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승인 2021. 03. 22. 14:24
“20대에 떠난 독일 여행 중 친구를 따라 우연히 태권도 도장에 들어갔어요. 12살 때부터 평생 해오던 유도, 가라테와는 다르게 화려한 발기술과 혹독한 훈련방식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때부터 태권도에 빠졌어요.”
노베르트 모쉬 박사(69)는 48년간 오스트리아에서 태권도를 전파하고 있다. 23살 때는 한국에 있던 이광배 사범을 초청해서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에 최초로 단군태권도연맹을 창설했다. 일본학과 언론학 박사인 그는 부인 강유송 의학박사(태권도 3단)와 두 자녀(각 태권도 5단, 4단) 모두 태권도 유단자이다.
“지금 한국은 삼성, LG, 현대자동차, 케이팝(K-Pop) 의 영향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나라지만 70년대 한국은 가난하고 알려지지 않은 국가였죠. 첫해 태권도를 전파할 땐 정말 힘들었습니다.”
모쉬 박사 말에 의하면 그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선 태권도라는 이름조차 낯설었다고 한다. 태권도장이 간혹 있었지만 ‘코리안 가라테’라고 불렸을 정도다. 하지만 1년이 지나자 태권도 자체의 매력을 알게 된 사람들이 늘어나게 됐고 그렇게 모쉬 박사 도장은 자리 잡았다.
도장은 1997년부터 2001년까지 국가대표 훈련장으로 쓰였다. 수천 명이 넘는 제자들은 오스트리아 전역에 퍼졌고 각자 도장을 차려 태권도를 널리 알리고 있다. 이런 성공에도 그는 항상 유럽에 ‘세계태권도한마당’ 같은 태권도 축제가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한마당축제에 가면 태권도뿐 아니라 한국 문화 전체를 경험할 수 있어요. 일반 경기는 승자를 가리기 위한 것이지만 한마당 축제는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어요. 태권도 정신이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세계태권도한마당’은 ‘한마당’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단순 겨루기장이 아니라 한국 전통공연, 태권도 시범, 태권체조 등 다양한 볼거리로 구성돼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태권축제다.
모쉬 박사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2014년부터 ‘비엔나 태권도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바람대로 매년 150여 명의 참가자와 300명~500명의 관중이 참석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현지인과 교민 뿐 아니라 여러 유럽 국가와 캐나다에서 참가한다. 더 이상 지역축제가 아니기에 올해부터 ‘오스트리아 한마당축제’로 이름을 바꿨다. 아쉽게 작년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축제가 취소됐지만 올해는 5월 1일 유튜브를 통해 ‘한마당축제’를 진행할 계획이다.
그는 오랫동안 태권도를 보급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국민포장을 수상했다. “국민포장은 저에게 굉장한 영광입니다. 태권도를 알리기 위한 저의 노력이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쁩니다”고 소감을 밝혔다.
코로나19는 오스트리아 태권도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작년 상반기는 몇 개월간 도장 문을 닫아야 했다. 하반기부터 야외 훈련이 허용됐지만 예전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기는 힘들었다. 특히 겨루기 훈련은 접촉 문제로 금지됐다. 현재도 야외 수업은 진행할 수 있지만 더 이상 신입회원은 없다고 한다. 모쉬 박사는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압박감에 시달리지만 태권도 도장은 계속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태권도를 시작하면서 거의 매년 한국에 갔어요. 꾸준히 승단시험을 쳤고 그 과정에서 많은 태권도인을 알게 됐어요. 한국은 내게 제2의 국가이고 태권도는 인생입니다. 태권도는 발차기, 격파가 전부가아니에요. 겨루기와 품새를 배우는 과정에서 신체와 정신의 조화를 찾을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태권도는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에게 좋은 무도예요.”
1996~2001년 오스트리아 태권도협회장(현 명예회장)을 지내며 어느 덧 나이 일흔이 다 됐지만 몸이 허락한다면 계속해서 태권도를 수련할 것이라는 그는 현재도 비엔나에서 태권도장 ‘무도관’을 운영한다.
모쉬 박사를 비롯한 많은 태권도 전파자 덕분에 오스트리아 전역에만 공식 태권도 협회가 현재 40여 개를 넘고 8000명 이상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비공식적으로 태권도를 접하는 인구는 훨씬 많을 걸로 예상된다
손혜진 바젤 통신원 h.son@asiatoday.co.kr
출처 : 아시아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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