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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일본지도에 ‘독도’는 없다

PANAX 2022. 6. 1. 09:40

입력 2022.05.28 (09:05)

독도에 대한 일본의 주장은 일관적이지 않습니다. 독도가 원래 과거부터 자기들의 영토였다고 주장하는 '고유 영토론'과, 주인 없는 땅을 먼저 차지했다는 '무주지 선점론' 등을 혼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주 오래전부터 독도가 그들의 영토였다면, 현재와 가까운 19세기에도 그들의 영토였어야 하는데, 그들의 고지도에서 드러나듯이 일본에서는 19세기 동안에 독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일본의 무주지 선점론이 정당화되려면 1905년 이전에 독도가 그 어떤 국가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근거가 명확해야 합니다. 하지만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일본에서 제작된 지도나 고문서를 보면, 독도는 조선의 영토라는 기록이 일관되게 나타납니다. 특이한 점은 일본 해군성은 영국의 해도를 모사하는 과정에서 독도를 '량코도'라고 표기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량코도'는 독도를 가리켰던 일본 고유의 명칭이었을까요?

■ 19세기 일본지도에 독도는 없다

<19세기 일본지도에 독도는 없다>라는 책(저자: 이상균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펴낸 곳: 북스타) 에서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는 모순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19세기 일본이 영국의 지도를 참고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독도 표기 오류는 단순 실수로 보기에 무리가 있다는 게 이 책의 설명입니다. 즉 일본이 19세기에 독도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면, 문제가 있는 영국의 지도를 그대로 따라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일본은 19세기 내내 독도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으며 이 때문에 일본은 19세기 동안 독도를 지도상에서 누락시키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일본은 이후 러일전쟁(1904~1905) 시기에 독도에 대한 지정학적 중요성이 드러남에 따라 그때까지도 혼동하고 있던 독도의 명칭과 위치에 대한 조사를 집중적으로 벌였습니다. 그리고 1905년에 이르러 독도를 그들의 영토로 불법적으로 편입했습니다. 일본에서 이 시기에 일어난 독도 명칭 변천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량코도’는 프랑스의 포경선인 리앙쿠르호가 1849년 1월27일 항해 중에 독도를 발견해 이름을 붙인 것으로서 프랑스식 이름인 Liancourt암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이후 프랑스는 물론 유럽 국가들의 지도에도 이 같은 명칭이 나타난다 / 출처: ‘19세기 일본지도에 독도는 없다.’ (이상균 저)

결론적으로, 일본은 19세기 독도를 '량코도'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다케시마'(竹島/죽도)라는 명칭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다케시마(竹島/죽도) 는 사실 19세기 이전 일본에서 울릉도를 가리키던 명칭이었고, 오히려 독도가 마쓰시마(松島/송도)로 불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 소개한 19세기 동안의 이러한 혼란을 계기로 울릉도 명칭이 마쓰시마(송도)가 되고 독도 명칭은 다케시마(죽도)가 되는, 이름이 뒤바뀌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 일본 외무성 "18세기 에도막부 시대부터 독도를 잘 알고 있었다"…납득이 안 되는 이유는?

독도 명칭을 둘러싼 일본의 혼란과 혼동은 일본 외무성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이 고지도(개정일본여지로정전도/改正日本輿地路程全圖/ 1779년 초판)에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 18세기 일본 고지도를 자세히 보면 큰 섬이 죽도(竹島/다케시마)로, 작은 섬이 송도(松島/마쓰시마)로 표기돼 있습니다. 크기가 큰 섬은 울릉도, 작은 섬은 독도로 추정할 수 있는데, 이 당시 일본지도에서 큰 섬인 울릉도를 죽도 즉 일본명 다케시마로 표기한 것입니다. 독도로 추정 가능한 작은 섬은 송도, 일본명 마쓰시마로 나와 있습니다.

이처럼 18세기~19세기~20세기 초까지 죽도, 송도, 량코도가 지도에서 혼동되는 정황은, 그 당시 일본이 독도의 정확한 위치와 명칭을 과연 정확히 알고 있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입니다.

일본 외무성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일본의 고지도(개정일본여지로정전도/改正日本輿地路程全圖/ 1779년 초판). 일본 정부는 과거 18세기에 독도의 위치와 명칭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이 지도에서는 왼쪽(서쪽)에 큰 섬을 죽도(일본명 다케시마)로 표기하고, 오른쪽(동쪽) 작은 섬을 송도(일본명 마쓰시마)로 표기하는 등 현재 명칭과는 다르다는 것이 드러난다.

■ 러일전쟁 당시 일본, 독도 이름조차 몰랐다?

최근 한 연구자가 입수해 공개한 일본 지자체의 비밀 공문서에도 일본 정부가 러일전쟁 즈음에도 독도의 명칭을 어떻게 정할지 잘 알지 못했던 정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서제1073호
스키군 사이고우마치(周吉郡 西鄕町)나카이 요자부로(中井 養三郞)에 의해 영토편입과 그 대여의 건으로 별지를 통해...(중략) ...목하(바로 지금) 조사 중이며 앞으로 발령되면 오키도청 소관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도서(섬) 명명( 命名/이름 짓기)에 대해서 의견을 부탁하기 위해 조회한다.

메이지37년(1904년) 11월 15일
시마네현 내무부장 서기관 호리노부지(堀信次)
오키도사( 隱岐島司 )히가시 후미오(東文輔) 친전


■ 이름도 정확히 모르면서 영유권 재확인?…"일본 억지 주장 그만해야"

이 문서를 일본 '시마네현 다케시마 사료관'에서 입수해 공개한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은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메이지37년(1904년) 시마네현 내무부장 호리노부지가 오키도사(오키섬의 행정관리자/ 오키섬은 독도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의 섬)에게 보낸 문서로서, 시마네현의 한 사업가(나카이 요자부로)가 독도 영토 편입과 대여를 요청하고 있으니, 독도를 오키섬에서 소관하라고 지시하고, 아울러 그 명칭은 무엇으로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요구하는 공문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1904년 당시 일본인 나카이 요자부로가 '량코도 영토 편입 및 대하원(貸下願)'을 정부에 제출하자, 시마네현이 '량코도' 라는 이름을 어떻게 할지 몰라서 독도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섬의 행정관리자인 오키도사에게 량코도의 일본 이름이 무엇인지 거꾸로 물어보는 비밀 문서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일본은 이듬해인 1905년 러일전쟁 중에 '시마네현 지방자치단체 고시 40호'를 통해 독도를 일본 영토로 강제 편입했습니다. 이 정황 등으로 볼 때, 일본은 1904년에도 독도의 이름을 둘러싸고 혼란과 혼동을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김문길 소장은 강조했습니다. 결국, 일본이 18세기부터 독도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으며 그때부터 이미 독도 영유권을 확보했다는 것은 허황된 주장이라는 지적입니다.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 (시마네현 사료관에서 독도 관련 비밀 문서 발견) 인터뷰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는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도, 국제법상으로도 다케시마는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기재돼 있습니다.

일본은 특히, 1905년 자신들이 러일전쟁 중에 독도를 일본영토로 강제 편입하는 작업 과정에서 영유권을 재확인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독도를 일본땅으로 강제 편입한 러일전쟁 당시보다 이전인 과거 18세기 일본의 에도막부 시대부터 독도를 잘 알고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독도 명칭의 관점에서만 봐도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그대로 드러납니다. '19세기 일본지도에 독도는 없다.' 책의 저자 이상균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세계인들에게 설명하는 중요한 근거로서 동·서양의 고지도에 나타나는 독도의 명칭에서 드러난 일본 주장의 허구성을 잘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정혜영 hey@kbs.co.kr

 

출처 : KBS

기사원문 :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473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