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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렬의 Echo]청년 신격호, 잠들지 않는 열정의 소환

KBEP 2022. 2. 26. 09:33

머니투데이

  • 송정렬 산업2부장 2021.11.05

#'사나이가 뜻을 세워 고향을 떠나면 학문을 못 이룰 땐 죽어도 돌아오지 않으리.'

 

1941년말 식민지 조선의 스물한 살 청년은 이 짧은 한시 한 구절을 남기고 고향 '둔터마을'을 떠났다. 그가 몸을 실은 것은 부산항을 출발해 일본 시모노세키로 향하는 부관연락선. "아무리 젊은 혈기라고는 해도 너무나 무모한 도전이었다"고 훗날 스스로 평가한 이날의 가출, 혹은 출가는 오늘날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20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롯데의 시작을 알리는 작지만 큰 발걸음이었다.

혈혈단신의 식민지 청년은 어떻게 맨주먹으로 일본 땅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까. 여전히 삐걱대는 한일관계나, 얼마 전까지 거세게 분 '노재팬' 운동의 열기만 생각해봐도 80년 전 그가 맞닥뜨려야 했던 차별과 멸시는 상상 그 이상으로 끔찍했을 것이라는 점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지난 3일 롯데그룹 창업주 고 신격호 명예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출간된 회고록 '열정은 잠들지 않는다'(한계를 넘어 더 큰 내일로)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다.

 

신격호는 1944년 그의 성실함을 눈여겨본 한 일본인의 전재산 6만엔을 투자받아 커팅오일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미국의 폭격에 공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참담한 실패를 맛봐야 했다.

그러나 신격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전쟁 이후 '롯데' 브랜드를 붙인 화장품으로 대박을 터트렸다. 신격호는 6만엔을 찾아 그 일본인을 찾아갔다. 그리고 이자로 집도 한 채 사줬다. 신격호가 투자금인 그 돈을 기를 쓰고 갚은 이유는 '신의'와 '한국인의 긍지' 때문이다. 자신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낸 사람에게 보답함으로써 신의를 지키고, 한국인은 믿을 만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 신의와 긍지가 바로 일본에선 '조센징'이라 차별받고, 한국에서는 '쪽발이'이란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악조건에서도 신격호가 롯데를 일궈낸 원동력이 됐음은 물론이다.

#재계순위 5위 롯데의 위기가 지속된다. 주력인 유통부문이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면서다. 유통시장의 중심축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변하는 시기에 롯데는 경영권 분쟁으로 시간을 허비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노재팬운동의 직격탄도 맞았다.

내상은 심하다. 간판인 롯데백화점이 1979년 창사 이후 처음으로 명예퇴직을 실시할 정도다. 희망퇴직 대상자 2000명 중 무려 25%인 500명이 신청했다는 사실은 더 큰 충격이다. 롯데마트, 롯데하이마트 등 다른 계열사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월급은 적을지 몰라도 사람은 자르지 않는다'는 롯데의 자긍심이 무너져내렸다.

롯데는 왜 위기에 빠졌을까. 뒤늦은 온라인 전환, 변화를 꺼리는 조직문화, 기업 인수·합병을 통한 반전카드 마련 실패 등등 그 원인에 대한 진단은 차고 넘친다. 사실 롯데 스스로만큼 위기의 원인이 무엇이고,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잘 아는 곳이 있을까.

어두운 터널의 끝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롯데스럽지 않다(?)"는 감탄을 받으며 고객몰이에 성공한 경기 의왕 '타임빌라스' 등 여기저기서 변화의 모습이 감지된다. 신동빈 회장도 전면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을 진두지휘하면서 변화의 고삐를 죄고 있다.

그러나 '뉴롯데'를 위해 지금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침통한 롯데 내부 분위기의 전환이다. 바닥까지 떨어진 자신감과 도전정신의 회복이다. 그 출발점은 바로 꿈 하나를 밑천으로 현해탄을 건넌 스물한 살 청년 신격호의 '잠들지 않는 열정'을 되살리는 것이리라. 올해 신격호 명예회장의 탄생 100주년이 롯데에 더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출처 : 머니투데이

기사원문 :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110410553499023&typ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