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경 기자 입력 2022. 04. 19. 03:12
'세계 빵 공장' 우크라이나 전쟁, 美·아르헨티나 가뭄으로 신음
中은 코로나 봉쇄로 파종 못해.. 곡물가격지수 1년새 37% 올라
우크라이나, 러시아 침공에 올 곡물 파종 면적 절반으로 줄어
“지금 밀 씨앗을 한창 뿌려야 할 때인데… 올해는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크라이나의 항구도시 오데사에서 북쪽으로 약 200㎞ 떨어진 내륙 마을의 농부 올렉산드르 추막씨는 최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밀 농사는 완전히 망한 것 같다”며 한숨지었다. 20년 넘게 밀과 옥수수, 해바라기 농사를 해 온 그는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 때문에 비료와 제초제, 농기계에 쓸 연료 등 모든 게 부족하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일손을 구할 수도 없다. 남성들은 전쟁터로 달려갔고, 여성들과 아이들은 타지로, 외국으로 피란을 떠났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로 농작물을 많이 수출하는 나라인데, 올해는 우리 국민이 먹을 만큼의 식량을 생산하기도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전 세계 곡창지대가 흉작의 공포에 떨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흑토’ 지역, 북미의 ‘프레리’, 아르헨티나의 ‘팜파스’ 등 세계 3대 곡창지대를 비롯, 세계 최대 식량 산지인 중국이 모두 극도의 생산 부진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은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세계 밀 수출 1위인 러시아와 5위인 우크라이나는 전쟁으로 막대한 피해를 봤다. 미국과 아르헨티나는 심각한 가뭄이 작황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봉쇄로 파종 시기를 놓치고 있다.
세계 곡물 시장에선 벌써 아우성이 나오고 있다. 지난 14일 기준 미국 시카고선물시장의 밀 가격은 2020년 4월 평균(198.85)에 비해 2.02배로, 작년 4월 평균(246.11)에 비해 1.63배인 402.89달러로 올랐다. 전 세계 식탁 물가도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 3월 곡물가격지수는 170.1포인트로 지난달보다 17.1% 상승했다. 작년 3월(123.9포인트)에 비해 약 37.3% 오른 것이다.
데이비드 비즐리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은 “코로나로 전 세계 기아 인구가 18% 증가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760만~1310만명이 추가로 심각한 굶주림으로 고통받을 수 있다”며 “재앙 이상의 재앙 상태”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아프리카 대륙의 경우 전체 인구의 4분의 1 이상인 3억4600만명이 심각한 식량 불안정에 직면해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의 빵공장’으로 불리는 우크라이나는 전체 국토의 약 70%(42만2000㎢)가 농경지다. 경작 가능한 면적이 유럽연합(EU) 전체의 30%에 달하는 데다 밀과 옥수수, 콩 농사에 가장 적합한 흙으로 꼽히는 흑토로 이뤄져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인 8400만t의 곡물을 생산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전면 침공으로 올봄 곡물 파종 면적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군이 곳곳에 깔아놓은 지뢰와 폭탄 잔해를 처리하는 것이 우선인 데다 연료도 인력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유엔은 우크라이나의 농지 중 최대 30%가 전쟁터가 될 수 있다고 추정한다. 수출길도 막혔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곡물 6500만t, 그중에서도 밀은 2530만t을 수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수출하는 밀의 60%가 지나가는 오데사, 일리치프스크 등 흑해 연안 항구는 운항이 중단됐다. 또 폴란드,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등과 이어지는 철도망도 난민 수송 등으로 쓰이고 있어 유럽으로의 수출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침략국인 러시아는 밀 수출 중단에 나섰다. 미하일 미슈스틴 러시아 총리는 지난달 14일 “국내 식품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유라시아경제연합에 밀·호밀·보리·옥수수 수출을 6월 30일까지 금지하고, 백설탕과 원당 수출은 8월 31일까지 금지하는 내용의 명령에 서명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밀 수출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과 아르헨티나는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다. 남미 아르헨티나의 경우 온화한 기온과 비옥한 토양으로 밀과 옥수수, 콩을 키워 80여 국에 수출하고 있는데, 지난해 최악의 가뭄으로 흉작 위기에 놓였다. 아르헨티나의 파종은 8월부터 이뤄지는데 지난해 8월 평년에 비해 강우량이 50% 수준에 그쳤다. 2017~2018년 아르헨티나의 콩 생산량은 약 5500만t이었는데 2021~2022년 가뭄으로 약 1500만t이 줄어들 예정이라고 부에노스아이레스 곡물거래소는 밝혔다.
가뭄은 수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팜파스에서 수확한 곡물의 대부분을 옮기는 파라나강의 수위가 낮아진 데다가, 아르헨티나 농업 수출의 80%를 소화하는 산타페주 로사리오 항구의 수위도 극심히 낮아지면서 곡물 운반량이 제한됐다. 아르헨티나 항구해양활동회의소에 따르면 로사리오항 수심이 얕아지면서 수출 선박들이 평소보다 18~25%가량 적은 화물을 싣고 있다.
세계 2위 밀 수출국인 미국도 가뭄이 심각하다. 미국 내 최대 밀 생산지인 캔자스주에서는 작년 10월부터 눈과 비가 오지 않아 밀 흉작이 예상된다고 CNN은 보도했다. 겨울밀은 가을에 파종해 봄에 싹을 틔우는데, 미 국립가뭄경감센터(NDMC)에 따르면 지난 8일 캔자스주의 절반 이상이 가뭄의 5단계 중 3단계인 ‘심한 가뭄’(Severe Drought) 또는 그보다 더 나쁜 상태인 것으로 분류됐다. 또 다른 밀 생산지인 오클라호마주에서는 밀밭의 4분의 3가량이, 텍사스주는 3분의 2 이상이 심한 가뭄 상태에 빠져있다. 로이터통신은 작년 겨울 토네이도로 미국 밀밭의 흙이 휩쓸려 날아가 흙 속 영양분이 손실된 상황에서 물 부족 문제까지 덮치면서 흉작이 점쳐진다고 보도했다.
중국에서는 코로나 봉쇄로 파종 시기를 놓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중국 내 곡물 생산량의 20%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지린성·랴오닝성·헤이룽장성 등 동북 3성에서는 오미크론 확산을 막기 위한 봉쇄가 계속되고 있다. 3~4월에 쌀·옥수수 등의 파종을 시작해야 하는데 비료나 종자 등 농자재가 유통되지 않고 있다. 외부인 출입도 제한돼 노동력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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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조선일보
기사원문 : https://news.v.daum.net/v/20220419031222410?x_trk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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