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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비아 로마나] 이탈리아 태권도 '대부' 박영길 명예회장

KBEP 2022. 6. 23. 11:20
  • 입력 : 2022.06.21 07: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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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로마에 개설된 첫 도장 사범으로 활동하며 인연
텃세 부리던 가라데 제압…현지 태권도협회 창설 산파역

[※ 편집자 주 : '비아 로마나'(Via Romana)는 이탈리아어로 '로마의 길'이라는 뜻으로, 이탈리아 현지의 숨겨진 인물이나 이야기를 찾아 전하는 특파원 연재 코너입니다.]

박영길 이탈리아태권도협회 종신 명예회장

2021년 7월 24일, 도쿄올림픽 태권도 경기장. 남자 58㎏급에서 금메달을 딴 이탈리아 비토 델라퀼라 선수가 시상식을 마치자마자 라커룸으로 들어가더니 영상 전화를 걸었다.

이 기쁜 소식을 누구보다 빨리 직접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옆에는 함께 우승을 일군 스승 클라우디오 노라노 감독이 있었다.

"저 금메달 땄어요" 델라퀼라 선수가 기쁨에 들떠 외치자, 휴대전화 화면 속 남성이 "장하다"며 감격 어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이 영상 통화 속 남성이 이탈리아 태권도의 '대부'라 불리는 박영길(80) 현 이탈리아태권도협회(FITA) 종신 명예회장이다. 반세기 넘은 이탈리아 태권도 역사의 산증인이다.

태권도에서 이탈리아 팀의 첫 금메달이 나온 그날은 마침 박 회장의 생일이었다.

박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인생에서 가장 기쁜 생일 선물 가운데 하나였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태권도 역사는 현지 유학 중이던 박 회장의 사촌 형 박선재(1938∼2016·전 세계태권도연맹 부총재) 씨가 1966년 9월 로마 외곽에 첫 태권도장을 개관하고 이듬해 2월 박 회장이 사범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박 회장이 이탈리아 태권도 개척의 소명을 받아들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1965년 당시 최홍희(1918∼2002) 국제태권도연맹(ITF) 회장이 태권도시범단 공연을 위해 로마를 방문했을 때 이탈리아에도 태권도가 보급돼야 한다는 뜻을 밝히자 최 회장의 통역을 맡은 박선재 씨가 박 회장을 소개한 것.

경희대 상대를 졸업하고서 큰아버지가 운영하던 인쇄소를 물려받아 운영할 계획이던 박 회장은 최 회장의 권유로 인생 행로를 바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그는 이후 최 회장으로부터 단기 집중 태권도 교습을 받았다고 한다. 최 회장은 육군 장성 출신 무도인으로 '태권도'라는 이름을 작명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에 태권도의 뿌리를 내리라는 특명을 받은 박 회장의 수완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는 로마 도장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뒤 남부 나폴리로 내려가 또 도장을 차렸다. 나폴리 역시 쉽지 않은 곳이었다. 특히 현지에 먼저 정착한 일본 가라데의 텃세가 심했다.

그 와중에 태권도의 이미지를 단박에 바꿔놓는 사건이 있었다.

태권도를 내쫓으려던 가라데 사범이 건장한 제자들을 데리고 와 결투를 신청했고, 이를 받아들인 박 회장이 장신의 가라데 수련생을 돌려차기 한 방으로 때려 눕혀버린 것이다.

이는 가라데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며 텃세를 잠재운 것은 물론 현지인들에게 태권도가 가라데보다 뛰어난 무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그때만 해도 가라데는 꽤 지명도 있는 무예였어요. 수련생도 훨씬 많았죠. 그런데 160㎝가 조금 넘는 단신의 한국인이 태권도로 180㎝가 넘는 가라데 수련생을 때려눕혔다고 하니 놀랄 만한 일이었죠. 그래서인지 나폴리를 무대로 활개 치던 마피아 조직원도 우리 도장만큼은 건드리지 못했어요."

2016년 이탈리아태권도협회 종신 명예회장으로 추대된 박영길(왼쪽)씨

이후 이탈리아 내 태권도 보급도 탄력을 받았다. 여러 도시에 도장이 세워지고 수련생도 크게 늘었다. 한국은 몰라도 태권도는 알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 이탈리아올림픽위원회(CONI)에 정식 등록된 FITA도 박 회장이 '산파' 역할을 했다.

초기 박 회장은 박선재 씨와 의기투합해 사단법인 성격의 협회를 설립하고서 독자적으로 꾸려나갔다. 세계선수권대회와 같은 국제대회 참가비도 스스로 마련해야했다.

그러다 1980년 레슬링·역도·유도·가라데 등이 속한 CONI 산하 무도협회에 정식 가입했고 이어 1990년 독립 협회 FITA를 창설했다.

무도협회 종목 가운데 독립을 이룬 첫 사례였다. 당시 이탈리아에 훨씬 먼저 뿌리를 내린 가라데 사범들이 후발 주자인 태권도에 선수를 뺏긴 데 대해 울분을 토했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박 회장의 노력으로 이탈리아 전국 40여 개 도시에 100여 개의 도장이 운영되는 등 저변이 크게 넓어진데다 태권도가 1988년 서울올림픽 시범종목으로 채택되며 위상이 올라간 것도 한몫했다.

비사이긴 하지만 당시 CONI 회장의 아들이 박 회장의 태권도 제자였다는 점도 '은밀하게' 영향력을 미치는 한 요소였다고 한다.

태권도는 2000년대 들어 이탈리아인들이 사랑하는 무예로 더 확고히 자리 잡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며 비상을 위한 날개를 달았다.

박 회장을 포함해 한국인 중심으로 운영되던 태권도협회도 현지화해 2016년에는 처음으로 이탈리아인 협회장이 탄생했다.

지금도 협회를 이끄는 박 회장의 제자인 안젤로 치토 회장이다. 두 사람은 태권도 스승과 제자로 처음 만나 40년 넘게 각별한 인연을 이어온 사이다.

치토 회장은 2016년 취임과 동시에 2선으로 물러나게 된 박 회장에게 종신 명예회장의 칭호를 부여했다. 태권도 보급과 발전에 기여한 '마에스트로'에 대한 최고의 예우였다.

치토 회장은 아직도 중요한 결정에 앞서 박 회장에게 조언을 구한다고 한다.

올해 현재 FITA에 정식 등록된 태권도장은 600여 개, 회원 수는 3만 명을 헤아린다. 이탈리아 유명 배우 클라우디아 제라니, 프로축구리그 세리에A에서 뛰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AC밀란)도 태권도 유단자다.

박 회장은 여든 나이인 지금도 여전히 태권도 보급에 열정적이다. 개인 자격으로 이탈리아 전국을 돌며 태권도 교습을 여는가 하면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이탈리아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2년 넘게 중단됐다가 이달 초 로마에서 재개된 세계태권도연맹(WT) 월드태권도그랑프리의 성공적 개최에도 힘을 보탰다.

남은 인생의 목표는 이탈리아에서 태권도가 '국민스포츠'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태권도를 생활체육화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태권도의 저변을 더욱 넓히려면 '경기화'와 더불어 '무도화'가 강화돼야 합니다. 요가처럼 심신을 단련하고 정신력을 고양하는 하나의 생활 스포츠로 인식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대련보다 품새 중심의 태권도 교육을 시도해보려 합니다."

박 회장의 이러한 생각은 이미 현장에서 조금씩 실행되는 중이다. 최근 일선 학교에서 태권도를 시범 혹은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는 곳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박 회장은 이탈리아 태권도와 동행한 인생사를 정리해 자서전으로 펴낼 계획이다. 이미 한국어 원고 집필을 마무리했고 현재는 이탈리아어로 번역 작업을 진행 중이다.

 

"책을 쓰면서 '참 숨 가쁘게 달려왔구나'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탈리아 태권도 역사를 되돌아보니 제 삶이 보이더군요. 이탈리아의 태권도가 이만큼 컸구나 생각하면 감개무량합니다. 앞으로도 후배들이 저를 '영원한 태권도인'으로 기억해주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연합뉴스]

 

출처 : 매일경제

기사원문 : https://www.mk.co.kr/news/world/view/2022/06/539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