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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길준의 꿈, 아이젠하워의 꿈…한반도 중립화론

PANAX 2022. 9. 30. 07:09

Opinion :박태균의 역사와 비평

중앙일보 입력 2022.09.29 01:01

 

한국 현대사 속 중립화 주장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지금 우리나라는 땅으로서는 곧 아시아의 내지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해 있어 벨기에가 유럽에 있는 위치와 같다. 지위로는 중국의 조공국이니 불가리아가 터키에 하는 것과 같다. 그러하나 동등한 절차를 통해 각국과 체결하는 권리는 불가리아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는 있다. 조공국의 사례에 있어 다른 나라로부터 책봉을 받는 일은 벨기에에는 없고 우리에게는 있다. 이 때문에 우리의 상황이 실로 벨기에, 불가리아 두 나라의 전례를 겸하고 있다. 불가리아가 조약을 체결하고 중립국이 된 것은 유럽국가들이 러시아를 막는 계책에서 나온 것이고, 벨기에가 중립국이 된 것은 유럽국가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책략에서 나온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논하건대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중립국이 된다면 실로 우리나라에는 큰 기회일 것이며, 또한 아시아 대국들이 서로를 보호하는 정략일 것이다.”

1884년 청나라와 조선은 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 조선의 요청으로 임오군란을 진압한 청나라는 의기양양하여 통상조약 속에 조선을 ‘속방’이자 제후국으로 규정하였고, 이를 통해 청의 북양대신이 파견한 상무위원이 조선 정부를 좌지우지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를 참지 못한 개혁파들은 갑신정변을 일으켰지만 실패했고, 위안스카이의 전횡이 10년간 계속되었다.

19세기 말 유길준 “열강 이용해 조선 독립과 아시아 평화 가져와야”
6·25 초기 아이젠하워 “군사 수단 외에 한국 문제 푸는 유일한 방법”
4·19 이후에도 간혹 등장…베트남전·탈냉전으로 관련 논의 사라져
한반도 주변 패권경쟁 가팔라져…유길준의 고민 다시금 살펴볼만

불가리아를 모델로 삼은 유길준

박태균의 역사와비평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과 미국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유길준은 ‘중립론’이라는 글에서 조선의 중립화만이 당시 상황에서 조선에는 생존의 기회를, 아시아에는 평화체제의 길을 열어줄 수 있는 방안이라고 제시했다.

그리고 그가 제시했던 근거는 당시의 불가리아와 벨기에였다.

특히 불가리아는 조선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1878년 개최된 베를린 회의는 오스만투르크와 불가리아 사이의 조공관계를 인정하되 자치가 가능한 지위를 부여했다. 불가리아를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공작은 불가리아에서 자체적으로 선출하도록 했다. 유럽 열강들은 불가리아의 지위를 통해 오스만투르크와 러시아의 세력확대를 저지하고자 했다.

조선은 청과 러시아의 세력확대를 저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이와 동시에 유길준은 또 다른 중립국이었던 벨기에의 사례에도 주목했다. 벨기에는 불가리아와는 달리 다른 열강과 조약 체결권을 갖고 있었으며, 조선 역시 중국의 속방으로 규정된 상태에서 미국·영국·프랑스·독일과 수호조약을 체결하였다. (이상 유바다, ‘유길준의 중립론에 대한 국제법적 검토’ 참조) 따라서 유길준은 조선의 중립국화가 외세를 이용하여 조선의 독립과 동아시아의 평화를 동시에 가져다줄 수 있는 방안이라고 판단했다.

 

한국전쟁으로 재등장한 중립화론

유길준의 중립화 논의는 조선이 식민지가 되면서 더 이상 논의가 되지 않다가 1950년 10월 미국의 문서 속에서 재등장했다. 한국전쟁 중 인천상륙작전과 38선 이북으로의 북진으로 유엔군 주도 하에 통일이 가능하게 된 시점이었다. 이 문서의 제목은 ‘한국의 항구적 중립화’였다. 중립화는 카이로 선언의 ‘신탁통치안’과 동일한 목적 하에서 제기되었다.

1943년 이후 미 국무성은 대한정책을 입안할 때 19세기 말 동아시아의 상황에 주목했다. 특정 열강이 한반도에서 독점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때 동아시아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4개국에 의한 신탁통치는 어느 일방에 의한 배타적 지배권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었다. 유엔군의 북진이 이루어진 시점에서 한국의 중립화론은 이와 동일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물론 이 논의는 중국의 참전으로 인해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정전협정이 체결되기 직전 미국의 국가안보회의에서 다시 한번 한국의 중립화 논의가 이루어졌다. ‘정전협정 이후 한국에 대한 미국의 목적’ 제하의 국가안보회의 157호 문서는 ‘통일되고 중립적인 한국’을 목표로 내세웠다. 이에 대한 논의는 미국의 제152차 국가안보회의에서 집중적으로 토의되었다.

 

한반도 개입 꺼렸던 아이젠하워

한국의 중립화 방안을 강력하게 주장한 것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었다. 그는 중립국이면서 자위를 위한 방위력을 갖고 있는 스위스와 미국의 편에 서 있으면서 중립국을 선언한 스웨덴의 사례를 들면서 정전협정 이후 소련과의 협의를 통해 한국의 중립화가 미국의 세계전략에 적합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즉, 해외 주둔 미군의 감축과 핵전력으로의 대체방안이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한국의 중립화가 한반도의 비무장화를 초래할 수 있으며, 이는 일본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견해였다. 당시 사회주의자들의 영향력이 컸던 일본이 한국의 중립화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었다. 또한 소련이 독일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인도차이나의 중립화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었다.

이러한 우려에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한국의 중립화 방안을 계속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심지어 합동참모본부는 한국을 전략적 지역으로 고려한 적이 없으며, 한국으로부터의 미군 철수가 당시 동북아시아에서 잘못된 미군 배치를 바로 잡을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국경 주변의 외국군과 공군기지에 민감한 소련의 정책을 고려하면 주한미군 철수가 미국의 세계전략에 도움이 될 것이는 논평을 달았다.

이 회의의 말미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한국의 중립화가 ‘한국 문제를 군사적인 수단 외에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하고 가능한 방법’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가조인, 1954년 한미합의의사록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발효 이후 미 행정부는 더 이상 중립화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지 않았다.

 

통일방안과 연결되었던 중립화론

4·19 혁명 직후와 1967년, 그리고 1974년 맨스필드 미 의원에 의해 한반도의 중립화가 주장되었고, 재일동포 김상규와 재미교포 김용중은 중립화 통일론을 제기하였다. 이 중 맨스필드 의원의 주장은 오스트리아의 경우를 모델로 한 것이다. 케네디 행정부와 닉슨 행정부의 대한정책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지만, 베트남 전쟁과 탈냉전으로 1980년대 이후 한국의 중립화는 더 이상 미국의 문서 속에 나타나지 않았다.

한반도의 상황을 고려하면 중립화는 현실화되기 어려운 방안이다. 오랫동안 중립화를 유지하고 있는 스위스와 오스트리에는 중립화에 대한 내부적 합의와 주변 열강의 공감대가 존재하고 있으며, 자신을 지키는 자위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 70년 동안 방위력이 증강되었음에도 한미동맹을 종결할 의지가 없으며, 북한과 중국 역시 동맹에 준하는 관계를 맺고 있다.

아울러 한반도 상황은 내적으로도 다른 나라와 큰 차이점이 있다. 남과 북이 대립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한 내부에서는 남·남 갈등이, 북한은 민주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룩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외적으로도 역내 주변국들이 타협과 협력을 통해 힘의 균형을 추진하기보다는 역외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상대를 고립시키고 봉쇄하려 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유럽에서 나타났던 사례보다는 중립화에 실패한 라오스의 경우가 한반도의 상황에 더 적합한 비교 대상일 수도 있다. 따라서 평화협정이 아닌 정전협정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적대적 관계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제출된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중립화론은 더더욱 현실적인 주장이 될 수 없었다. 게다가 한미안보동맹이 없는 중립화를 추진하고 있었다.

 

유길준 “잠시 지워버리는 편이…”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유길준의 방안이 상대적으로 현실적이었을 수도 있다. 그는 청나라의 영향력을 전제로 해서 중립화의 방안을 고민했다. 현재적 관점에서 본다면 한·미동맹을 전제로 한 방안이었다. 그리고 지정학적으로도 스위스보다는 불가리아와 벨기에에 주목했다. 그럼에도 유길준은 스스로 자신의 정책이 어느 정도 효과적일 것인가에 대해 부정적으로 판단했다.

유길준은 그의 ‘중립론’ 서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삽입했다. “이 논의는 큰 계획이라 할 수 있지만, 크게 마음에 걸리는 바가 있으니 잠시 지워버리는 편이 좋겠고, 집에 보관하는 경우에는 지워버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허동현, ‘유길준의 해외체험과 중립론에 보이는 열강인식’에서 재인용)

탈냉전은 중립화 논의의 진전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강대국 간 힘의 균형보다는 미국의 패권이 지속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미·중 갈등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러시아의 패권주의가 다시 눈을 뜨고 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 대한 반성 없이 보통국가를 추진하고 있다. 게다가 북핵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철저하게 자국의 국가이익의 논리에 의해 국제정치가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대안에 대한 논의를 검토할 필요는 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중립화론이 비현실적이었음에도 그런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당시 미국의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 정부에서 주한미군 주둔비의 인상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철수도 고려했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한반도에서 통일보다 평화공존에 대한 선호가 더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유길준이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 다시 한번 고민해 볼 시점이다. 꿈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은 인간이 가진 권리이자 자유이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출처 : 중앙일보

기사원문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05501#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