현재 대부분 ‘경사식 해가림시설’을 쓰고 있다. 막대 두개 높이를 달리해 비스듬히 세워 차광막과 막대의 각도가 120도를 이루도록 만든 시설이다. 이렇게 만든 덕택에 아침의 부드러운 빛은 인삼이 그대로 받지만, 한낮의 직사광선은 피할 수 있다. 정확한 각도까지 포함된 이 해가림시설의 문헌 기록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남아 있다. 최소 100년은 된 ‘인삼 맞춤형 볕가리개’인 셈이다. 관련 연구진은 조선 시대 영조 무렵부터도 이와 유사한 방식의 해가림시설을 써서 인삼을 재배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경사식 해가림시설도 날이 갈수록 변화무쌍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새로운 시설이 필요하게 됐다. 특히 지난해처럼 역대 최장 기간의 장마에 인삼 뿌리는 쉽게 녹아버렸다. 기존 경사식 시설은 비가 거세게 내리면 빗물이 고스란히 인삼에 직접적으로 들이닥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빛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시설 특성상 앞뒤 일조량이 고르지 않아 같은 밭 안에서도 생육 편차가 큰 점도 문제였다.

 

‘소형 터널’ 구조…생산량 80% 늘어

 

지난 2일 경기 안성에 있는 인삼공사의 인삼연구시험장에서 인삼공사가 8년 끝에 개발했다는 재배시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형 터널 해가림시설’이란 이름이 붙었다. 작은 터널 형태의 차광막 아래 인삼 수백 뿌리가 자라고 있었다. 일반적인 비닐하우스보다 다소 작은 폭 3m, 높이 2.3m 크기인 대신 앞뒤가 터널처럼 뚫려 있다고 떠올리면 쉽다. 이날 최고기온 약 30도까지 오른 낮 1시 무렵 시설 안에 들어가자 바깥과 확연히 차이가 났다. 차광막은 빛 투과율을 20%로 낮추는 데다, 터널이 통풍이 원활하도록 ‘바람길’을 만들어줘서다. 3년근 인삼밭 사이 고랑에 쪼그려 앉았더니, 불과 2m 밖에서 느껴지지 않던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인삼은 비를 직접 맞을 일이 없어졌고, 바람길이 있어 태풍이 들이닥쳐도 그대로 빠져나갈 수 있게 됐다.인삼공사의 시험 결과, 기존 경사식 해가림시설 대비 소형 터널에서 수확한 인삼 생산량이 약 8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형 터널 해가림시설을 개발한 인삼공사 R&D(연구개발)본부 인준교 책임연구원(농학박사)은 “애초에 기후 재해에 대응하기 위해 고안했지만, 기존 시설보다 볕을 잘 차단하면서 양지성 식물인 잡초도 덜 자라는 것으로 나타나, 농가의 노동력도 아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인 박사는 이어 “초기 비용이 기존 시설보다 다소 비싸 농가에서 꺼리면 어떡하나 했지만, 생산성이 훨씬 뛰어나다는 점 때문에 농가에서 도리어 반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삼공사의 계약농가로, 새로 소형 터널 해가림시설을 처음 도입한 최성관(57)씨는 “해가림시설 도입으로 태풍이나 폭염이 잦은 여름철에도 안정적으로 인삼을 재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최장 30년까지 시설을 재활용할 수 있게 된 것도 새 시설의 이점이다. 인삼 농사는 3~6년간 한 땅에서 경작하고 나면, 다른 땅으로 옮겨야 한다. 이때 목재를 쓴 기존 시설은 대부분 버려졌다. 그러나 소형 터널 해가림시설은 내구성이 강한 철제파이프를 사용해, 옮겨서 다시 설치하기 쉽도록 했다. 인삼공사는 예산·괴산·안성 계약농가에서 먼저 시범 운영한 뒤, 이를 표준 해가림시설로 등록해 다른 농가에도 확산시킨다는 계획이다.

 

기후위기, 어느 농가에겐 기회?

기후변화로 아열대 작물 재배를 적극 도입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 기후위기가 농가에 새로운 기회도 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움직임이다.6일 농촌진흥청 집계 자료를 보면, 국내 아열대 과수의 재배면적은 2017년 109.4㏊를 시작으로 해마다 늘어 2019년에는 170.0㏊를 기록했다. 아열대 기후대는 연중 가장 추운 달의 평균기온이 섭씨 영하 3도에서 18도 사이로, 월평균 기온이 영상 10도가 넘는 달이 8개월 이상인 지역을 가리킨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는 2060년에는 국내 경지면적의 26.6%가, 2080년엔 62.3%가 아열대 기후 지역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아열대 작물 재배면적과 생산량도 늘어날 여지가 큰 셈이다.농촌진흥청이 지난해 2월 집계한 국내 아열대 과수 재배 현황을 보면, 망고·백향과(패션프루트)·바나나 순으로 재배면적이 넓었다. 최근 몇년 새 ‘제주 망고’는 유명 호텔 빙수에는 반드시 들어가는 과일로 각광받으면서 ‘고급 지역 특산물’ 이미지가 굳어졌다. 최근 3년간 망고·파파야·용과·올리브의 재배면적은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파파야는 2018년 3.5㏊에서 2020년 15.1㏊로 재배면적이 331.4% 증가했고, 올리브는 2018년 0.2㏊에서 2020년 2.5㏊로 2년 만에 10배 남짓 늘었다.농촌진흥청은 “지자체에서 신소득 작목 발굴·육성을 위한 지원이 이뤄지고, 국내에서 재배된 고품질 신선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망고는 제주도와 전남 영광, 파파야는 경남 진주, 충남 부여에서 주로 재배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남 장성군은 올해 3월 장성미래농업대학에 전국 최초로 ‘아열대학과’를 개설하기도 했다. 장성군은 이곳에서 지역 농민을 대상으로 정보 공유와 현장 실습을 진행하면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국가 미래농업을 선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안성/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출처 : 한겨레

기사원문 : https://www.hani.co.kr/arti/economy/consumer/9982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