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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수명 연장…꿈 꿀 것인가, 꿈에서 깰 것인가

KBEP 2021. 10. 23. 10:13

중앙일보

입력 2021.03.22 00:30

업데이트 2021.03.22 09:22

 

므두셀라의 비밀

이준호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1990년대 초, 필자가 미국 칼텍 대학의 박사과정 동안 젊음을 불태운 연구실의 옆 연구실은 시모어 벤저 교수의 초파리 연구실이었다. 유전학 교과서에서 1950년대 유전자의 개념 정립에 기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유명한 유전학자와 이름이 똑같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실제로 동일인이었다! 그는 반도체 물리학자로 명성을 날리다 분자생물학자, 그리고 신경유전학자로 변신한 놀라운 지성이다.

당시 거의 칠순의 나이에 실험복을 입지 않으신 모습을 못 봤고,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을 연구실에 자주 데려왔다. 어떻게 보면 노화를 극복하신 분이라는 경이로운 찬사를 자아내게 한 분이었다. 그분의 연구실에서 므두셀라라는 초파리를 발견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다. 초파리 유전학으로 찾아낸, 수명이 약 30% 길어진 돌연변이 초파리의 이름을 성경 속에서 가장 오래 산 인물 므두셀라(969세라고 한다)를 따라 명명하였다. 누구에게나 꿈과 같은 노화 지연과 수명 연장, 우리는 어디까지 알고 있으며, 어디까지 기대할 수 있을까.

성경 기록을 빼고 가장 장수를 누린 사람은 122살까지 살다가 1997년에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잔 칼망이다. 인간의 최대 수명과 관련해서는 학자들 간 세기의 내기가 벌어져 있다. 앨라배마대의 스티븐 오스태드 교수는 2150년이 되면 150살까지 사는 사람이 나올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시카고대 제이 올쉔스키 교수는 그때가 되어도 130살 이상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두 과학자는 150달러씩 내서 신탁회사에 맡겨 두었다. 150년 후에 둘 중 하나가 이기게 되면 그때의 수익금을 그 자손이 다 갖는다는 것이다. 인간 수명 연장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은 시대를 막론하고 끊이지 않았다.

만약 오스태드 교수가 내기에서 이기려면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할까. 아마도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아주 좋은 항노화 약품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이미 학계에서는 많은 시도가 있었고 일정한 성과도 보고되고 있다. 발견의 대부분은 약물 재창출로 이루어지게 된다. 기존의 약이 알려진 약효와는 다르게 노화 방지에 효과가 있는 것을 찾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안전성 문제 등 많은 걸림돌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픽=최종윤

면역억제제인 라파마이신, 적포도주에 많다고 알려진 라스베라트롤, 한센병 처방인 항생제 DDS, 당뇨병 치료제 메타포르민 등 많은 후보 약품들이 연구됐고 동물모델 등에서 증명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의 결과이거나 ‘밀접한 연관’의 수준으로 아직 사람에게 적용하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조금 더 기다려 볼 가치가 있는 연구들이라 하겠다.

필자의 연구는 한센병 치료제 DDS에 대한 것이었다. 이 항생제는 개발된 지 100년이 넘어서 아주 싼 약제로서 한센병 치료제로서 쓰이는 약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한센인들의 수명을 조사한 결과 이 약을 평생 복용한 그룹의 평균 수명이 길었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 필자의 연구실에서는 예쁜꼬마선충에게 이 약을 먹여 수명 연장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꼬마선충에서의 결과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였지만 사람의 데이터는 밀접한 연관관계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더욱이 항생제이기 때문에 오남용의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도 중요하다. 항생제 약효는 없으면서 수명 연장 효과만 있는 새로운 약물을 찾을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약물 창출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시, 사람의 유전자 중에서 수명을 조절하는 것이 있다면 그 유전자의 성능을 약물 등으로 조절하는 것으로 수명 연장이 가능하지는 않을까. 예쁜꼬마선충의 유전학적 연구 결과에 의하면 정상적 상황에서 수명을 제한하는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예쁜꼬마선충 돌연변이 중에는 수명이 최대 3배까지 길어진 변이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돌연변이 연구로 인슐린 신호전달체계에 관련된 일련의 유전자들이 수명 연장 또는 제한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슐린 신호전달체계는 진화적으로 비교적 잘 보존된 것이어서 그 기능 또한 보존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사람의 경우 훨씬 복잡한 시스템이므로 섣불리 적용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수명이 길어진 예쁜꼬마선충이 자연 상에서 저절로 자연 선택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볼 때, 수명 연장 효과는 어쩌면 이상적인 실험실 조건에서만 구현되는 것이고 삭막한 현실 세계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어 조심스럽다. 좀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으로 출생과 사망 시기가 입증된 최장수 기록 보유자, 프랑스 잔 칼망(1875~1997). [사진 위키피디아]

한편, 동물들의 최대 수명을 제한하는 요인은 또 따로 있다. 바로 텔로미어이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진핵세포 생물은 세균과는 달리 염색체가 선형으로 되어 있어 그 끝이 노출되어 있다는 근원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텔로미어라고 하는 염색체 말단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텔로미어는 특별한 염기서열의 반복된 구조에 특정한 단백질들이 결합하여 선형 염색체의 끝을 보호하는 구조체를 일컫는다. 사람을 포함한 많은 동물에서는 텔로미어의 길이가 텔로머레이즈라는 효소가 작용하여 유지되게 되는데, 이 효소가 작동하지 않으면 세포가 분열함에 따라 점점 염색체 말단이 닳아 없어지게 된다.

사람의 경우 텔로머레이즈 효소는 보통의 몸을 이루는 체세포에서는 더 이상 작용하고 있지 않아서 일정한 세포 분열을 하고 나면 염색체 끝이 닳아서 더 이상 짧아질 수 없는 길이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 상황이 바로 세포 수준에서의 노화이고, 노화가 지속이 되면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텔로미어는 노화와 수명의 타이머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 텔로미어를 길게 하면 수명이 길어질까. 필자의 연구실에서는 예쁜꼬마선충의 텔로미어를 길게 만들어 실제로 개체 수준에서 수명 연장이 가능함을 보였다. 하지만 이는 선충에서 이루어진 연구결과여서 사람에 직접 적용하기 곤란하다. 그리고 선충은 암이 없지만 사람에게서는 아마도 암이 생길 확률도 높아질 것을 우려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텔로미어는 너무 짧아지면 이른 노화를 촉발하고, 너무 길어지면 세포 노화를 지연시킬 수는 있으나 암을 유발할 가능성도 커진다. 텔로미어는 양날의 검이다.

이제 어떻게 하면 노화 방지와 수명 연장을 이룰 수 있을까. 죄송하게도 정답은 아직 없다. 다만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에 만족해야 하겠다.  먼저, 텔로머레이즈 발견의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블랙번 교수는 텔로미어 효과라는 책에서 장기적 스트레스가 텔로미어 길이를 짧게 만드는 적이며, 따라서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것이 텔로미어를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는 점을 다양한 논증을 통해 보여주었다.

결론적으로는, 독자들께서 믿지 않으실 수도 있겠지만, 명상을 하는 것이 적절한 텔로미어 유지의 절묘한 줄타기 비법이라고 주장하였다. 필자도, 명상을 시도한다고 해서 크게 손해 볼 일은 없을 거 같으니 독자 여러분께도 권할 만하겠다.

다음으로 현재까지 밝혀진, 진화적으로 가장 잘 보존된 수명 연장 방법 한 가지는 칼로리 제한, 즉 다이어트이다. 최근의 연구에서 마다가스카르의 여우원숭이의 경우 30% 정도의 식사 칼로리를 줄이니 50% 정도 오래 살았다는 경이로운 결과가 나왔다. 유인원에서의 연구결과이니 다른 동물들보다 인간에 더 가까운 결과라고 여길 수 있겠다. 문제는 아마도 항상 배고픔을 느끼는 상황일 것이고, 더 중요하게는 뇌의 회질 부분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여우원숭이에서는 특별한 행동 등의 신경적 문제는 보고되지 않았으나, 훨씬 복잡한 신경활동을 하는 인간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또 하나 확실한 것은 평소에 많이 먹는 개체는 다이어트를 통해 수명연장 효과가 크고, 원래 적게 먹는 개체는 다이어트를 한다고 특별히 더 좋아질 것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될지는 각자의 상황에 맞게 판단해 볼 일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 노화 지연과 수명연장의 꿈이 어느 정도는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늙고 죽어갈 것이다. 사람이 나이 들어가는 현상은 그래서 여전히 인간적이다. 시모어 벤저 교수는 86세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는데, 122세까지 산 잔 칼망에 비해 덜 행복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우아한 노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이준호 교수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서울대 자연대 학장 및 전국자연대학장협의회 회장. 연세대 생물학과 교수, 서울대 학생처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30여년 간 예쁜꼬마선충의 유전과 발생 연구를 수행했다.

이준호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출처 : 중앙일보

기사원문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016894#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