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 일자 : 2022년 08월 12일(金)
근대 개성상인과 인삼업
양정필 지음│푸른역사
인삼에 대해 우린 얼마나 알까. 익숙할수록 깊게 들여다보지 않는 법이다. 우선 한국이 인삼 종주국이라는 것을 떠올릴 테고, 동시에 개성이라는 지역도 연상된다. 그런데 사실 인삼은 삼남 지역, 그중에서도 경상 지역에서 먼저 재배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삼은 왜, 언제부터, 어떻게 개성에 뿌리를 내리게 됐나. 개성상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우리 조상들이 그 재배법을 인류 최초로 알아냈고, 조선의 핵심 수출품이었던 인삼의 역사를 산업사의 측면에서 다룬다. 특히 책은 19세기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약 150년간에 집중하는데, 이때 주역이 바로 개성상인이라는 것이다. 책은 개성학회 회장이자 ‘인삼대왕’으로 불린 손봉성, 마케팅의 귀재였던 최익모 등 주요 상인들을 중심으로 인삼업을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책에 따르면 개성은 1820∼1830년대 무렵부터 인삼 주산지로 각인된다. 의주상인과의 협력관계, 홍삼 제조 증포소의 이전, 개성 특유의 신용제도 등이 주효했다. 당시 재배법은 개성의 ‘지방 출상인’들에 의해 알려졌고, 개성 사람들은 지역의 자연조건과도 잘 맞고 수익성이 높은 인삼 재배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개성상인들은 무담보 신용 대출이 가능한 개성 특유의 시변제도 덕에 자금을 융통하기 쉬웠다. 인삼 재배 기간은 보통 4∼6년. 충분한 자본력은 개성이 늦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게 했다. 특히 19세기 중엽 개성상인의 홍삼 생산 능력은 연 4만 근에 이르렀고, 이 지점에서 저자는 이는 대량생산이며, 근대적인 산업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홍삼은 거의 청나라로 수출됐고 막대한 이익을 창출했다. 책은 실질적으로 이를 가능케 한 개성상인을 “근대적인 생산자이자 자본가”로 규정한다.
산업으로 접근하지만 저자가 풀어내는 ‘인삼의 역사’는 딱딱하지 않다. 하나같이 극적인 인물들의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어서다. 한때 인삼밭을 가장 많이 소유했으나 일본인들의 횡포에 몰락한 강유주, ‘고려인삼’이란 말을 처음 붙이고 인삼을 고급 상자에 담아 팔기 시작한 최익모, 순조 초기 인삼 무역 10년간 독점권을 얻었던 임상옥 등이다.
한때 조선 왕실 재정의 10%를 차지한 게 인삼 수출로 인한 이익이었다고 한다. 홍삼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개성상인들은 민족학교 설립 등에 기여하기도 했고, 관영화에 반발해서는 인삼 종자를 불태우는 ‘개성 민요’를 일으키기도 했다. “우리는 삼업에 의하지 않아도 선조의 제사를 끊이지 않을 수 있다”며 단단한 자부심을 내비치기도 했던 개성상인들의 면면과 함께 우리가 몰랐던 인삼의 굴곡진 역사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396쪽, 2만5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출처 : 문화일보
기사원문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2081201032112056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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