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자급률은 ‘세계 최하위’…농약 사용량은 ‘선진국의 10배’
통계로 본 세계 속 한국 농업의 현주소는 암울하다. 곡물자급률은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식량안보에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지만, 농약과 비료 사용량은 주요 선진국보다 월등히 많다. 또 우리나라는 만성적인 농축산물 무역적자국으로 집계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2004년 칠레와 처음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나서 15년간 57개국과 FTA를 체결하며 농축산물시장의 빗장을 열어젖힌 한국 농업의 우울한 성적표다.
◆곡물자급률=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산하 농산물시장정보시스템(AMIS)의 데이터베이스 자료를 토대로 산출한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최근 3개년(2015~2017년) 평균 23%에 그쳤다. 세계 꼴찌 수준이다. 가축이 먹는 사료용 곡물을 포함해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곡물의 77%가 외국산이라는 뜻이다.
반면 대부분의 국가들은 자국에서 소비되는 곡물을 자국에서 생산하며 식량안보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전세계 평균 곡물자급률은 101.5%에 이르렀다. 특히 호주의 곡물자급률이 289.6%로 가장 높았다. 캐나다는 177.8%, 미국은 125.2%로 북미지역에서도 높은 수준의 곡물자급률을 기록했다.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의 곡물자급률은 27.2%로 세계 평균에 훨씬 미치지 못했지만 우리나라보다는 높았다.
◆농약·비료 사용량=농경연이 FAO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우리나라의 1㏊당 농약 사용량은 2016년 기준 11.8㎏에 달했다. 호주(1.1㎏)·캐나다(1.6㎏)와 비교하면 농약을 10배 가까이 더 쓰는 것이다. 세계 최대의 농업생산국으로 꼽히는 미국은 2.6㎏에 그쳤다. 영국(3.2㎏)·프랑스(3.7kg) 등도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중시하는 나라답게 우리보다 농약을 훨씬 덜 쓰고 있다.
비료 사용량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1㏊당 비료 사용량은 268㎏으로 나타났다. 캐나다(79.2㎏)의 3.4배, 미국(136.3㎏)의 2배에 달하는 수치다. 자연경관 보전이나 생태계 보전 등 농업이 창출하는 공익적 가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한국 농업의 실상은 국민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농축산물 무역수지=우리나라는 농축산물 무역적자가 세계에서 여섯번째 로 컸다. 농경연이 유엔(UN·국제연합)의 세관통계 자료인 유엔 컴트레이드(UN Comtrade)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농축산물 무역수지 적자규모는 181억300만달러로 집계됐다. 동시다발적인 FTA 체결에 따라 농축산물 수입액이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만성적인 농축산물 무역적자국이 된 것이다.
세계적인 무역적자국으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중국 등 동아시아 3개국이 모두 이름을 올렸다. 일본의 농축산물 무역적자는 532억6900만달러, 중국은 468억9200만달러로 각각 1·2위를 차지했다. 이어 3위는 오랜 내전과 전쟁에 시달려온 레바논(417억5200만달러), 4위는 영국(332억5500만달러), 5위는 사막지대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191억5000만달러)였다.
반면 농축산물 무역으로 가장 많은 흑자를 본 나라는 브라질(691억4100만달러)이었다. 다음으로 네덜란드(314억7100만달러)·아르헨티나(301억5700만달러)·태국(182억6800만달러)·뉴질랜드(176억8000만달러)가 뒤를 이었다.
◆농업보조금=농업총생산액 대비 농업보조금 비율도 선진국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농업보조금은 2017년 기준 28억9800만달러로 농업총생산액 429억8800만달러 대비 6.7%에 불과했다.
농업보조금을 산정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농경연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데이터베이스 자료를 바탕으로 산출한 통계에 따르면 대다수 선진국은 우리보다 정부가 지출하는 농업보조금 비중이 컸다. OECD 평균은 10.6%였고, 유럽연합(EU)은 이보다 더 높은 17.1%에 달했다. EU에 속하지는 않지만 그보다 더 강화된 농업 지원정책을 펼치는 스위스는 41.3%로 우리보다 6배 이상 높았다.
임정빈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선진국에선 농업보조금을 단순히 농가소득 보전이라는 측면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공익형 직불제로의 개편이 한창 진행 중인만큼 농업보조금을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확산해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 수단’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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