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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garia Love/불가리아 한국 뉴스

발칸산맥의 장미처럼

KBEP 2023. 9. 4. 23:02
  • 웹출고시간2023.09.03 14:43:19
  •  

이정희 수필가

향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요즈음 같은 장마철에 더러 뿌리기는 해도 관심은 없다. 그러다가 향수 중에 최고라는 발칸 산맥의 장미 얘기를 들었다. 불가리아 카잔낙에서 나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수다.

그 곳의 생산업자들은 하루 중 가장 춥고 어두운 새벽 12시에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는 2시쯤에 끝내는데 바로 그 시간이 최고 아름다운 향이 뿜어져 나오기 때문이란다. 한밤중이면 작업도 쉽지는 않다. 불을 밝혀야 되는 것은 물론 뼛속까지 스미는 냉기 또한 만만치 않다.

밤중에, 그것도 가장 짧은 시간 내에 따는 것이 생각할수록 묘하다. 과학적 실험에 의하면, 태양이 비치는 낮에는 향기의 40% 가량이 감소된다. 향수라고 하면 예쁘고 고운 느낌인데 어둡고 축축할 때 강해진다니 그럴 수가. 우리 삶도 춥고 어두울 때가 있다면 각자의 향기를 뿜어내는 시간으로 볼 수 있겠다. 힘들기는 하지만 그때부터 삶의 향기도 나기 시작할 테니까.

발칸 반도는 동부유럽의 보스니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가 중심이 된다. '발칸'은 불가리아를 가로지르는 발칸산맥에서 유래되었다. 그 말 자체가 '거칠고 숲이 많은 산악지대'를 뜻한다.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향수가 좋은 것은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따기도 하지만 산악지대 특유의 선선한 날씨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계 로즈 오일의 90%가 어둡고 선선한 장미의 계곡에서 만들어지듯 인생의 향기도 어둠과 인내와 고통의 역사가 수반된다. 가장 푸른 하늘은 가장 거센 태풍이 지난 다음이듯 한 치 앞도 나가기 힘든 고통은 곧 시작될 아름다운 이야기의 전개부이며 도입부다.

잘 보관하지 않으면 향기가 약해지고 변색되기 때문에, 어두운 곳에 보관하는 특징도 그 때문일 게다. 밝고 명랑한 것도 좋지만 어둠 역시 삶의 목록이다. 꽃만 봐도 예쁜 것은 물론, 열악한 환경에서도 필 때라야 진정한 꽃의 본령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따스한 지방의 꽃으로 생각했는데 숲이 울창한 발칸산맥의 장미가 고급향수의 원료라는 것도 신선한 충격이다. 힘들 때는 그로써 어려움을 극복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더욱 그것이 계기가 되어 삶의 향기를 촉촉 내뿜을 수 있다면 작히나 좋으랴.

좋은 술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아름다운 꽃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갈고 닦은 인품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 그 인생의 향기를 만드는 것은 또 저마다의 몫이다. 힘들수록 자기만의 향기를 만들 수 있어야겠다. 길을 가다가 돌을 만나면 누군가는 걸림돌이라 하고 누군가는 디딤돌이라고 하듯이. 꽃잎은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았다면서 향기를 내뿜는 것처럼 그렇게.

특별히 향수의 가치가 그윽한 내음이라는 것을 돌아본다. 열광하는 삶도 아름답지만 인품의 향기 또한 변덕스럽지 않고 그윽해야 하리. 말은 향수라고 해도 자극적일 때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수 있다. 지나치게 많이 뿌릴 것도 아니고 은근히 풍길 때라야 향의 진수가 나온다.

'향기'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꽃의 한 살이와도 같다. 꽃 피우는 일도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절반은 고통이다. 비바람에 꺾이는 아픔과 목이 타들어갈 것 같은 갈증도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 견디었다. 그리고 끝내는 아름다운 향을 피우는 게 아닐까.

누구나 좋아하는 향을 뿜어내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게도 향을 묻힌다. 영혼의 향기는 고난 속에서 발산된다는 뜻이었으리. 장미보다 아름다운 것은 그 향기라고 하는 것처럼 진정 아름다운 삶이 뭔가를 숙지하는 셈이다.

 

출처 : 충북일보

기사원문 : https://www.inews365.com/news/article.html?no=778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