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연구실
올해 글로벌 금융시장은 금융위기의 공포에서 벗어나 비교적 빠르게 안정세를 되찾아가고 있다. 이제 리만 사태와 같은 충격이 단기간 내 재발할 가능성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 11월말 발생했던 두바이 사태에서 보듯이 금융위기의 여진은 아직도 간간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외 경제상황을 보면 2010년에도 금융 불안을 야기할 요인이 적지 않다.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부실 문제가 미해결로 남아 있고, 과도한 재정적자와 외채 부담으로 인해 ‘제2의 두바이’로 거론되는 나라가 상당수이며, 주요 선진국 가운데 일부도 막대한 재정적자로 인해 신용등급 하락과 국채시장 불안이 우려되고 있다. 현재의 저금리와 양적완화정책이 야기할 원자재 가격의 버블 형성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달러화를 비롯한 주요국 통화가치의 급변 가능성도 관심사다.
우리나라 역시 주요 선진국의 금리정책이나 미 달러화 가치의 변화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금의 흐름이 바뀌면서 주식, 채권, 외환 등 금융시장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밖에 기업구조조정 지연과 정책지원으로 생존하고 있는 부실기업, 위기의 와중에서도 부채 규모를 늘린 가계 등이 내년 금리인상의 여파나 경기 및 고용부진으로 야기될 부담을 견뎌낼지 걱정되기도 한다.
이상과 같이 국내외 금융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8가지 요인들의 현실화 가능성과 위험성을 점검하고 그 파급효과를 살펴본다.
< 목 차 >
1. 주요 통화가치의 급변 가능성
2. 선진국 출구전략 시동과 파급효과
3. 두바이 다음 취약 국가는 어디인가
4. 선진국 국채시장의 불안정성
5. 미국 상업용 부동산 부실 여파의 확대 여부
6. 외국인 포트폴리오 투자의 향방
7. 국내기업 부실 현실화 가능성
8. 가계부채 부담 문제되나
1. 주요 통화가치의 급변 가능성
2010년 국제환율은 달러화의 완만한 약세와 유로화 및 위안화의 소폭 강세가 이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전망이다. 그렇지만 골 깊은 경제위기를 거쳐 회복 단계에 들어서는 불안정한 시기라는 점에서 국제환율이 급변하고 이에 따라 원화환율이 요동칠 가능성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현재 국제환율 아슬아슬한 균형
먼저 지적할 것은 달러화 가치의 급락 가능성이다. 현재의 달러화 가치가 매우 아슬아슬한 균형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큰 폭의 경상수지 적자를 지속하는 가운데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과 중동의 산유국들이 미 국채 등 달러표시 자산을 매입해 달러화의 가치가 그런대로 유지되는 것이 현재의 형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이나 중동 산유국들이 달러표시 자산의 보유비중을 크게 줄이고 대신에 유로 등 다른 통화표시 자산을 늘린다면 달러화 가치는 급락하게 될 것이다. 2000년대 들어 금융위기 이전까지도 달러화의 지위는 줄곧 하락해 왔지만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경제의 체면이 크게 구겨진데다 위기 극복을 위한 재정적자 증가세까지 감안하면 이러한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과거에 비해 높아진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중국이나 중동 산유국 정부 입장에서는 달러화 자산을 내다 팔 경우 자국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의 실질 가치가 줄어든다는 점도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
국제금융시장이 더욱 안정을 찾아나가는 가운데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약화되는 것도 달러화의 가파른 약세를 부추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달러화 가치는 금융위기를 계기로 2008년 하반기와 올 1분기에 걸쳐 오름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올해 2분기부터 약세를 나타내고 있다. 지속가능한 경기회복을 바탕으로 미국의 금리인상이 이루어질 경우 달러 약세가 완화되거나 일시적인 강세전환도 가능하겠지만, 경기회복세가 느려 금리 인상이 지연된다면 달러 약세는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기의 여진 가능성이 거의 없어졌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그간 달러와 더불어 안전자산 역할을 하며 강세를 보여 온 엔화의 약세 전환도 예상된다.
향후 국제환율은 중국 요인에 크게 좌우
2008년 하반기부터 달러에 거의 고정되어 온 위안화 환율의 급변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유럽이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고 있는 데다 중국 입장에서도 현재와 같은 사실상의 달러화 페그를 지속하기는 어려운 입장이다. 환율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은 고속성장을 하고 있는 중국이 미국과 같이 매우 완화적인 금융정책을 지속시키는 효과를 낳게 되기 때문이다. 안팎으로 절상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지만 글로벌 경제위기로 수출이 감소하는 데다 물가하락을 경험해 온 중국 정부는 절상 시기 선택에 있어 신중을 기할 것으로 보인다. 수출이 안정적인 증가세로 돌아서고 물가상승이 점차 부담요인이 되면서 2010년 상반기, 빠르면 1분기에 위안화 절상이 단행될 가능성이 있다. 점진적인 절상이 추가적인 절상기대를 낳아 핫머니가 유입되는 등의 부정적인 효과를 경험한 중국 정부는 단기간에 빠른 속도로 일정 정도의 절상을 용인한 후 추가적으로 상당히 완만한 절상을 유도하는 모양을 띨 가능성이 높다.
앞서 본 요인들이 금융시장 흐름상의 변화와 관련 깊었다면 실물경제 차원의 변화가 당사국의 국제수지를 변화시켜 환율의 급변동을 불러올 우려도 있다. 주요국이 출구전략을 실기해 인플레이션이 심화될 경우 이미 마이너스 수준인 실질금리가 더욱 떨어지면서 저축률이 하락할 가능성이 한 예이다. 특히 미국 국채의 50% 이상을 흡수하고 있는 중국과 동남아 화교권의 저축률이 낮아질 경우 달러 표시 채권 수요가 줄면서 달러화 가치 하락폭을 크게 할 수 있다. 글로벌 불균형을 줄이기 위한 미국 측 요구를 받아들여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내수를 진작한다 해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크게 줄어들지 않을 가능성이 커 이 역시 달러화 가치 하락 압력이 될 수 있다.
2010년 원/달러 환율은 완만히 낮아지리라는 것이 기본적인 전망이나, 위에서 언급한 사태가 현실화되어 달러화가 큰 폭 약세를 보일 경우 급격히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2000년대 원/달러 환율의 변화요인을 보면 2007~2008년과 같이 원화 가치 자체의 변동 요인과 달러쪽 요인이 반대 방향으로 작용한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올해의 경우에는 달러 강세에 외화유동성 위기와 같은 원화 자체의 약세요인이 맞물리면서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에 비해 16%나 올랐다(<그림 3> 참조). 2010년의 경우 큰 폭의 달러화 약세와 함께 경상수지 흑자 등에 따른 원화 자체의 요인이 모두 원화 강세 방향으로 작용하면서 상당 폭의 원/달러 환율 하락이 나타날 수도 있다. 아울러 주목해야 할 부분은 원/엔 환율의 움직임이다.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소멸되면서 엔화가 달러화에 대해 약세를 보인다면 원/엔 환율은 원/달러 환율의 하락폭 이상으로 크게 낮아지면서 세계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억누르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2. 선진국 출구전략 시동과 파급효과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주요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금리를 크게 낮추고 금융기관과 신용시장에 대해 통상적인 경우보다 훨씬 강도 높은 지원책들을 동원해 왔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이러한 ‘비전통적인 신용 또는 양적 완화(Unconventional Credit or Quantitative Easing)’ 정책은 금융기관에 대한 유동성 지원의 강화, 신용시장에 대한 유동성 공급, 장기채권 매입 등 세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된다.
2010년에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2008년 하반기와 같은 극심한 불안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고 경제가 완만한 회복세를 지속한다면, 제로 수준에 가까운 정책금리와 비전통적인 통화정책 수단들 또한 정상화될 필요가 있다. 특히 자산가격이 적정 수준 이상으로 급등하고 물가상승압력이 높아지는 등 유동성 증가의 부작용이 커질 경우 경제가 다시 큰 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2010년에는 출구전략 도입의 필요성 자체보다는 이행 시기와 강도, 순서 등에 관한 논의가 더욱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금리 인상은 2010년 하반기 이후로 예상
출구전략의 향방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미국 등 주요국의 정책금리 인상의 시기와 폭이다. 다른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단들은 상당수가 경제에 큰 충격이 발생하지 않는 한 2010년 상반기 중에 시행기간 만료를 앞두고 있으며, 일부는 이미 그 규모가 크게 축소된 것도 있다. 출구전략의 핵심이랄 수 있는 정책금리의 인상은 경제상황에 대한 판단과 정부 및 중앙은행의 결단에 맡겨져 있다.
금리인상이 조기에, 큰 폭으로 이루어질 경우 경제가 다시 침체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는 반면, 금리 인상이 너무 늦거나 그 강도가 미약하게 되면 강한 인플레이션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먼저 금리 인상에 나선 이스라엘, 호주, 노르웨이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현재 미국, EU 등 주요 선진국들은 당분간 인플레이션 우려보다는 경제가 다시 디플레이션 상태에 빠질 위험을 방지하는 쪽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과 1990년대 일본 장기불황 시기에 너무 이른 금리인상 및 재정긴축 때문에 경제가 다시 침체에 빠졌던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다. 또 선진국들은 국가별로 출구전략의 이행 시기와 강도가 상이한 데서 비롯되는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IMF 또는 G-20 회의 등을 매개로 잘 통제된 상태에서의 집단적 출구전략 이행을 추구하고 있다.
주요 선진국에서 이루어져 온 유동성 지원책들이 예정대로 2010년 상반기 중에 만료되면, 미국과 EU의 정책금리 인상은 2010년 중반 또는 하반기에, 그리고 일본은 이보다 늦게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경기회복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른 우리나라의 경우 그보다 약간 이른 시기에 금리인상이 단행될 수 있으며, 세계경제가 다시 침체 국면으로 빠져드는 경우에는 이러한 인상 움직임들이 2011년으로 미루어질 수도 있다.
유동성 확대정책의 효과 줄어들겠지만, 급격한 위축 가능성은 낮아
주요 선진국의 금리인상이 가시화되면, 그동안 저금리 및 유동성 증가로 인해 나타났던 많은 현상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갈 것으로 보인다. 우선 2009년 내내 유지되어 온 주식, 원자재 등 자산가격의 상승 추세를 둔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출구전략 이행이 경제의 개선 추세를 전제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자산가격은 큰 폭의 하락보다는 상승세 둔화 또는 현 수준을 유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국가간 금리 인상 시기의 차이는 국제환율 및 국가간 자본이동에도 큰 변화를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이 미국보다 상당 기간 늦게 금리를 인상하게 될 경우 현재 나타나고 있는 달러 캐리 트레이드의 상당 부분이 엔화 조달로 대체되면서 엔화의 약세 전환이 예상된다.
자칫 금리인상의 시점 선택에 있어 적절한 시기를 놓치고 너무 늦게 금리인상이 단행될 때 나타날 위험성도 있다. 세계적인 저금리에 기반한 투자자금의 유입으로 신흥시장의 자산 및 원자재 가격이 버블로 이어질 우려가 바로 그것이다. 버블 형성 후 선진국의 금리인상이나 국제환율의 급변을 계기로 신흥경제권과 원자재 시장에 유입된 국제투자자금의 흐름이 바뀌면서 이들 시장이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3. 두바이 다음 취약 국가는 어디인가
2009년 11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두바이 정부 산하 대표적인 국영기업인 두바이월드가 채무상환 동결을 선언하면서 신흥경제권 국가들의 경제불안에 대한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다. ‘사막의 기적’으로 불리며 전세계로부터 인력과 자본, 설비 등이 몰려들었던 두바이 경제가 어려움에 처하자, 다른 신흥시장국가들의 정부채무와 대외채무의 상환능력에 대해서도 불안감이 확산되는 것이다.
동유럽 및 중앙아시아 국가, 여전히 대외채무에 취약
신흥경제권의 국가 리스크는 그동안 금융위기의 극복하기 위해 노력에 온 과정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즉 이번 위기는 극복의 핵심이 민간부문의 신용위험을 정부 또는 중앙은행이 떠안으면서 정부신용과 국제공조가 민간 금융시장의 부족한 신뢰를 보강하는 방식을 통해 극복되어 왔는데, 이제 앞으로는 정부부문이 이러한 과정을 끝까지 감내할만한 충분한 여력을 지니고 있는가가 중요한 변수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국채발행 규모의 증가와 이로 인한 재정건전성 악화는 2010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주요 신흥시장 국가들의 정부부채와 대외부채 수준을 살펴보면, 정부 및 공공부문의 부채 문제에 있어서는 경제성장에 대한 내수의 기여도가 높은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우루과이, 에쿠아도르 등 중남미 국가들이 취약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반면 대외부채 문제에 있어서는 우크라이나, 헝가리, 라트비아 등 2009년 초 어려움을 겪은 바 있는 동유럽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여전히 취약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최근 들어 자원가격이 다시 상승하면서 일부 국가의 외화획득능력이 높아졌고, 달러화 약세 및 캐리 트레이드의 재개와 함께 외화자금시장의 사정이 전반적으로 개선되고는 있다. 하지만 동유럽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외국자본에 대한 높은 의존구조와 경상수지 적자 추세의 빠른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들에게 자금공급원 역할을 해 온 유럽 금융시장의 불안 또한 단기간 내에 말끔히 해소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반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 제조업과 수출에 특화된 동아시아 국가들은 이러한 부채 문제에 있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빠른 외채증가와 외환보유액 감소로 외환시장의 심각한 불안양상을 겪었던 우리나라도 재정 상황이 OECD 국가들 가운데서는 가장 건전한 편이고, 또 한미통화스왑(2010년 2월 만기)과 외환보유액 확충(2009년 11월 기준 2,708.9억 달러로 사상 최고 수준)을 통해 대외지급능력을 크게 개선시켰기 때문에 이번 위기설의 대상국가에서는 사실상 제외된 상태이다.
개별국가 위기의 파급력은 제한적
두바이 사태가 채무협상이나 UAE 및 아부다비로부터의 지원 등을 통해 서서히 해결 기미를 나타내고 있듯이, 향후에도 규모가 크지 않은 나라의 국가부채 위기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까지는 인근 국가나 EU 같은 국가연합체, IMF 같은 국제기구의 지원도 상당히 적극적인 편이었다.
하지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누적되고 있는 국가부채 문제는 특정한 몇몇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대다수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부각될 수 있는 불안 요인이다. 게다가 정부발행 채권에 대한 수요의 상당 부분을 외국인 투자자가 차지하는 경우에는 자국 경제사정 뿐만 아니라 대외 환경변화의 영향에도 노출된다. 이러한 나라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경기회복이 지연되고 국채 및 국영기업에 대한 대출이나 증권 시장이 불안정해지면, 글로벌 자금시장은 다시 한 번 혼란을 맞을 수도 있다.
현재 세계경제는 최악의 위기 상황으로부터는 상당 부분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위기극복은 정부부채 문제까지 성공적으로 해결될 수 있어야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2009년 초 외화유동성의 부족으로 한 차례 위기상황을 넘긴 동유럽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여전히 안정을 낙관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4. 선진국 국채시장의 불안정성
안전자산으로 여겨졌던 선진국의 국채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로 국채발행물량과 정부부채 규모가 크게 늘어나면서 선진국 정부의 부채상환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 이후 선진국의 정부부채 급증세
위기 이후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수요가 급증하면서 선진국들은 막대한 재정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OECD 국가들의 경우 지난 2007년 중 재정적자 규모가 GDP 대비 1.3%에 불과했으나 2008년에는 3.5%, 2009년에는 8.2%로 늘어난 데 이어 2010년에도 8.3%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재정적자 보전을 위한 선진국들의 국채발행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08년 1~9월 중 1조 4,000억 달러였던 선진국의 국채 순증 물량이 2008년 9월~2009년 6월 중에는 3조 6,000억 달러 수준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난다. 국채발행이 늘어나면서 선진국들의 정부부채 규모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OECD 국가들의 GDP 대비 정부부채 규모가 2007년말 71%에서 올해 90%를 넘어선 데 이어 내년말까지 100% 수준에 도달할 전망이다. 일본이 200%로 예상되고, 그 뒤를 이탈리아(127%), 그리스(112%), 벨기에(106%), 미국(98%) 등이 이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선진국의 공공부채에 대한 우려는 국채 신용부도스왑(CDS)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부도위험에 대한 보험이라 할 수 있는 CDS의 거래 잔액이 개도국들의 국채에 대해서는 최근 들어 지난해에 비해 줄어들거나 큰 변화가 없는 반면, 영국을 비롯하여 미국, 일본 등 선진국 국채에 대해서는 100% 이상 늘어난 경우가 많다. CDS를 매입하여 국채부도위험에 대비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프리미엄의 경우 개도국들이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높지만, 위기 직전에 비해서는 최근 하락한 상태이다. 그러나 선진국들에 대한 CDS 프리미엄은 2008년 8월에 비해 모두 상승한 것으로 나타난다.
선진국의 신용등급 하락이 국채시장 불안 요인
투자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지만, 외화부채에 대한 부담이 덜한 선진국들의 경우 자국 통화로 발행된 국채에 대한 부도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사실상 국채의 부도 여부는 정부의 결정이라기보다는 투자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선진국들의 국채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저하될 경우 신규 발행이나 기존 만기물량의 연장 발행이 어려워지면서 부도 사태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최악의 상황은 피하더라도 투자자들의 대규모 국채 매도로 국채금리가 급등하거나, 또는 신규 발행을 성사시키기 위해 금리상승이 불가피해질 개연성은 충분해 보인다. 정부 발행 국채의 대부분이 국내투자자에 의해 보유되고 해외투자자들의 보유물량은 10% 미만인 일본의 경우 이러한 충격이 상대적으로 덜할 수 있다. 반면 영국과 미국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채보유물량이 각각 35%와 50%(중앙은행을 제외한 순수 민간 보유물량은 15%)에 달해 국채 투매의 위험에 더 노출되어 있다.
2010년에는 위기 이후 정부의 채권을 직접 매입해 왔던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이를 점진적으로 중단할 경우 국채발행 물량을 시장에서 소화해야 하는 부담이 커진다. 또한 선진국의 정책금리 인상이 단행될 경우 나타날 금리상승세도 국채에 대한 이자상환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경기회복세가 더딘 데다, 정부가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한 중장기적인 복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정치불안까지 가세할 경우 정부의 부채 문제 해결의지와 능력에 대한 의심이 확산될 수 있다. 특히 신용평가회사들의 신용등급이나 등급전망의 변경은 국채시장에서 투자자들의 국채매도를 유발하는 촉매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국제신용평가회사인 S&P사가 부여하는 국가신용등급을 기준으로 하면, 이번 위기의 와중에서 스페인과 아일랜드가 AAA 등급을 상실했고, 그리스는 BBB+로 하락했다. 또한 스페인과 그리스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신용등급 하락이 경고되고 있다. 영국은 2009년 5월에 등급 전망이 부정적(negative)으로 떨어져 AAA 등급을 상실할 위험에 처해 있고 미국도 AAA 등급의 지위가 불변은 아니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현재 AA의 신용등급인 일본에 대해서도 재정상황 악화와 디플레이션 등으로 추가 등급 하락 가능성이 제기된다.
신용평가회사들의 경고가 잇따르고 있는 것을 볼 때 내년 중 몇몇 선진국들의 경우 신용등급 변화를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전후하여 CDS 프리미엄과 국채금리가 급등하는 등 해당 선진국의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는 상황이 예상된다. 일부 선진국 국채시장에서 야기된 금융불안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위험기피현상의 재연으로 이어지면서 한동안 회사채 등 신용위험을 지닌 자산과 신흥시장 자산 등에 대한 수요를 약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5. 미국 상업용 부동산 부실 여파의 확대 여부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주택대출의 연체와 그에 따른 대규모 자본손실로 이미 큰 타격을 받은 미국의 금융시스템이 다시 한 번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대출규모가 3.4조 달러에 이르러 서브프라임의 1.8조 달러보다 훨씬 크고 가격 하락폭도 주택가격 하락에 버금갈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경기회복 되어야 상업용 부동산 회복 가능
<그림 10>에서 보듯이 주택용과 상업용 부동산 가격 지수는 모두 2002년 이후 급격하게 상승한 뒤 각각 2006년과 2008년을 고점으로 40% 이상 하락하여 2002년 수준으로 회귀하였다. 두 지수의 하락시점이 다른 이유는 주택가격의 경우 서브프라임, 증권화 등 금융부문의 변화, 자가주택 보유율 등과 큰 관련이 있으나, 상업용의 경우 실물부문에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그림 11>은 미국의 명목GDP 증가율과 상업용 부동산의 총수익률(자산가격 상승+임대료)을 나타낸 것이다. 전 기간에 걸쳐 상업용 부동산 수익률은 명목 GDP 상승률과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은 큰 틀에서는 미국경기 회복에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2002년 이후 부동산 가격이 상대적으로 크게 올랐다는 점과 높은 공실률 등을 감안할 때 향후의 상업용 부동산 가격 회복은 거시경제의 흐름보다 상당기간 늦춰질 수도 있다.
대형금융기관의 보유비중 낮고, 증권화도 덜 된 편
그렇다면 상업용 부동산의 부실이 미국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2007년 하반기부터 발생한 서브프라임 부실이 2008년 9월 자산규모가 크고 금융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금융기관이었던 리만브라더스의 파산 이후 급격히 금융위기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모기지 대출이 복잡한 파생금융상품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광범위하게 유통되면서 손실과 불확실성을 확대시켰던 점도 고려요인이다.
우선 상업용 모기지 보유현황을 보면 은행부문이 45%, ABS 발행기관이 21%, 생명보험사 6% 등으로 분산되어 있다. 이 가운데 은행권 보유 상업용 모기지의 78%를 자산규모 10억 달러 미만인 중소형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고, 주요 대형은행의 경우 상업용 부동산 관련 자산이 전체자산의 1% 내외에 그쳐 손실흡수 능력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상업용 모기지의 손실은 중소형 지역은행에 큰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이고, 현재 기금 고갈 상태에 처해있는 연방예금보험공사에 재정적으로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지만 전반적인 금융시스템을 훼손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리고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80%가 증권화를 통해 다양한 파생금융상품의 형태로 금융시스템 전체로 퍼져나간데 비해, 상업용 모지기의 경우 약 27% 정도만이 이러한 과정을 거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반적인 손실 규모와 부담주체가 상대적으로 명확하여 정책대응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금융시장 내 심리적인 잠재 불안요인이 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다만 모기지 자산 등에 대한 시가평가를 유예함으로써 가격하락 부분이 금융회사의 장부에 손실로 기록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추후의 손실인식에 따라 금융부문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여지를 남기고 있다.
금융시스템을 위협할 정도는 아닐 듯
전반적으로 볼 때 금융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형은행들의 상업용 부동산 관련자산의 비중이 낮고, 모기지의 증권화 정도도 낮은 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업용 부동산이 금융시장의 주요한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실물부문의 회복이 예상보다 지연되고, 1990년대 초반처럼 가격약세가 지속되는 경우에는 금융부문의 건전성에 타격이 예상된다. 아울러 중소형 은행의 재무건전성 악화는 이들의 주요대출 고객인 중소기업의 자금애로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6. 외국인 포트폴리오 투자의 향방
2009년 국내 금융시장의 회복에는 외국인 투자의 귀환이 크게 기여했다. 지난해 주식시장을 통해 412억 달러 규모가 빠져나갔던 외국인 투자 자금은 작년 말 이후 순유입으로 전환되어 올해 들어 10월까지 225억 달러가 순유입되었다. 채권시장을 통한 외국인 투자도 증가하여, 2008년 28억 달러 수준이었던 순유입 규모가 2009년 들어서는 10월까지 247억 달러로 증가하였다. 11월말 현재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은 전체 시가총액 대비 32.7%(거래소 기준)의 상장 주식을 보유하여 2008년 초 수준을 회복하였고, 채권 역시 전체 상장채권 발행잔액의 5.6%를 보유하여 2008년 말 4.3%보다 높아졌다.
선진국 저금리와 위험기피 경향 완화로 외국인 투자 증가
외국인 투자자금의 대규모 유입은 금융위기가 진정되면서 투자자들의 위험기피 경향이 완화되고 금리인하 등의 확장정책으로 글로벌 유동성이 증가한 데 기인한 바가 크다. 선진국의 저금리 기조는 선진국 시장에서 자금 조달비용과 투자 수익을 동시에 감소시켜 상대적으로 고수익 투자처인 신흥시장국에 대한 투자를 증가시키는 요인이 되었다(<그림 13> 참조).
특히 국내 금융시장은 여타 신흥시장과 비교해서도 매력적인 투자처였다. 위기 당시 원화 가치의 하락 폭은 다른 통화에 비해 컸다. 하지만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큰 폭으로 절하된 원화가치가 오히려 투자 자금의 유입을 증가시키는 유인으로 작용했다. 환차익에 대한 기대가 다른 나라에 비해 컸던 데다, 상대적으로 빠른 경기회복과 수출기업의 선전으로 기업들의 실적 개선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내 경제의 회복으로 위험 프리미엄이 감소하고 외국인 채권 투자에 대한 세금 혜택 정책 등도 시행되어 국내 투자에 따르는 비용 부담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채권시장의 경우 무위험 차익거래의 유인이 지속된 것이 외국인 투자 유입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해외 조달금리가 하락하고 국내 시중금리는 상승하여 위험 부담 없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CDS 프리미엄의 하락으로 신용위험이 감소하면서 외국인들의 채권투자가 활발해진 것이다(<그림 14> 참조). 이 밖에도 국내 증시의 FTSE 선진국 지수 편입(9월 21일), 국내 국채 시장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기대 역시 자금 유입을 확대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2010년 외국인 투자 내년에도 지속, 규모는 줄어들 가능성
2010년에도 국내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의 유인은 당분간 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 회복 및 금리 인상 기대로 시중금리는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차익거래의 유인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내년 중 세계국채지수(WGBI)에 편입될 경우 동 지수를 추종하는 글로벌 채권펀드 내에서의 투자 비중 확대 등으로 유입 규모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정부에 따르면 지수 편입의 효과로 외국인 국채 투자가 10~15조원 가량 증가할 전망이다.
국내 주식에 대한 외국인 투자 여건은 여러 상반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원달러 환율은 현재 1,100원대 중반으로 하락하여, 환율 효과에 따른 기업 실적 개선과 원화의 추가 강세에 따른 환차익 기대는 줄어든 상황이다. 게다가 FTSE 지수 편입 효과도 상당 부분이 이미 반영되어 추가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국내 경제의 회복이 세계경제에 비해 여전히 빠를 것이라는 전망과 내년 중 국내 증시가 MSCI 지수에 추가로 편입될 가능성 등은 외국인 투자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2010년 외국인 투자는 2009년보다 규모는 줄어들더라도 유입 기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외국인 투자는 국제 금융시장의 상황 및 투자자의 투자 여력 등 국내경제 여건 이외의 요인에 따라 크게 변동할 가능성이 있다. 먼저 선진국 금리가 크게 상승할 경우 자금유입이 크게 둔화될 수 있다. 외화자금 조달금리가 높아지는 한편 국내 투자의 상대적 수익은 낮아져 국내 투자의 유인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외부 충격의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최근 두바이 사태와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할 수 있고, 또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상존해 있다. 국내 부실 기업의 존재도 불안요인이다. 재무 건전성이 좋지 않은 일부 대기업이나 혹은 한계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정책 등으로 버티던 중소기업의 구조조정 문제가 불거질 경우 채권단인 금융기관을 비롯한 금융시장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국내 투자에 대한 위험 프리미엄이 상승하여 외국인 자금 유입이 급감하거나 혹은 빠르게 유출될 위험도 있다.
7. 국내기업 부실 현실화 가능성
글로벌 경제위기가 고비를 넘기면서 실적이 호전됨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재무건전성이 개선되고 있다. 금융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2008년 4분기 1.1까지 하락했던 국내 상장기업(1,341개 12월 결산 비금융회사 합산 실적 기준)들의 이자보상배율은 2009년 3분기 5.3으로 상승했다. 현금흐름이 개선되고 차입금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면서 2009년 1분기 100%를 넘어섰던 부채비율도 3분기에는 95.2%로 하락했다.
2010년에도 국내기업들의 전반적인 부채상환능력은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경기회복이 완만하게 진행되면서 실적 개선이 전체 기업으로 파급되지 못할 가능성이 커서 부채상환능력이 취약한 기업들은 여전히 상당수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한계상황에 있는 일부 기업의 부실이 현실화될 경우 일시적으로 급격한 금융시장 불안이 초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부실화 가능성 높은 기업 상당수
국내 기업의 신용위험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주된 이유는 전반적인 부채상환능력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부채상환능력이 취약한 기업이 여전히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분기별 실적 기준으로 이자보상배율 1 이하인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낮아졌다(기업 수 비중: 2008년 4분기 43.0% → 2009년 3분기 34.5%, 차입금 규모 기준: 53.6% → 28.5%). 하지만 여전히 3개 기업 중에서 1개 기업이 영업활동에서 벌어들인 이익으로 금융비용도 감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자보상배율 1 이하 기업들은 2008년 3분기에도 영업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현금흐름이 악화되면서 부채비율(191.7%)도 크게 상승했다.
부채상환능력이 낮은 기업들은 대부분 수익창출능력이 낮고 차입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서 금융비용 부담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실적이 악화된다면 부실화가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이 경영환경이 악화될 경우 부실화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어 경기 회복이 가시화되기 이전까지는 이들 기업이 지닌 신용위험에 대한 우려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부채상환능력 취약한 대기업 증가
중소기업 부실화에 대한 우려도 가시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의 이자보상배율은 2008년 4분기 -0.2로 급격하게 악화되면서 부실화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었다. 중소기업 부실화에 대한 우려는 2010년에도 금융시장의 지속적인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연쇄적인 도산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중소기업 부실이 금융시장 불안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은 개별 기업 단위의 차입금 규모가 크지 않아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조사 대상 1,341개 상장기업 가운데 중소기업의 수(869개)는 64.8%를 차지하고 있지만 전체 차입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2%에 불과하다.
경기회복에 따라 실현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부채상환능력이 낮은 대기업의 부실화가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여전히 잠복해 있다. 41개 주채무계열 대기업집단 중에서 1~3분기 동안의 실적을 기준으로 이자보상배율 1 이하는 2008년 7개에서 2009년 12개로 증가했다. 2008년 중 이자보상배율이 1 이하였던 7개 대기업집단 중에서 2009년 3분기까지의 실적을 기준으로 이자보상배율 1 이상으로 높아진 경우는 없었다. 이들 대기업집단의 취약한 재무건전성이 상당기간 지속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대기업집단에 속한 기업들은 지분관계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어 소속 기업 하나의 부실화는 다른 기업의 동반 부실화로 파급될 수 있다. 또한 전체 기업집단의 신인도가 하락하면서 우량기업의 자금조달도 어려워질 수 있다. 대기업집단에 속한 기업은 대개 차입금 규모가 커서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도 크다. 부채상환능력이 취약한 일부 대기업의 부실이 현실화된다면 펀드로부터의 자금유출, 신용경색, 금리상승, 금융기관 부실 증가 등이 초래되면서 금융시장이 한동안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8. 가계부채 부담 문제되나
2009년 3분기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규모는 713조원으로 2000년말 226조원 비해 445조원, 3.2배 증가하였다. 반면 같은 기간 중 우리나라의 명목 국내총생산은 603조원에서 1000조원 남짓으로 1.7배 증가하는데 그쳐 가계의 채무부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가계 이자지급 크게 증가
우리나라 가계의 순이자수입(이자수입-이자지급) 변화는 이러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가계는 남는 소득을 저축하여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저축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자수입이 부채에 대한 이자지급보다 큰 것이 일반적이다. 부동산 가격하락과 부채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 가계조차 이자수입이 이자지급보다 30% 정도 많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나라 가계는 이자지급과 이자수입이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2000년에 18조5천억이던 순이자수입이 2008년에는 1조5천억원으로 줄어들었다. 가계부채가 증가한 반면 가계자산에서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감소했음을 보여준다. 가계부채가 크게 증가한 데다 CD금리 등에 연동된 대출비중이 90%를 웃돌고 있어 2010년 중 시중금리의 상승으로 이자부담이 늘어날 경우 부채부담이 많은 가계들은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IMF의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금리가 1~3%p 상승할 경우 우리나라의 가계부실비율이 8.5~17%p 상승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계, 부채 많고 대출구조도 취약한 편
우리나라 가계는 소득에 비해서 부채의 규모도 많은 편이다. 가계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부채 수준은 그동안 꾸준히 상승하여 2009년 3분기 현재 1.35이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서도 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처분소득 수준은 크게 높은 편이다. 이 비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소득으로 금융부채를 상환하는 능력이 점차 저하됨으로써 가계의 신용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소득대비부채비율(DTI ; (월별 상환원금+이자상환금+각종수수료)/월 소득)이 40% 이상인 대출자의 비중이 11.5%에 달하고 DTI가 100% 이상인 차주도 1.6%에 달하고 있다.
부채구조 측면에서도 가계대출은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 가계대출의 30~40% 정도는 만기가 짧고, 이자만 부담하다가 만기에 원금을 일시에 상환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러한 대출을 받은 가계는 원금상환 기일이 도래하면 그 당시 금융상황에 맞게 이자율을 조정하여 새롭게 대출을 받거나 원금을 상환해야하는 자금재조달 위험(refinancing risk)에 노출되어 있다. 2010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일시상환형 주택담보대출만 하더라도 51조 5천억원에 달하고 이중 상당 부분이 가산금리가 현재보다 낮은 시기에 대출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만기 도래시 높은 금리를 감수하거나 자산을 매각하여 원금을 상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가계의 자산구성 측면에서도 취약성이 나타난다. 2006년 통계청 가계자산 현황에 따르면 가계 총자산의 75% 정도가 부동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가계의 자산 가운데 유동성이 떨어지는 부동산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부채 문제에 대한 대응능력이 떨어지고 자산처분시 가격하락의 위험도 높을 수 있다.
우리나라 가계가 자산 및 부채 측면에서 취약한 상황에 처해 있지만, 지난해 이후 금리인하로 지급이자/가처분소득 비율과 원리금상환부담(DSR: Debt service ratio)이 2008년 10월말에 비해 2/3 수준으로 하락했다는 점은 가계의 상환능력 제고에 도움이 되고 있다. 그리고 소득이 높은 계층에서 전체 가계부채의 60~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를 덜 수 있는 요인으로 보인다.
2010년 중 가계부문의 이자 및 상환부담이 증가하면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겠지만 경기회복과 함께 소득이 증가하고 고용사정도 나아질 것으로 예상되어 가계부채 문제가 우리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현재와 같은 만기일시상환 위주의 대출 구조는 자산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가계가 이자만을 부담하면서 원금상환은 최대한 늦추도록 함으로써, 금융부문의 리스크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은 주의가 필요하다. <끝>
출처:LG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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