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승미
- 승인 2007.06.28 17:04
태권도로 전 세계 선교 비전 키우는 김 희 도 집사
2007년 태권도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대회에서 당당히 금상을 거머쥔 김희도 안수집사(세계태권도선교협회 사무총장, 순복음노원교회). 그의 뒤에는 태권도를 가르쳐 주고 선교 비전을 심어 준 형이 있었다.
“매일 저녁식사 후에 동생들을 집합 시키는 게 둘째인 제 임무였습니다. 형님에게 열외는 없었지요.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저부터 기저귀 찬 세 살 막내까지 모두 앞마당에 모여 태권도를 배워야 했습니다.”
어릴적 큰형에게 배운 태권도가 인연이 돼 전 세계를 향한 태권도 선교를 꿈꾸게 됐다는 김희도집사. 그저 형을 따라 태권도를 배우고, 노방전도를 다니던 그는 갑작스레 교통사고로 하나님 품에 안긴 형을 대신해서 본격적인 태권도 선교에 나서게 되는 계기가 됐다.
“원래는 형이 몸이 많이 약했어요. 우연치 않은 기회에 태권도를 배우게 됐는데, 가능성 있다는 사범님의 한마디에 본인은 물론 형제들에까지 태권도를 가르치셨죠. 물론 처음부터 태권도가 선교의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어요. 형이 군 제대 후 교회학교 부흥을 위해 자신이 가진 은사를 십분 활용한 것이지요.”
105명 교회학교 부흥의 역사
큰 형은 군 제대 후 모교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하며 교회에서는 중고등부 교사를 맡게 됐다. 당시 출석인원 5명뿐. 고민 끝에 형은 학교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전도하기 시작했다.
“주일날 오후 교회에 오면 격파시범 등 멋있고 특별한 기술을 알려주겠다는 것이 형님의 약속이었죠. 정말 아이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어요. 시골 마을에서 남들은 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특별한 기술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특별한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해진 시간에 예배를 드려야 했다. 태권도에서 사범의 위치는 특별한 것. 아이들이 한없이 우러러보고 존경하는 태권도 사범의 가르침은 태권도 시범에서 성경공부로 이어졌다. 그렇게 6개월 만에 105명으로 성장, 부흥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허락으로 주변 청소년들을 초청해 가진 학생회 부흥집회에서는 CCC사역 전도법으로 아이들을 교육, 설교해 나갔다.
“어느 날은 아이들이 중학교 교장실을 찾아간 적이 있어요. 교장선생님을 전도하겠다고 할 정도로 열정이 대단했지요. 그때 태권도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깨닫게 됐죠. 그때부터 태권도 선교라는 말을 사용하게 됐지요.”
태권도의 종주국, 한국. 한국 사람들을 전도해서 전 세계에 복음 전하는 하나님의 기쁜 도구로 써야겠다는 비전을 심게 된 큰 형은 순복음신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그런데 아버님의 반대가 심했어요. 사실 제가 어릴 땐 친할머니가 무당이셨거든요.
어느날 어머니에게 내림굿을 하려고 주변 동네의 무당들이 우리 집에 모두 모인 적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어머니가 갑자기 쓰려지셨지요. 그땐 너무 무서웠는데, 그래도 저희 가족을 하나님 곁으로 이끄시는 계기가 됐지요.”
무당에서 기독교 가정으로
31호밖에 안되는 작은 동네에서 교회에 다니는 가정은 단 2가정. 귀신 들린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가족들은 이들을 찾아가 붙잡고 매달렸다.
“교회 선생님을 모셔다가 기도해 달라고 했더니, 그쪽에서 조건을 내걸더라구요. 기도하고 찬송하면 분명 귀신은 떠나지만 예수를 믿지 않으면 귀신이 다시 올 것이라고 겁을 주더군요. 그래서 가족회의를 통해 예수를 믿기로 결정했지요.”
2시간여의 기도와 찬송 끝에 그의 어머니는 새 삶을 얻게 됐다. 할머니도 이방신을 믿는 각종 도구를 모두 교회에 가져와 불태워버리고 신앙을 가졌다. 그런데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교회 가는 어머니를 핍박했다. 아버지는 장차 한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 큰 형의 신학교 입학을 불허했다.
“가진 거라고는 태권도 기술밖에 없는 형이 뭘 할 수 있었겠습니까? 군포의 마을회관을 저렴하게 빌려서 태권도를 가르치기 시작했죠. 그 곳이 공단지역이라 청소년 선교도 함께 시작했어요.”
그렇게 공단 아가씨들, 청년들, 불량배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마을회관은 수십 명이 모이는 기도처로 변화해갔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의 반대로 학교 근처 야산에 천막을 치고 갈멜순복음교회를 개척했다. 김희도집사가 군 제대 후 형을 찾았을 당시에는 그나마 야산에 지었던 천막도 4차례 뜯긴 상태. 핍박이 심할수록 성령은 우리를 강하게 붙드신다고 했다. 밤마다 그 천막 안으로 40~50명의 젊은 청년들이 모여 기도했다. 큰 형과 생활하면서 그들과 함께 기도생활을 하는 김집사 역시 기도가 열리고 방언이 열리며 신앙이 성숙되는 계기가 됐다. 뿐만 아니라 기도로 무장된 청년들은 골목골목을 다니며 함께 북치고, 기타 치며 전도에 나섰다. 수업이 끝나면 무조건 기도하고, 전도했다.
태권도 선교비전 실현
그 뒤로 김희도집사의 바로 아래 동생이 선교체육관을 세웠고, 막내 동생은 상계동에 할렐루야체육관을 세웠다. 그야말로 태권도 선교를 향한 비전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금요일, 토요일에는 신학생을 모아놓고 태권도를 훈련시켰다. 복음성가에 맞춘 태권 율동을 만들고 복음의 메시지가 담긴 십자가 드라마 시범도 준비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고난을 받는 장면을 태권도에 접목시켜 시범만으로도 전도할 수 있는 태권도 선교가 시작된 것이다.
그 후 할렐루야 선교교회 태권도 시범단의 모집 공문을 보고, 2박3일간의 세미나에 형제들이 합류했다. 88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45일동안 미국 8개주 순회 시범공연단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올림픽 이후 선교회의 활동이 흐지부지됐고, 형제들이 뭉쳐 세계태권도 선교회를 조직했다.
‘뉴라이프 2000’으로 진행된 CCC대학생 선교팀에서 특수팀으로 합류해 태권도 선교를 했고, 마닐라, 일본의 오사카, 도쿄 등에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말이 통하지 않았고, 태권 율동과 십자가 드라마 시범으로 그들과 소통하고 복음을 전했다.
이제는 세계태권도선교연맹, 세계태권도선교협회, 세계태권도선교회 등 큰 형의 뜻을 이어받아 세 형제가 목사 혹은 집사의 직분으로 각각의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같이 시작했지만, 형제들끼리 하다보니 침체되기도 하고, 남들의 시선도 좋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각각의 단체를 운영하면서 태권도 선교를 향한 열정으로 함께하고 있지요. 덕분에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하게 됐고, 오히려 더 크게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게 됐어요.”
태권도 신학교 설립 목표
교통사고로 하나님 곁으로 간 형을 대신해 태권도 선교 비전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김희도집사는 현재 태권도신학교 설립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
“모슬람이나 이슬람 등 공산권 국가에서 목사라는 이름으로 들어가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태권도 사범은 얼마든지 환영이지요. 오히려 그쪽에서 요청을 하는데 마땅한 인물이 없어 파송을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말씀도 전하고, 태권도도 가르칠 수 있는 인재를 키우는게 시급하지요.”
국기원에서 공인된 토요심사를 만든 것도 김희도집사. 주일 성수를 지켜야하는 크리스천에게도 토요심사는 중요하지만, 5일근무제로 인해 이제는 비크리스천까지 토요심사를 요청하고 있다. 이로 인한 태권도인구확대에 국기원도 환영하고 있는 상황. 뿐만 아니라 형제들의 태권도와 선교를 향한 비전을 이어 김집사의 아이들 역시 한국체육대와 경희대 태권도 외교과를 다니며 시범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대손손 그 가족들을 통해 전 세계로 뻗어 나갈 태권도 선교의 밝은 미래를 확인했다.
출처 : 아이굿뉴스(http://www.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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