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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文化/침묵의 시간

목사가 카페 마담이 된 까닭은?

KBEP 2007. 10. 10. 03:42

목사가 카페 마담이 된 까닭은?

 

서른여섯 나이에 직업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다가 종업원에게 ‘자리 차지 그만하고 빨리 나가 달라’는 면박을 당합니다.

‘내 돈내고 맘대로 쉬지도 못하나?’' 어머니처럼 따뜻하고 정성이 담긴 카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그는 결심했죠. 가래떡 장사, 옷 장사로 종자돈을 마련하고 신촌 기찻길 옆에 ‘민들레영토’라는 카페를 냈습니다. 자칭 ‘다방 마담’ 지승룡 대표…. 그는 어머니의 마음을 나눠주는 원칙을 끝까지 지켜 냈고, 독특한 경영으로 ‘민들레영토’를 전국에 수십 개의 체인점을 갖춘, 카페 브랜드 인지도 1위, 고객만족도 1위의 외식업체로 만들었습니다.

‘가난은 찬스일 뿐이다’고 말하는 ‘민들레영토’ 지승룡 대표가 무일푼의 실직자에서 CEO로 성공하기까지그 성공 노하우와 따뜻한 감동 스토리를 10월 9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에서 만나보았습니다.

◇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 ‘민들레영토’

▶ 스스로를 ‘다방 마담’으로 부르시던데요?(웃음)

가을이 깊어지면 고향이 생각나고 또 고향의 풍경도 생각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다방이고, 그곳에서 열심히 살아갔던 마담의 모습이 우리가 갖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었을 것 같아요. 그런 풍경들이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고향의 한 모습이었으면, 그런 이미지를 주면 좋지 않을까 해서 다방 마담하면 저도 왠지 모르게 정겹게 느껴지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 민들레영토 카페가 여러 가지로 독특해요. 처음 10평으로 시작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무려 400배나 커졌다고요?

개수의 의미는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요. 처음 시작할 때는 10평이었는데 지금은 전부 합하면 6천 평정도 될 것 같아요. 처음 시작할 때보다는 많이 성장했죠.

▶ 민들레영토가 혹시 영토 확장을 의미하나요?(웃음)

성경에 보면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씀이 있어요. 제가 부드럽고 다른 것을 수용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니까 조금씩 공간이 늘어난 것 같아요. 그래서 온유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과 땅은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욕심을 갖아도 땅을 얻을 수 있고 욕심을 버려도 땅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바로 민들레가 세상을 향해서 펼쳐가는 희망의 영토, 사랑의 영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 어떻게 해서 이렇게까지 성장하실 수 있었을까요?

친구 따라 강남에 간다는 말이 있잖아요. 실제로 친구 따라서 강남 간 사람들은 다 부자가 되었잖아요. 마음을 비우고 새로운 것에 대해서 마음을 여는 것, 자기 고집을 너무 내세우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또 다른 사람이 하자고 하는 것을 하다 보면 스케일이 커지고 마음의 폭도 넓어져서 새로운 것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성공의 가장 중요한 것이 ‘열린 지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열린 지식’을 가슴에 뜨겁게 담고 더운 가슴으로 사랑하다 보면 새로운 것을 향해서 나가게 되는 것 같아요. 실제로 행복한 성공을 하신 분들을 보면 마음이 많이 비워져 있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하는 마음이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저는 어느 영화가 재미있다고 하면 봅니다. 또 학교에서 어느 교수님 강의가 재미있다고 하면 듣거든요.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 걸 잘 안 해요. 죄송스런 말이겠지만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식한 사람들이 교수님이나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들일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 지식을 한 번 갖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다른 지식을 갖지 않고 자기의 지식만을 이야기하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다방 마담들은 새로운 지식이 떠돌아다니면 그걸 이 사장, 박 사장, 김 사장에게 전했다고요. 그런 정보들이 전해져서 우리나라 많은 중소기업 사장님들이 7,80년대 경제를 일으킨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요즘 우리가 어려워진 이유 중의 하나가 완고해지고 고집스러워져서 그런 것 같아요. 인터넷에서 토론하는 것만 봐도 자기주장만 하고 있더라고요. 그걸 깰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열린 지식이 아닐까, 그게 마담지식이라고 생각합니다.

◇ 목회자에서 카페 마담으로 시작된 인생 2막

▶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을 졸업한 목사님이 어떻게 카페를 하게 되셨어요?

제가 두 가지 이유에서 직업을 마담으로 바꾸게 되었어요. 하나는 5리를 가는 자에게 10리를 동행하라는 말씀을 설교하는데, 말씀은 좋은데 듣는 분들이 와 닿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목사님이 대단히 이상주의적인 목회를 하시는 것 같다고 해요.삶의 현장에서 언어의 설교가 아닌 삶의 설교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목마르게 하고 있었지만 그런 결단을 하기가 어려웠어요.

제가 행복한 가정생활을 갖지 못하고 이혼을 하게 됐어요. 이혼을 하고 나서도 목회를 계속하려고 했는데 현실적으로 이혼한 목회자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핸디캡을 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이런 문제로 계속 고민하는 것보다는 원래 꿈꾸었던 삶 속에서 복음을 나눌 수 있는 게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해서 직업을 바꾸게 된 거죠.

▶ 그 와중에 2천여 권의 책을 읽으셨어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첫째는 의지였어요. 장애가 올 때 마침표를 찍지 않고 장애는 이정표라고 생각하고 위기는 위대한 기회일 뿐이거든요.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지식이라고 생각해요. 우연히 도서관에서 읽은 책이 잔잔한 감동을 주었고 또 특별히 방송이라든지 잡지를 보면 아픈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을 때 정말 저도 행복할 수 있고 먹고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그래서 그분들을 위로할 수 있는 책들을 읽다 보니까 어느덧 책들이 쌓이게 된 거죠. 그때 3년간 이 카페를 경영하기 전에 도서관에서 집중적으로 읽었던 책이 지금의 저한테 많이 힘이 되는 것 같아요.

▶ 어느 카페에 들어가서 종일 있으니까 어느 종업원이 면박을 주었다고요?

책을 읽고 집에 오다가 마음이 쓸쓸하더라고요. 그래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마음을 위로받으려고 토요일 오후에 인사동의 어느 카페에 들어갔는데 토요일이라 손님들이 많잖아요. 제가 혼자서 오래 있었나 봐요. 처음에는 행주로 제 테이블 위를 닦더니 누구 안 오시느냐고 자꾸 눈치를 주더니 나중에는 솔직하게 이야기하더라고요. 토요일에는 손님이 많이 오시니까 다른 날 오시면 어떻겠느냐고...

그 말을 들을 때 제 나이가 서른여덟이었는데 이 나이가 돼서 혼자 그런 일을 당하니까 창피했어요. 후다닥 일어나서 내려오는데 갑자기 가슴이 찡한 거예요. 그래...카페에 오는 사람 중에 이렇게 외로운 사람이 많겠지? 그 사람들을 위해서 좋은 이야기를 해 주는 주인아저씨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계단을 내려와서 제 가슴이 시원해지더라고요. 그날부터 카페가 신이 저에게 준 새로운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하게 되었어요.

▶ 레스토랑도 있고 대포집도 있고, 종류가 여러 가지인데, 왜 카페였나요?

카페는 신이 우리에게 준 사회의 가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사람을 만나면 차 한 잔 하자고 보통 그러는데 차 한 잔속에 인생이 담겨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서로 이야기하고 행복을 나눌 수 있고 왠지 모르게 따뜻하고 좋은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감성을 채워줄 수 있는 게 도시의 행복한 공간이 아닐까 해서 그때부터 카페지기, 카페 마담으로 직업을 갖고 살아가게 됐죠.

◇ 가래떡 장사로 종자돈 모아 시작된 민들레영토

▶ 신촌에서 10평으로 시작하셨는데 소위 말해서 종자돈이 필요하잖아요.

가게를 내겠다고 하니까 주변에서는 목회하던 사람이 가게를 낸다고? 이 사람이 제정신인가 하고 비아냥대기도 했어요. 제가 봉급은 받아봤어도 직접 돈을 벌어본 적은 없잖아요. 돈을 빌려서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공하는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걸로 돈을 벌어보자 싶었죠.

제가 좋아하는 것이 어렸을 때 생일날 상에 차려주신 가래떡이었어요. 저는 지금도 가래떡을 먹을 때 행복합니다. 한국 사람이 떡볶이 싫어하는 사람들이 없겠죠. 가래떡을 뽑아서 잘 산다는 압구정 현대아파트, 미성아파트 입구에서 좌판을 했어요. 제 목소리가 마담으로서 하늘이 준 목소리 같아요.강남주부들한테 따뜻한 가래떡을 방금 뽑아왔다고, 이 떡 집에 갖고 가면 아이들이 좋아할 거라고 이야기했더니 주부들이 정말 많이 사주시더라고요. 하루에 20만원씩 남겼으니까요.그게 6개월 정도 되니까 나중에 2천만원 정도 모았어요. 2천만원이 종자돈이 되어서 신촌에 가게를 얻어서 시작한 거죠.

▶ 흔히들 장사를 하려면 목이 좋아야 한다고 하는데 신촌에 목이 좋은 곳이 있던가요?

지금부터 13년 전인데요. 물론 큰 돈으로 사람이 성공할 수 있지만 저는 작은 돈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거기에는 지혜가 동반되어야 하는데 저는 버려진 곳에 보물이 있다, 쓰레기통 위에서 장미꽃이 핀다,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 있다는 메시지를 항상 가슴에 갖고 있어요. 그래서 장소는 좋은데 주인이 게으르다든지 이런 저런 이유로 가게를 잘 살피지 못한 곳을 눈여겨보고 그런 가게를 집중적으로 공략을 했는데 마침 주인이 게으르게 경영했던 가게가 있었어요. 그 가게가 2천만원으로는 얻을 수 없는 가게였는데 좋은 목에 자리 잡게 된 거죠.

▶ ‘민들레영토’라고 이름을 지으셨는데 의미가 있겠죠?

민들레꽃이 구덕초라고 해서 9가지 덕을 갖고 있어요. 이 민들레가 조선인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해요. 그래서 해외에 있는 한인들은 스스로를 미국의 민들레, 러시아의 민들레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 꽃이 바람을 이용해서 멀리 멀리 날아갑니다. 어느 기사를 보니까 240km를 날아간다고 해요. 땅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꿈을 향해서 도전하는 조선민족의 이미지가 아닐까,

이런 민들레가 새로운 지식사회에 또 문화사회에서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퍼져가는 뜻으로 민들레영토라고 지었어요. 그걸 줄이니까 ‘민토’가 되더라고요. 영어로 ‘민’이라는 말이 낮다, ‘토’는 발이잖아요. 다른 사람의 발을 닦아주는 서비스하는 사람, 세상을 서비스하자는 의미로 지었습니다.

▶ 그 장소가 허름한 양장점 자리였어요.

저도 나중에 알았는데 이 건물이 건축물대장에 없어서 무허가 건물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 무허가로 영업을 했습니다. 불법영업이었죠.(웃음) 그러니까 구청, 위생과, 주택과, 파출소, 소방서 등 고발한다고 해서 제가 그랬죠.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런 건데 법을 몰라서 그런 거니 시간을 좀 달라고요. 이분들이 얼마나 지나야 다 지킬 수 있겠느냐고 해서 8개월만 달라고 했더니 그러면 그 안에 꼭 하라고 무사히 지나갔는데 이분들이 8개월이 되기 전에 다른 부서로 가시더라고요.(웃음)어려울 때 가장 중요한 게 버티면 돼요. 그런데 사람들이 어려울 때 촐싹대거든요. 조금만 위기가 오면 불안해하고. 물론 지금은 영업허가를 받고 영업을 하지만 버티면서 사람들한테 부탁하고 근성으로 버텼던 것 같아요.

▶ 처음 가게를 차리실 때 얼마나 들었어요?

보증금 1천 5백만 원, 인테리어 4백만 원으로 시작을 했어요. 그러고 나서 조카가 인형을 갖고 있었는데 공중에 인형을 매달면 멋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조카한테 인형을 달라고 해서 인형을 매달기도 하고 또 우리 어머니가 이북에서 피난 올 때 갖고 왔던 새우젓 항아리가 있었어요. 새우젓 항아리에 꽃 하나를 얹었더니 그게 이상하게 멋있어요. 테이블 같은 경우에는 의자를 놓고 유리를 깔았더니 그걸 또 고객들이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궁 즉 통’이라고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통한다고 생각해요. 가끔 어떤 분들이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느냐고 물어보시는데 저는 간단해요. 가난해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 같아요. 어머니들이 줄 게 없을 때 이것저것 모으시잖아요. 그래서 미나리도 나오고 쑥도 나오는데 그게 다 가난해서 나오는 음식이라고 생각해요. 가난은 아이디어의 보고인 것 같아요.그런데 요즘 제가 아이디어가 궁해요. 옛날보다 돈을 좀 벌었나 봐요.

◇ 이색적인 문화 공간, 한 달 만에 흑자경영으로 돌아

▶ 얼마만큼 지나니까 자리가 잡히던가요? 6개월은 버텨야 한다고 들었는데요.

저는 처음에 가게를 시작할 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이 아무 것도 먹지 않고 40일을 버틸 수 있고 물을 마시면 120일을 버틸 수 있다고 해요. 그 얘기가 저한테 와 닿았어요. 제가 물장사를 한 거잖아요. 물만 먹으면 120일을 버틸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120일 동안 고객한테 목숨 걸고 서비스한다는 각오로 물과 컵라면만 먹으면서 120일을 버텼는데 한 달 만에 흑자경영으로 운영이 되었어요.

▶ 그 때 메뉴는 뭐가 있었어요?

메뉴는 없었고 손님들이 먹을 것을 사가지고 오셨어요. 우리 공간에 와서 문화비만 내시면 음료들, 물도 있고 주스도 있었는데 그걸 드실 수도 있고 먹을 것을 갖고 오셔서 드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또 어떤 분들은 같이 계신 모든 분들이 나눌 수 있도록 하기도 했어요.옛날에 탤런트 이훈 씨 같은 분들이 친구들과 저희 카페에 오셔서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던 아름다운 기억들이 있어요.

▶ 그럼 장소만 빌려주시는 셈인데 뭐가 남으셨어요?

문화비라서 해서 고객들이 일정기간 돈을 내면 물론 저희가 준비한 것도 드시지만 가져오신 거 드시면서 저희가 상담도 해드리고 작은 미니공연도 합니다. 저도 살아온 가운데서 재미있는 이야기들, 토크쇼도 하고 또 고객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도 나누고 해서 카페가 한 지역의 문화공동체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의도적으로 기획했던 것은 아닌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더라고요.

▶ 이색 문화 공간 같은데 다른 분들은 아직 그런 사업을 하지 않으실 때였나 봐요.

새벽 4시에 문을 열었어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모이를 먹는다고 하잖아요. 새벽에 문을 왜 열어? 찾아오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런데 클럽에서 나오는 많은 젊은이들이 술 깨려고 들어오기도 하고 이른 새벽에 도서관에 가기 위한 하숙생이나 대학생들이 들어오기도 하고 또 택시운전을 하시는 분들이 잠깐 졸음을 피하기 위해서 들어오시기도 해요.

들어와서 책 한 권 보시고 공부하는 카페, 세미나 카페, 그리고 이른 아침에 올 수 있는 카페로 변화가 되었어요. 연극이나 영화 등의 공연문화는 아직이었지만 삶 속에서 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행복을 느끼는 생활 속의 문화 공간 10평이 요술을 부렸던 것 같아요.

▶ 그 공간에 책이 있었다는 게 당시로서는 신선했던 것 같아요.

아는 선배님이 출판사를 하다가 망하셨어요. 선배님이 돈을 못 갚으신 적이 있는데 이 책을 갖고 가라는 거예요. 이 책을 어떻게 하겠어요. 가게에 갖다 놓고 오시는 분들에게 한 권씩 드렸죠. 그랬더니 어떤 분들이 이사 간다고 또 컴퓨터화가 되니까 책들은 별로 인가가 없어요. 제가 한 권 드리니까 열권씩 주세요. 매일 같이 손님들에게 책을 드린 적도 있어요. 버리면, 주면 더 많이 얻는다는 것을 가게 하면서 더 느낀 것 같아요.

◇ 차별화된 리필 시스템 ‘드시고 더 드세요’

▶ 카페가 젊은이들에게 사랑을 이어주는 공간이기도 하잖아요. 에피소드가 있으면 이야기해 주세요.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에 가게 앞에 머리가 긴 여대생이 서 있었어요. 제가 우산을 가져다 주었더니 여학생이 안 쓰겠대요. 그러면 들어와서 차를 마시라고 했더니 그 여학생이 저한테 그림을 그려주더라고요. 그러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여기서 늘 만났는데 그 친구가 유학을 가서 다른 여자를 만났대요. 그러나 그 친구를 기억하면서 이 자리에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서로 대화하면서 제가 그 친구를 위로하고 또 가게에 오시는 손님을 소개를 했어요. 그러면서 즐겁게 만나면서 친구가 되었고 또 여대생이 졸업해서 취업을 하고 첫 봉급을 타고 저한테 와서 조그만 선물도 주었던 아름다운 에피소드, 사랑의 이야기들이 있는 공간이었죠.그런데 요즘에는 급격하게 커지니까 그게 잘 안 돼요.

▶ 요즘 젊은이들의 트렌드나 라이프스타일이 많이 바뀌기도 했어요.

다른 사람을 멋있게 해주기보다는 자기를 더 튀게 하려는, 보완이나 여유가 없는 것이 우리 시대의 약점이죠.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그렇게 변해가니까요. 내가 조금 뒤로 물러나서 다른 사람을 돋보이게 해 주는 게 깊은 감성일 텐데 우리가 다 잃어버리고 사는 것 같아요.

▶ 당시에는 리필에 대한 개념이 없을 때인데, ‘민들레영토’에서는 리필을 많이 해주셨어요?

아이들의 깊은 가슴에 어머니의 영혼으로 들려주는 음성은 젖을 주면서 ‘먹고 더 먹으렴’하는 음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 공간에 오시는 고객들이 ‘드시고 더 드세요’하는 멘트를 하거든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사실은 음료 더 먹어야 배 나오고 살찌죠. 그 물질을 말하는 게 아니라 말하는 내용 때문에 어머니를 기억하고 고객들이 행복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대화를 하다 보면 30분 정도 지나면 목마르잖아요. 그럴 때 마실 게 없어서 일어나서 나가는 게 아니라 대화할 때까지 대화하도록 2,30분에 한 번씩 저희가 회진을 다니기도 하고 손님들이 오시기도 해서 음료를 드리면 목마르지 않고 이야기를 하실 수 있죠.또 저희들이 배고프지 않게 라면, 떡, 빵 같은 걸 드리거든요. 그래서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 드리자는 리필 시스템으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하게 되었어요.

▶ 그러다가 2호점 내신 건 언제쯤인가요?

2호점을 내려고 해서 냈던 건 아니고 신촌이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많이 오니까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저희 가게에 와서 왜 연대에만 민토가 있느냐고, 우리 학교 앞에도 가게를 세워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2호점이 생겼는데 제가 내고 싶어서 낸 게 아니고 고객들이 내 달라고 무언의 압박을 많이 했어요. 만약 안 내면 다들 어른이 돼서 저희를 많이 미워할 것 같더라고요.

얼마 전에 광주 전남대학교에도 냈는데 부산하고 대구는 있는데 지역 차별하느냐는 얘기들이 있는 거예요. 그런 게 아니었는데(웃음) 그렇게 해서 하나 하나씩 세워지고 있고 앞으로는 해외에도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현재 중국의 사천성 수도 ‘성도’라고 있는데 중국의 아주 표준적인 도시입니다. 그곳에 현지 중국인들이 직원이고 오시는 분들도 100% 중국인들이고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는 워싱턴에도 새로운 민들레영토가 생겨서 나름대로 국위선양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본이나 뉴욕 같은 경우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그런 곳에 생겼을 때 세계적인 이미지나 영향력을 준다는 의미에서 참 좋은 것 같아요. 그런 물밑작업을 오래 전부터 하고 있는 중입니다.

◇ 불안한 공존관계를 평화의 지역으로 바꾸고 싶어

▶ 우리나라에 스타벅스커피빈 등 외국 브랜드가 많이 들어와 있어요. 그런 곳과 민들레영토가 어떤 점이 다른가요?

제가 외국에 가서 시장조사를 하면서 물어봤어요. 왜 이렇게 스타벅스나 커피빈을 좋아합니까? 그랬더니 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푹신한 의자에 살던 사람들이 이렇게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사람들과 가까이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 편안했던 것 같아요.우리나라는 반대로 열심히 살다 보니까 불편함 속에 있는 편입니다. 한국은 오히려 편안하고 푹신한 의자가 편안함을 주지 않을까, 편안함이라는 건 같은데 풀어가는 방법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단 한 가지, 만약 워싱턴에 ‘민토’를 낸다면 이 기금으로 바그다드 어린이를 위한 교육기금으로 쓰려고 해요. 워싱턴과 바그다드의 불안한 공존관계를 한국 사람이 시작한 한 카페가 평화의 지역으로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 13년 전 10평에서 지금은 엄청나게 넓어졌는데 다 일일이 관리하실 수 없잖아요. 그러다 보면 처음 생각했던 분위기나 의도와는 동떨어질 수 있는데요.

공간이 확장되면서 고객과 만나는 임팩트가 많이 떨어지더라고요. 한동안 이런 부분 때문에 많이 혼돈스러웠어요. 그러다가 찾았어요. 저보다 더 순수하고 열정적인 젊은이, 제가 사랑하고 함께 하는 직원들을 만나고 만들어 가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직원들이 저를 위해서 일하는 수단이 아니라 저와 함께 같이 걸어가는 동역자이고 그들을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동반자인 거죠.

▶ 워싱턴에 지점이 생긴다고 하니까 바그다드뿐만 아니라 방글라데시, 아프리카 지역 등 그런 곳에 연결이 된다면 더 뜻있는 일일 것 같아요. 그런 일을 하시니까 잘 되는 것 아닐까요?

커피라는 말의 원어는 ‘카파’입니다. 이 카파는 이디오피아의 어느 가난한 도시의 이름이거든요. 그 도시의 한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서 커피 열매를 볶다가 발견된 것이 커피가 된 건데요. 커피 생산지를 보면 전부 가난한 나라에서 커피가 나요. 아마도 하나님이 가난한 사람과 커피를 마시는 잘 사는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나눌 수 있도록 나누신 것 같아요. 커피 한 잔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의 여유를 넘어서 제3세계 어린이들과 그들의 어머니를 기억하는 특별한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표준 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 정리=박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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