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이 만난 사람] '김일성의 아이들' 개봉하는 김덕영
보수 논객 조갑제는 이 영화를 “다큐로 만든 ‘닥터 지바고’”라고 했다. 김덕영의 최고작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4년 전 개봉한 영화는 흥행에 참패했다. 코로나가 지구를 삼킨 때였고, 문재인 정권 때였다. 집 팔고, 자동차 판 돈으로 16년간 동유럽을 떠돌며 만든 영화를 ‘1780명’이 봤다. 아무도 안 본 거나 다름없는 영화를 ‘건국전쟁’이 소환했다. 117만명이 본 ‘건국전쟁’의 출발이 바로 ‘김일성의 아이들’이었다. 6월 25일 재개봉(감독판)을 앞두고 김덕영 감독을 만났다.
◇ 우연과 기적이 만든 영화
-4년 만의 재개봉이다.
“영화 ‘건국전쟁’ 덕분이다(웃음). ‘건국전쟁’의 출발점이 된 이 다큐를 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았다.”
-’김일성의 아이들’을 촬영하다 이승만에게 꽂혔다던 그 얘기인가?
“2000년대 들어서도 북한은 ‘이승만 죽이기’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다큐는 6·25 때 김일성이 동유럽 5국으로 보낸 전쟁고아들 이야기다.
“1951년부터 1959년까지 불가리아, 루마니아,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동유럽 공산국가로 위탁교육을 받으러 간 전쟁고아 5000명의 삶을 추적했다. 비공식적으로는 1만명에 이른다.”
-이들의 존재를 어떻게 알게 됐나?
“2004년, 서강대 선배인 박찬욱 감독이 동유럽을 여행하고 돌아와 루마니아에서 기가 막힌 할머니를 만났다며 전화했더라. 다큐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며.”
-영화에 나오는 미르초유 할머니 스토리인가?
“그렇다. 북한 고아들을 데리고 루마니아에 온 조정호와 미르초유의 러브스토리를 현지로 가서 촬영했는데,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할머니가 대뜸 ‘북한 아이들은 루마니아에만 온 게 아니다’라고 하셨다. 폴란드에도 가고, 체코, 헝가리에도 갔다며. ‘김일성의 아이들’을 찾아 나선 16년 여정의 시작이었다.”
-조갑제는 영화 ‘닥터 지바고’에 비유했더라.
“둘 다 공산주의의 비극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러시아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지바고와 라라의 슬픈 운명을 통해 공산주의 비극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처럼, ‘김일성의 아이들’은 주체사상의 비극을 전쟁고아들과 그들을 자식처럼 돌봤던 동유럽 사람들의 사랑을 통해 보여준다.”
-초반에 등장하는 설원(雪原)도 ‘닥터 지바고’를 연상케 한다.
“폴란드 프와코비치 지역이다. 눈이 아니라 상고대 풍경인데, 안개 낀 숲의 기온이 급랭하면 이슬들이 작은 알갱이로 얼어붙어 눈이 내린 듯 매우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된다. 그런데 해가 뜨면 20분 만에 녹아 사라져 포착하기 힘들다. 다큐를 본 한 폴란드 감독이 어떻게 촬영했냐고 묻더라. 자기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더라며며(웃음). ‘김일성의 아이들’은 우연과 기적이 모여 만들어진 영화다.”
◇ 동유럽으로 간 전쟁고아 1만명
-북한의 전쟁고아들은 왜 동유럽으로 갔을까?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북한은 동유럽의 공산국가로, 남한은 입양의 형태로 서유럽과 미국에 보냈다. 냉전시대 미·소 두 진영은 군사·경제·과학은 물론 인권의 영역에서도 경쟁했는데 소련은 북한의 전쟁고아들을 소비에트 연방 국가들이 돌보게 함으로써 공산주의의 연대와 우월성을 과시하고 싶어 했다.”
-소련의 제안을 동유럽 국가들이 기꺼이 받아들였나?
“불가리아는 처음에 거부했다. 2차 대전 직후라 병원과 학교가 무너지고 기간산업들이 파괴돼 경제가 엉망인데, 동쪽에서 온 생면부지 아이들까지 돌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도 소련은 당근과 채찍으로 회유하고 설득했다.”
-기차에서 내리는 북한 고아들을 따뜻하게 환대하는 동유럽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소련의 프로파간다가 작용했을지라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불가리아 노인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어릴 적 소원이 빵에다 버터를 듬뿍 발라 먹는 것이었다’는. 그만큼 가난했는데도 아이들은 북한 고아들과 친구가 되어 빵과 버터를 나눠 먹은 것이다.”
-70~80대가 된 그들이 어릴 때 북한 아이들에게서 배운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충격이었다.
“당시 북한 아이들의 일과는 교사들 감시 아래 매일 똑같이 이뤄졌다. 아침 6시 반에 기상해 체조를 한 뒤 운동장에 인공기를 게양한다. 인공기는 김일성 얼굴을 새겨 넣어 가로로 특수 제작한 것이다. 국기에 충성을 맹세한 뒤 김일성 찬양가를 불렀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으로 시작하는 노래를 매일같이 불렀으니 불가리아 아이들 귀에도 못이 박힌 거다.”
◇ 미르초유의 사랑과 눈물
-비극은 1956년 북에서 날아온 ‘전원 철수 명령’에서 시작됐다고 했더라.
“헝가리 자유혁명 등 그 무렵 동유럽에 불었던 자유화 바람 때문이었다. 초머 모세 전(前) 헝가리 대사가 쓴 책에 재미난 대목이 나온다. 헝가리 대학생들이 총을 다룬 경험이 없으니 어릴 때부터 군사 훈련을 받은 북한 유학생들이 기관총 작동법을 알려주고, 소련 탱크에 맞설 아이디어도 줬다는 거다. 실제로 시위대에 참여한 북한 학생들도 있었다. 유학생을 비롯해 1만명에 이르는 전쟁고아들이 자유의 맛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 김일성은 전원 철수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북한 고아들은 가족처럼 지냈던 동유럽 사람들과 강제로 이별하게 된 건가.
“자식이 없는 어느 할아버지와 가족처럼 살던 소년이 북한으로 떠나기 며칠 전 눈밭에서 몸을 굴리고 있길래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감기에 걸리면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될까봐서라고 하더란다. 송환 열차를 타지 않으려고 도망쳤다가 잡혀서 끌려가는 아이도 많았다.”
-북한 교사 조정호와 미르초유의 사랑을 길게 다뤘다.
“그런 사랑도 가능할까 싶어서(웃음). 2004년 미르초유 할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작은 방에 종이 꾸러미가 잔뜩 쌓여 있었다. 들춰보니 깨알같은 글씨로 한글이 적혀 있더라. 한국·루마니아 사전과 루마니아·한국 사전을 만들고 있었던 거다. 이걸 왜 만드냐고 물었더니, 그 답이 걸작이다. ‘다시 남편을 만나면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데 그는 루마니아 말을 잊었을 거고, 나는 조선말을 잊었을 테니 사전이 필요할까봐 만든다’고 했다.”
-북으로 돌아간 아이들 소식은 전혀 모르는 건가?
“1959년까지는 편지 왕래가 가능해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이번에 감독판으로 재개봉한 것도, 새롭게 발굴한 편지와 사진, 증언들을 전하기 위해서다. 편지엔 따뜻한 옷을 보내달라, (동유럽의)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다, 여기서 나를 데려가 줄 수 없느냐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송환 후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들이다.”
-폴란드는 아이들을 찾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던데.
“폴란드에만 아이 2500명이 맡겨져 자랐는데 송환 이후 행방을 찾아달라는 요청이 많아지자 평양 주재 폴란드 대사관에서 비공식적으로 진행했다. 한번은 어떤 소년이 폴란드 대사관저 앞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와 폴란드 말을 중얼거리더란다. 대사가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폴란드 말이 너무 그리워서였다며 도망치더란다.”
-결국 북한 전쟁고아는 한 명도 만나지 못 한 건가?
“북한에서 루마니아로 도망쳐 택시 운전을 하며 살고 있다는 남자가 있다고 하길래 만나러 갔는데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북한과 루마니아가 수교국이니, 신변이 위험해질 것을 두려워한 것 같다.”
-시사회에 주사파 핵심이었던 민경우도 왔더라.
“주체사상은 80년대 학생운동권이 가졌던 일종의 환상이었다. ‘김일성의 아이들’은 그들이 찬양했던 주체사상이 만든 비극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6년간 영화를 만들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주체사상과 김일성주의가 건재하는 한, 북한과의 정상적인 회담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통일도 요원하다. 김대중의 햇볕정책? 문재인의 통일 드라이브? 정말 허탈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 세상을 바꾸는 스토리텔러
-첫 개봉한 2020년엔 참패했다.
“폭망 수준이었다(웃음). 무조건 현지에 가서 촬영해야 하는 영화라 아내가 반대하면 포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내가 해보자고 하더라. 집, 자동차 등 목돈이 될 만한 모든 것을 팔아 제작했는데 객석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도 왜 계속 다큐를 찍나?
“나는 실패를 부끄러워하거나 그로 인해 움츠러들지 않는다(웃음).”
-‘건국전쟁’으로 만회를 좀 한 건가?
“많이 나아지긴 했다(웃음). 오랜 꿈이었던 ‘리버티 영상 아카데미’도 곧 시작한다. 촬영·편집 등 영상 인력을 육성하고 대한민국의 올바른 역사도 함께 가르치려고 한다. ‘건국전쟁’을 봐주신 117만 관람객 덕분이다.”
-영화계에서 김덕영을 대하는 분위기도 달라졌을까.
“큰 변화는 없다. 엔딩 자막을 보면 알겠지만 ‘건국전쟁’도 ‘김일성의 아이들’도 내가 1인 다역을 해서 만들었다. 돈을 주겠다는데도 스태프들이 오지 않는다.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다.”
-’건국전쟁’ 2편은 잘 제작되고 있나.
“열심히 하고 있다. 제주 4·3사건의 진실을 비중 있게 다룰 것이다.”
-2편에선 이승만의 과오도 소개하나.
“아니다. 이승만 공과에 기계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공을 훨씬 더 많이 얘기해야 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개인이 했다는 칭송을 받았다.
“류석춘 교수가 이승만에 대해 그렇게 열심히 논문을 쓰고 책을 냈는데도 알아주지 않더니, 영화 한 방에 대중의 인식이 바뀌는 걸 보고 놀랐다고 하더라. 그만큼 스토리텔러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좌파 진영엔 거짓도 사실로 만드는 스토리텔러들이 포진하고 있다. 역사 전쟁에서 이기려면 뛰어난 스토리텔러들이 나와야 한다.”
-’김일성의 아이들’은 극장에 많이 걸릴까?
“일단 CGV 10개관에 걸린다. ‘건국전쟁’의 출발과 비슷하다. 개봉 첫주에 많이 봐주셔야 희망이 있다.”
☞김덕영
1965년 서울 출생. 서강대 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저물어가는 1989년’으로 영화계에 데뷔, ‘1공장 45반의 여름’ 등 여러 작품을 발표했다. 로마국제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 작품상을 받은 ‘김일성의 아이들’은 국가기록원에 영구 등재됐고, 올해 개봉한 ‘건국전쟁’은 117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했다. ‘리버티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다.
출처 : 조선일보
기사원문 :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4/06/24/RQCGPPLHAZE5BK7NYDH2UHKS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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