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박승우의 미래의학
중앙일보
입력 2022.09.22 00:36
진료하는 의사로서 바쁜 일상이지만 세상의 변화를 알고자 아침마다 신문을 챙겨 보는 습관이 붙은 지 30년이 넘었다. 지난해부터는 병원 경영까지 맡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더 민감하게 되었다. 불안한 경제 현황과 각종 사고 기사를 보며 미간을 찡그리다가도 우리나라 소프트 콘텐트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내용을 볼 때는 미소가 번질 수밖에 없다.
최근 우리 의료계 역시 우수한 치료 성과 및 혁신 활동으로 해외 의료계에서 인정받는 또 하나의 한류가 되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미국 글로벌 주간지의 세계 병원 평가에서 우리나라 병원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전 세계 300여 병원, 4만여 의료계 인사들의 설문조사와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정되는 평가다.
특히 최근 신약이나 새로운 치료법의 발전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고, 전 세계 병원 간의 경쟁이 치열한 암치료 분야에서 우리나라 대표 병원들이 세계 6위, 7위로 각각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가슴 벅찬 감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순위가 절대적인 의료 수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내년이면 그 순위 또한 변할 수 있겠지만, 당분간은 한국 의료의 자부심을 뽐내며 기분 좋게 지내려 한다.
의료계도 글로벌 위상 높아져
암 치료 성과 세계적 인정받아
최근 디지털 혁신 영역도 두각
국가 발전의 새 동력 되길 기대
암은 여전히 치명적인 질환이지만 최근 우리나라 치료 성공률은 선진국 평균을 상회할 뿐 아니라 일부 영역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생존율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번 평가는 결코 과대평가된 것은 아니다. 암뿐만 아니라 소화기·비뇨기·신경 등 여러 분야에서 국내 병원들이 세계 유수의 병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글로벌 10위권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내 병원들이 높은 평가를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우수한 치료 성과다. 국가 경제 발전이 뒷받침되고 중증 환자가 우수한 의료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보험제도도 무시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도 의료진의 치열한 노력을 빼놓을 수 없다고 본다. 의료계는 다른 분야보다 우수한 인적자원이 많이 지원하지만 해외 박사학위 취득이 여의치 않아 대부분의 지식을 국내에서 흡수한다. 스스로 연마하고 난관에 부딪히면 동료나 해외 전문가와의 교류 등으로 풀어내서 이룬 성과라 더욱 의미가 크다.
필자가 소속된 대학교의 해외 박사 비율은 이공계 교수가 56.4%인 반면, 의대 교수는 2.2%에 불과하다. 대부분 의대 졸업 후 전공의 과정을 이수하면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니 해외 학위를 받을 기회가 낮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특별한 인연이 있지 않은 한 해외 석학들이 실제 접해 본 적 없는 한국 의료에 선입견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해외 학술대회에서 연구 논문을 발표하면 외국 전문가들이 어쩐지 미심쩍어하는 눈치여서 서운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그런 기억이 마음 한쪽에 남아 있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해외 의료계에서 한국은 6·25 전쟁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시아의 변방이었다. 1960년대에는 미국 미네소타 의대에서 한국 의사들을 연수시켜 주었다.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방한한 낸시 여사가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비행기 트랩에 올라가 미국 현지에서 살려내기도 했다. 그랬던 의료 후진국의 놀라운 시도에 외국에서 막연한 의심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지고 있다. 의료 선진국에서도 한국의 수술 기법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병원이 늘어나고 있다. 연구 성과뿐 아니라 임상시험 정확도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높은 의료 수준이 국격 상승과 함께 각인되면서 올바른 시선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또한 첨단 IT가 병원 현장에 접목되면서 의료 인프라 분야에서도 한국 의료계가 약진하고 있다. 올해 4월 미국 의료정보관리협회(HIMSS)가 검증하는 IT 인프라 인증 과정인 ‘인프람(INFRAM)’에서 우리 병원이 전 세계 병원 중 최초로 최고 등급인 7등급을 획득했다.
현재 세계는 새로운 경제 전쟁의 시대로 반도체에 이어 바이오 분야에서도 국가간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한국 의료분야 역시 바이오, IT 등 관련 산업계와의 시너지를 통해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의료계의 미래 의학으로의 발전 노력에 대해 관심과 격려를 아끼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린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한류 주역이 ‘K의료’ 가 되는 날이 머지 않았다.
박승우 성균관 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원장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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