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청파 신광열 선생 독립유공자 서훈의 의미]
자생한방병원 설립자 신준식 박사·자생의료재단 신민식 사회공헌위원장
“선친의 긍휼지심, 자생한방병원 설립의 근간…책무 이어나갈 것”
“23일 학술대회, 한의사 독립운동史 다각도 조명하는 학술의 장”
- 윤영혜 기자
- 등록 2022.08.18 14:33
“일제강점기 한약방은 독립운동가들의 거점이었습니다. 약초를 채집한다는 명분도 있었고 침통을 들고 왕진을 다닐 수도 있었으니까요. 의료인이다보니 신뢰나 지지도 높았습니다. 독립군 중 부상이 발생하면 치료를 도맡아야 할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선친께서는 조국이 어려웠던 시절, 민중과 국가를 위해 목숨도 마다하지 않고 내놓은 분이셨습니다. 이번 서훈이 민족의학인 한의학을 지키고 발전시키려 했던 숙조부와 선친의 유지를 널리 알림으로써 국가에 헌신한 한의사들을 재조명하고 한의학 부흥을 위한 기틀이 되길 바랍니다.”
지난 15일 광복 77주년 독립유공자 정부 포상에서 대통령표창을 받은 故신광열 선생의 자제인 자생한방병원 설립자 신준식 박사와 자생의료재단 신민식 사회공헌위원장(잠실자생한방병원 병원장)은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이들의 숙조부인 신홍균 선생은 독립군 한의군의관으로서 대전자령 전투를 비롯한 동경성·사도하자 전투에서 활약했고, 의사이자 한의사였던 선친 신광열 선생은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투쟁을 비롯해 사장(死藏)될 뻔한 민족의학을 부흥시키기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한의사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일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억하는 일일 뿐 아니라 한의학 전체의 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는 신준식·신민식 박사. 이들 형제로부터 한의학 전수와 발전의 원동력이 된 독립운동 정신에 대해 들어봤다.
Q. 서훈을 축하드린다. 한의사 독립운동가 발굴에 힘쓰는 까닭은?
신준식 박사=한의사 독립운동가 발굴의 시작은 선대의 독립운동 업적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가문의 어르신들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생각은 없었다. 한방병원 설립자로서 이를 알리는 게 자칫 홍보 수단으로 비춰질까 우려됐기 때문이다.
신민식 사회공헌위원장(이하 신민식 위원장)=하지만 독립운동가들의 업적과 사료가 점차 사라져간다는 안타까움과 역사의 행적을 찾아 알리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는 주변의 설득 덕분에 발굴 및 연구에 임하게 됐다.
신준식 박사=선배 한의사들의 민족정신을 계승해 그것을 이어나가는 것이 후대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 한의학 말살정책으로 한의사는 의생으로 격하됐고, 독립운동 하는 불순분자를 신고 안했다는 이유로 한의사 면허마저 점점 줄어들었다. 이러한 역사를 알아야 한다.
Q. 공적을 정리하고 서훈을 신청하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다.
신준식 박사=선친은 독립운동을 하다보니 가명을 쓸 수밖에 없었는데 동일인이라는 직접적 증거를 찾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독립운동 기록인 월남유서의 내용을 입증하는 미국 중앙정보부(CIA) 보고서가 발견됐다. 신익희 선생이 주도한 정치공작대에 선친이 함경남도 책임위원으로 파견됐고 구국활동을 한 내용들이 기록으로 남아있었다.
신민식 위원장=학계에서 공식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인원을 200만명으로 추산하는데 현재 공훈을 인정받은 인원이 17000여명 정도로 알고 있다. 독립운동 하신 분들 중에는 가족들 때문에 가명으로 활동하다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 정부가 서훈하려해도 후손을 못 찾고, 후손이라 주장해도 입증을 못하는 어려움이 있는 게 현실이다.
신준식 박사=일제강점기 34년 11개월간 자행된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제헌국회에 설치되었던 특별기구인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와해되면서 증언자도 사망하는 등 안타까운 사례가 많다.
신민식 위원장=그나마 올해 포상받은 303명도 정부가 총동원해 증거들을 발굴한 것으로 안다. 비석이나 편지같은 것이 증거로 인정이 되는 식으로 제도가 개선되면 좋겠다.
Q. 독립운동을 하셨던 선친에 대한 기억이 궁금하다. 느끼는 책무도 남다를 것 같다.
신준식 박사=옆구리에 30cm의 자상이 있던 아버지께서는 투쟁의식이 강한 분이셨지만 동시에 긍휼지심을 가진 따뜻한 분이셨다. 선친께서는 늘 약자에 대한 연민을 가져야 하며 의술(醫術)보다 인술(仁術)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이유로 빈곤한 곳만 찾아 17번이나 이사를 다녀야 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무조건적인 헌신을 해오셨다. 6·25 이후 제대로 된 의료기관이 어디 있었겠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신 어머니까지 나서서 두 분이 치료소에서 어려운 사람들,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봤다. 중학생 때는 이런 부모님 옆에서 소독하는 일을 도와드렸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부모님의 이러한 긍휼지심(矜恤之心)이 자생한방병원을 설립하는 근간이 됐다. 이런 선한 영향력이 곳곳에서 발휘된다면 한의학 발전의 원동력이자 후학들이 한의학을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신민식 위원장=자생의료재단이 사회공헌 활동에 앞장서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책무 때문이다. 1년에 현금으로 지출하는 사회공헌 비용만 20억원이다. 재능기부로 참여하는 의료인들의 활동비까지 따지면 가치로만 100억원으로 추산된다.
Q. 선친께서 집필한 ‘청파험방요결’에 대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신준식 박사=“청파험방요결을 통해 가전비방을 전수하니 후손들이 한의학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게 하라.” 자생한방병원 한방 비수술 척추치료의 근간이 된 ‘청파험방요결’을 끝맺는 말이다. 선친께서는 누구보다 민족의학의 부흥과 발전에 관심이 많았다. 비방(祕方)으로 전해져 오던 치료들을 의서에 상세히 명시해 후대에 한방 치료법이 표준화되는데 일조하길 바랐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유실된 가문의 비방을 집대성했다. 임상경험방, 전래경험방 등을 종합해 쓰셨다.
Q. 독립운동 한의사들을 기리는 학술대회를 준비한다고 들었다.
신민식 위원장=독립운동가였던 송운(松雲) 방주혁 선생은 한의과대학을 설립, 한의사제도를 창립해 한의사로서 대한민국에 큰 발자취를 남기는 데 성공했지만, 아직도 독립유공자로 인정을 못 받고 있다. 이렇게 서훈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을 조사해 발표할 계획이다. 지난 수년간 노력의 결실인 이번 서훈에서 한걸음 나아가 추가적으로 한의사들의 독립운동사 연구를 진행하는 셈이다. 오는 23일 열리는 ‘독립운동에 헌신한 한의사들의 삶’ 학술대회가 바로 이를 위한 자리다. 인하대학교 융합고고학과와 함께하는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독립운동에 헌신한 한의사들의 삶’이라는 주제로 간도와 대전자령에서의 독립운동 및 한의사들의 항일 운동에 대한 역사학 교수들의 논문 발표가 진행된다. 사료가 매우 희귀한 만큼 여러 발표자를 통해 한의사의 독립운동사를 다각도로 조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학술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학술대회는 매년 개최할 예정이며, 3년 동안 30편 정도의 한의계 관련 논문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윤영혜 기자
출처 : 한의신문
기사원문 : https://www.akomnews.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5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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