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민 입력 2022. 02. 26. 08:03
■ 나약한 국가, 그러나 두려움 없는 시민이 있다
우크라이나는 좋은 지도자를 가지지 못했다. 그리고 형편없는 리더십은 많은 경우, 경제 문제로 파국을 맞는다. 첫 침공을 당했던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당시도 그랬다.
독립 후 20년 넘도록 경제발전은 없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3년 당시 미국발 긴축에 대한 긴축발작을 겪으며 상황은 악화 됐다. 극소수는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경기는 침체됐고, 극빈층은 넘쳐났다. 외환보유고는 고갈 직전까지 갔다.
경제사학자 애덤 투즈가 <붕괴>에서 ‘부패한 기회주의자’로 규정한 당시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서방과 러시아를 오가며 자금을 지원받아 정권을 유지했다.
야누코비치는 앞에서는 EU 가입을 국민들에게 약속했지만, 2013년 말 은밀히 돌아선다. EU와의 FTA나 체결 조건, 또 IMF의 원조 자금 지원 조건이 만족스럽지 않자 러시아로 돌아섰다. 러시아가 훨씬 관대한 조건으로 훨씬 많은 돈을 지원한다고 약속하자 하루아침에 러시아 편이 됐다.
우크라이나는 이런 지도자를 가졌다. 그러나 동시에 스스로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놓을 준비가 된 시민이 있었다. 시민들은 ‘EU 가입이라는 당초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유로마이단, 2013년 연말부터 2014년 2월까지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100명에 가까운 시민이 숨지는 유혈사태에도 멈추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역의 관공서를 점령했다. 이 저항에 직면하자 야누코비치는 2월 22일 수도 키예프를 떠나 야반도주할 수밖에 없었다.
푸틴의 크림 병합은 ‘부패해 야반도주한 대통령’을 상실한 직후에 전격 단행됐다.
■ WP ‘왜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패하나’
워싱턴포스트의 기명 칼럼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런 시민들이 있기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잠시 점령하는 데는 성공할지 몰라도 결국은 패배할 것이다.
편지글 형식의 <왜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패하나?>라는 제목의 이 칼럼에서
WP는 푸틴이 총과 칼 없이는 우크라이나에 머물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전투에 승리해 잠시 머물 수는 있으나, 총과 칼을 앞세운 점령의 천문학적 비용을 생각하면 장기 주둔은 불가능하단 얘기다.
시민들이 러시아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푸틴이 ‘사상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푸틴이 우크라이나인들을 ‘모스크바 크렘린 궁의 의지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어야 하는 반쯤은 상상에 불과한 나라 시민’으로 규정하는데, 이는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 인의 분열만 심화한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생각이 다르단 얘기다.
그렇게 된 건 2014년 크림 침공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간 러시아와의 협력도 필요하다고 여기던 시민들조차도 이후 푸틴이 내세우는 ‘범 슬라브주의’와 부패, 냉소 사이의 간극을 이후 명확히 인지하게 됐다.
그래서 NATO 가입을 더 갈구하게 됐다.
즉, 속박을 걷어차고 자유의 세계로 나온 사람들은 다시 속박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푸틴이 ‘힘과 공포와 거짓말을 통해서 목적을 관철하려 하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한 것이다.
푸틴, 자네는 정말 끔찍한 실수를 한 거야, 이 공격은 궁극적으로 자네가 가장 피하고싶었을 결과로 이어질껄세.
You have made a terrible mistake. Your assault in Ukraine will ultimately lead to the very outcomes you hoped to avoid.
이건 이길 수 있는 전쟁이 아냐.
It is a war you can’t win.
<왜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패하나?> 크리스티안 카릴, WP 국제 에디터
■ NYT 폴 크루그먼 “세탁된 돈이 푸틴의 아킬레스건”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좀 더 전략적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탄 이 석학은 전투의 결과에 관해선 판단을 유보하면서도 ‘경제 제재는 나약한 방법일 뿐’이라는 통념에는 반대한다.
경제학자답게, 장기와 단기(Short-run)의 개념을 가져온다. 단기적으로 재래식 조치 측면에서 푸틴이 취약해 보이진 않지만, 궁극적으로는(Eventually) 거대한 경제적 대가를 치른단 얘기다.
단,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서방이 제재에 대한 단호한 의지, 그 제재로 인해 치르게 될 대가도 감당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폴 크루그먼은 일단 더는 러시아와 송유관, 가스관 협력을 할 나라는 없을 거라고 했다. 외국인 직접투자도 없다. 이 둘은 ‘장기적 약속’의 상징인데 이제 푸틴과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은 없다는 이유에서다.
제재 가운데 전략적으로 보자면 가장 효과적인 것은 에너지 거래 중단이다. 다만 EU가 천연가스 40%를 러시아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 전략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하지만 금융제재는 가능하고 또 러시아를 아프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노보크먼과 토마 피케티 등의 경제학자를 인용해 러시아가 90년대 이후 에너지 수출을 통해 쌓은 막대한 흑자를 해외에 은닉하고 있다고 했다. 2015년을 기준으로 러시아의 부패한 올리가르히들이 해외에 은닉한 재산은 러시아 국가 GDP의 85%에 이른다. 이 해외 은닉자산이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러시아의 취약점이라고 했다.
크루그먼은 서방의 단호한 결단을 촉구하며 콕 집어 영국을 언급한다. ‘푸틴에 대한 재정적 압박을 위해선 영국이 나서야 한다.’ 이유는 영국의 금융중심 씨티오브런던은 ‘런던그라드’라고 불릴 정도로 러시아의 은닉자금이 넘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영국은 일부 동결 조치는 시행했다.)
이 지점에서 크루그먼은 약간의 냉소를 내비치며 영국의 결단이 쉽지는 않다고 언급한다. 그게 이 글의 제목과 관계가 있다. 러시아는 돈세탁을 통해 돈을 서방에 넣어두는데, 서방의 금융에는 러시아의 돈을 세탁해주고 먹고사는 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들이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서 너무 강한 제재에는 저항한다. 특히 영국에서 그렇다.
이 같은 금융의 행태를 ‘서방의 부패’라고 부르며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푸틴의 가장 큰 취약점을 공격할 수 있다. 그러면 러시아는 패배한다.
■ 이코노미스트지 “역사는 푸틴의 전쟁을 가혹하게 평가할 것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는 푸틴이 ‘역사적 사명’이라는 위험한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본다. 지금의 이 갈등은 그런 푸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다.
2014년 크림, 그리고 2022년 우크라이나 전체.
그리고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결국, 세계를 위협한다.
이코노미스트지가 생각하는 전략도 경제 제재다. 우선 금융과 하이테크 산업과 측근 인사들의 자금줄을 죄어야 한다. 또 세계는 우크라이나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다양한 방식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한다.
오늘의 푸틴이 자유롭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미래의 푸틴은 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사명’을 강요할 것이다. 그때 그를 멈추려면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한다.
서영민 기자 (seo01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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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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