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2차대전 이후 최악의 식량위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농산물 부족에 따른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산물 가격 급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사태가 심화하고 있다. 세계적인 곡창지대로 꼽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통에 작물 재배에 어려움을 겪고, 수출 길마저 막히자 주요 농산물 가격은 올 들어 급등세다. 여기에 세계 최대 비료 생산국인 러시아가 서방 진영의 제재에 맞서 비료 반출 제한 조치까지 취하면서 ‘파종→생육→수확→유통’에 이르는 농산물 생산 및 공급 체계 전반이 위기를 맞았다.
식료품 가격 급등에 따른 민심 이반과 정치적 불안은 터키·레바논·이집트·이라크·튀니지·스리랑카·파키스탄·페루 등지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농산물 수입 의존도가 높은 저소득 국가들은 경제를 넘어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이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식량 위기에 봉착했다”고 했다.
◇전 세계의 밥상이 러·우에 달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인의 주식(主食)인 빵과 면의 원료가 되는 밀(소맥)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지난달 기준 전 세계 밀 수출량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최근 3년간(2018~2020년) 두 나라의 연평균 밀 수출량은 국내 연간 밀 소비량(210만t)의 25배가 넘는 5380만톤(t)에 달한다. 밀 소비량의 최소 30% 이상을 두 나라에 의존하는 나라가 50여 국에 이른다. 26국은 이 비율이 50%를 넘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밀에 이어 교역량이 두 번째로 많은 곡물인 옥수수의 수출 점유율도 16%나 된다. 미국(32%), 브라질(21%), 아르헨티나(19%)에 이은 세계 4위다. 밀과 옥수수뿐 아니라 해바라기유(62.6%), 보리(24%) 등도 수출 점유율(양국 합산)이 최상위권에 속할 만큼 두 나라는 전 세계 농산물 공급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전 세계가 밥상을 두 나라에 의존하다 보니 지난 2월 전쟁이 시작된 이후 곡물 가격은 사상 유례 없는 수준의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우크라이나 농경지가 훼손되고, 농기계 및 인력이 부족해진 데다 농산물 수출의 관문인 흑해 항구까지 폐쇄되는 바람에 공급망이 꽉 막힌 결과다. 국제곡물위원회(IGC)에 따르면 지난달 평균 ‘곡물 및 유지류 가격지수(GOI)’는 최근 5년(2017~2021년) 평균치 대비 82%나 올랐다. 밀과 옥수수 가격지수만 보면 평년 3월 대비 지난달 상승률이 각각 90.8%, 99.4%에 달한다. 글로벌 금융그룹 ING의 워런 패터슨 상품전략 책임자는 “곡물 가격 급등세를 보면 러시아·우크라이나가 전 세계 농산물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FAO는 우크라이나의 곡물 주산지와 전장(戰場)이 겹치면서 겨울 밀, 호밀, 보리 등 겨울 작물 재배 면적(760만ha)의 28%만 수확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본토를 공격받지 않은 러시아의 경우, 농작물 재배에 직접적인 타격은 없지만 수출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이 문제다. 국제 금융 결제망에서 퇴출되면서 무역 거래 자체가 어려워진 데다 러시아가 서방 진영을 압박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곡물 수출 할당제’까지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옛 소련 국가들로 이루어진 EAEU(유라시아 경제 연합) 회원국에도 6월 말까지 밀, 보리, 호밀, 옥수수 등을 수출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비료까지 걸어 잠근 러, 식량위기 고조
설상가상으로 러시아가 작황 개선에 필수적인 비료 수출마저 걸어 잠그면서 사태가 더 심각해졌다. 러시아는 전 세계 비료 시장의 20%를 차지할 만큼 영향력이 크다. 러시아는 정해진 양만 수출하는 비료 수출 쿼터제를 작년 말부터 다음 달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최근 기한을 내년 봄까지 1년 연장했다.
비료 수출을 제한할 경우 북미와 남미의 주요 산지에서도 농산물 생산에 큰 제약을 받을 수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옥수수 수출 세계 2위인 브라질은 농산물 비료의 38%를 수입 탄산칼륨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 물량의 절반을 러시아와 벨라루스에서 충당한다. 비료 공급이 줄며 가격이 급등하자 브라질 농가는 옥수수 재배 면적을 줄이고, 비료 투입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대두 재배를 늘리고 있다. 블룸버그 계열사 그린마켓이 집계하는 북미 비료가격지수는 올 들어 20% 상승한 상태다. 막시모 토레로 FAO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비료 부족은 전 세계 식량 생산을 억누를 수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농산물 감소 문제보다 더 위협적”이라며 “비료 부족 사태를 내버려둘 경우 내년쯤 심각한 식량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곡물 재고율 중국 착시, 애그플레이션 오래 간다”
일각에서는 곡물 가격이 조만간 하향 안정화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과거 애그플레이션과 비교해 이번에는 곡물 재고율이 높고, 러시아·우크라이나를 제외한 주요 산지에서 재배 면적을 늘릴 것이라는 근거에서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는 애그플레이션이 쉽게 잡히지 않을 것으로 본다. 먼저 재고율이 과거 애그플레이션 기간(2006~2007년, 2011~2012년)보다 높긴 하지만 이는 착시 효과라는 지적이다. 중국이 식량 안보 강화를 위해 지난 10년간 밀과 옥수수 재고를 각각 2.5배, 4.8배나 늘리면서 전 세계 곡물 재고율이 덩달아 올랐다는 것이다. 중국은 현재 전 세계 밀·옥수수 재고량의 50%, 70%가량을 차지하는데, 중국을 제외할 경우 작년 기준 밀과 옥수수의 재고율은 각각 35%→23%, 25%→10% 수준으로 떨어진다. 곡물 가격 변동성이 극심했던 2000년대 후반과 비슷하다. 중국의 재고 농산물은 대부분 자국 내에서 소화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식량 위기는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북미와 남미의 주요 산지에서 하루아침에 재배 면적과 비료 원료 채굴을 크게 늘릴 수 없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종진 연구원은 “수확량 증대는 공장 생산 라인을 증설하는 것처럼 뚝딱 이뤄질 수 없다”며 “우크라이나가 4~5월 파종 시기를 놓쳐 올해 가을 수확량이 감소할 것이란 점도 애그플레이션 장기화 우려를 키운다”고 했다.
출처 : 조선일보
기사원문 : https://www.chosun.com/economy/mint/2022/04/21/VNLOE5SCV5EI3OHJCHIIS5QYH4/?utm_source=kakaotalk&utm_medium=shareM&utm_campaign=M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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