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선교
지난 6월 13일(월)부터 16일(목)까지 독일 중부 헤센 주의 다름슈타트(Darmstadt)라고 하는 도시에서 유로비전포럼이 개최되었습니다. 유럽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 과연 성경적인가? 라는 주제로 개최된 이 모임에는 유럽과 한국 그리고 미국과 호주에서 오신 여러 목회자들과 선교사님들이 함께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다름슈타트는 독일에서 매우 특별한 도시입니다. 나찌가 집권한 이후 1933년 초반에 모든 유대인들 상점 문을 닫게 만든 최초의 도시였습니다. 1942년에는 이 도시에 살던 3,000명의 유대인들이 제일 먼저 근처의 Liebigschule라는 캠프로 이송되었고 나중에는 강제 노동 수용소에 보내져 대부분 목숨을 잃었습니다. 또한 당시 이 곳에서 많은 무기를 생산했기에 1944년 9월 11일 영국군의 집중 폭격으로 약 11,00012,500명의 시민들이 죽었고 66,00070,000명이 집을 잃게 되었으며 도시 전체의 4분의 3 이상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곳에서 전후에 철저한 회개 운동이 일어납니다. 1947년 3월 30일 바실리아 슐링크(Basilea Schlink) 자매와 마르티리아 마다우스(Martyria Madauss) 자매에 의해 개신교 공동체인 마리아 자매회(Evangelische Marienschwesternschaft)가 설립되면서 이 도시가 폭격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고백하고 1,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지은 모든 죄를 철저히 회개하면서 화해하는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곳을 방문하여 영성을 새롭게 하며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가집니다. 특별히 그곳에 있는 고난의 정원(Leidensgarten)을 산책하면서 한국어로 안내해 주시는 암브로시아 자매님을 통해 설명을 들으면서 큰 은혜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제 이 자매회는 전 세계로 흩어져 디아스포라 선교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먼저 이 마리아 자매회를 방문한 후 유로 비전 포럼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매우 특별한 한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조선족 형제로 10년 전 독일에 유학 오게 되었습니다. 함부르그에 도착하여 2년간 독일어를 배우면서 그곳의 한 한인교회에 나와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 후 함께 왔던 세 형제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돌아갔지만 이 형제는 끝까지 남아 공부하였는데 마침 독일의 한 신학교에 입학하여 4년간 공부하면서 이곳의 어느 한인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많은 영적 그리고 학문적인 훈련을 받은 끝에 주님의 은혜로 졸업하게 되었으며 진로를 놓고 기도하던 중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어느 독일 교회에서 실습하면서 교단 총회장 목사님에게 성실함을 인정받아 실습이 끝난 후 놀랍게도 남부 독일의 한 시골 교회를 섬기는 담임 목회자로 임명을 받아 부임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봉사하여 성도들의 신임과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번에 포럼에 참석하여 간증하자 모두 큰 은혜를 받고 주님의 역사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디아스포라 사역의 한 귀한 열매인 것이지요. (행 8:4; 11:19-21) 더욱 감동적인 것은 이 목사님께서 섬기시는 교회의 성도이신 한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당신네 나라에 복음을 전해주러 갔는데 이제는 당신들이 우리 나라에 와서 복음을 전해 주시는군요.“ 이와 같이 독일 뿐만 아니라 영국에도 현지 교회를 섬기시는 한인 목회자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한 때 선교의 중심지였던 유럽이 이제 선교지가 되어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서 많은 선교사들이 오고 있습니다. 우리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도 이제는 유럽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다시 와서 도와달라는 마케도니아인의 환상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행 16:6-10)
최용준 목사 (브뤼셀 한인교회 담임, 한동 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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