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28] ‘생명연장의 꿈’을 전한 현대 면역학의 아버지
메치니코프는 1845년 러시아 남부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대단한 독서광으로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었다. 그리고 8살 때 이미 자신이 학자라고 생각했다. 자연 속에서 뛰놀며 생물들에게 관심이 많았던 메치니코프는 무언가를 발견하면 또래들에게 자신이 아는 신기한 지식을 가르치는 ‘애 선생님’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이미 지질학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1등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의사가 되려 했다. 그러나 의사보다는 연구자가 되어 인류를 위해 위대한 업적을 남기라는 어머니의 충고를 받아들여 크라코프 대학 자연과학부로 진학했다. 메치니코프는 거의 시험 날에만 나타나 벼락치기 공부로 언제나 1등을 하며, 불과 2년 만에 4년 대학 과정을 마쳤다. 어머니의 소망대로 하루빨리 인류를 구하고자 했던 그는 대학생 때 이미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한 천재였다.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그는 논리적인 연상 작용으로 글재주도 뛰어났다. 그가 쓴 논문은 소설처럼 재미있었다.
꼬마 독서광, 8세 때 이미 “나는 학자”
대학 졸업 후 메치니코프는 국가 장학금을 받아 독일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아 이탈리아로 옮겨가 불과 스물두 살 때 박사를 땄고, 3년 뒤엔 러시아 오데사대학 동물학과 부교수가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열렬한 사랑에 빠져 결혼했는데, 아내가 결핵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5년 후 세상을 떠났다. 메치니코프는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며 죽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모르핀 알약을 한꺼번에 먹는 바람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토해 목숨을 건졌다. 이후 삶의 의욕을 되찾은 뒤 연구에 몰두하여 유명한 상을 연속 3회나 수상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재혼한 두 번째 아내 올가마저 장티푸스에 걸려 심하게 앓았다. 이번에도 메치니코프는 다시 자살을 생각했다. “그래, 죽더라도 의학 발전에 도움이나 주고 떠나자. 장티푸스란 병이 피를 통해 전염되는지 내가 확인해 주지.” 그는 일부러 장티푸스 병에 걸린 환자의 혈액을 자신의 몸에 주입해 죽음 직전까지 갔으나 신기하게도 다시 살아났다. 이후 그는 삶에 무한한 애정을 품게 된다.
1881년 러시아의 알렉산더 2세가 암살당하자 유대인 박해가 본격화되었다. 메치니코프 역시 극단분자로 몰려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메시나로 이주했다. 그곳에 개인연구실을 꾸민 그는 동물의 발생 과정을 탐구하는 ‘발생학’을 연구 주제로 삼았다.
그러던 어느 날 투명 불가사리의 먹이 소화 과정을 관찰하다 체내를 자유롭게 옮겨 다니는 방랑 세포들이 침투한 이물질들을 에워싼 뒤 잡아먹는 것을 보았다. 그는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어 불가사리 유생(幼生)에 장미 가시를 찔러 놓았다. 다음날 그는 자신의 추측이 옳았음을 알았다. 사람 손에 가시가 박히면 고름이 생기듯 방랑 세포들이 가시 둘레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는 이 세포들을 ‘식세포’라고 명명했다.
그는 또 연상 작용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불가사리 체내의 방랑 세포들이 외부에서 침입한 먹이를 먹는다면 독성 미생물도 먹어 치울 것이다. 이는 해로운 미생물로부터 불가사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몸의 식세포(백혈구)도 틀림없이 세균들로부터 인간을 보호할 것이다.” 이렇게 그는 ‘식세포에 의한 세균 탐식설’을 정립하여 의학계에 보고했다. 현대 면역 이론이 최초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동물학자에서 느닷없이 병리학자가 된 그는 1888년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파리 파스퇴르연구소를 찾아갔다. 제너가 종두법을 시행하긴 했으나 병원체를 배양해 백신을 만든 건 파스퇴르가 처음이었다. 메치니코프는 무보수로 일할 자리가 있느냐고 물었고 파스퇴르는 즉각 그를 미생물 연구실 책임자로 앉혔다. 그는 식세포 연구에 몰입했다. 이후 건강이 나빠진 파스퇴르는 1895년 메치니코프에게 소장 자리를 물려주고 숨을 거뒀다. 1901년 메치니코프는 ‘감염성 질환과 면역’ 책에서 “식세포와 세균의 싸움이 면역의 기본이다”라는 ‘세포면역설’을 강하게 주장했다. 인체에 면역이라는 치유력이 내재되어 있다는 현대 의학의 개념을 처음 밝혀낸 것이다.
독일 면역학계와 선의의 경쟁
하지만 라이벌인 독일 코흐연구소는 세균에 대한 면역은 식세포가 아닌 혈청에 의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 선두에 ‘살바르산 606′ 매독치료제로 화학요법의 새 장을 연 유대인 생화학자 파울 에를리히가 있었다. 그는 항원항체반응 이론을 주장했다. 치열한 논쟁은 20년 넘게 계속됐다. 서로 간의 경쟁은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만들었다. 사실 프랑스는 식세포(백혈구) 작용에 의한 ‘선천면역’을, 독일은 항원항체반응에 의한 ‘획득면역’을 알아낸 것이었다. 이후 두 이론이 모두 옳다는 것이 밝혀져 오늘날 면역학의 기초를 이루었다. 이 공로로 메치니코프는 1908년 에를리히와 공동으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렇듯 면역학의 창시자는 의사나 의과학자가 아닌 동물학자와 생화학자였다. 인류의 ‘평균수명 연장’은 두 유대인 면역학자 덕분이었다.
이후 메치니코프는 동물학과 의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수많은 인명을 빼앗는 콜레라와 매독 백신 연구에 집중했다. 그는 콜레라 연구 중 장내 미생물의 역할에 주목했다. 콜레라균에 감염된 사람이 병에 걸릴지는 장내 미생물에 달려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를 임상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그는 콜레라균이 섞인 각종 오염된 물들을 직접 마시기도 했다.
요구르트의 세계화 이끌어
메치니코프는 매독을 연구하다 혈관을 뻣뻣하게 만드는 동맥경화가 노화를 촉진한다고 보았다. 이로써 노화방지 연구도 시작했다. 그는 장내 세균의 독소와 노화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성이 있음을 발견하고 장내 부패가 인간 노화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00세 넘게 장수하는 불가리아인들이 평소 요구르트를 많이 마신다는 사실에 착안해 유산균 연구에 몰두했다.
메치니코프는 1907년 ‘생명연장’ 논문에서 독성 균이 장내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과 숙변 물질로 독소를 만들어 수명을 단축시킨다면서, 불가리아 유산균이 젖산을 만들어 장내 독성 균들을 쫓아버린다고 주장했다. 그의 노화 방지 이론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 연일 신문들이 대서특필했다. 현재 세계에서 판매되는 요구르트는 메치니코프의 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메치니코프는 1910년 매독 치료제인 염화제1수은 연고를 발견했다.
메치니코프와 에를리히처럼 학문 간 경계를 뛰어넘는 통섭형 과학자들 덕분에 각종 백신이 발명됐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부터서야 인류가 전염병의 공포에서 해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 수명 늘린 면역학]
공기 중의 독이라던 전염병, 파스퇴르 “병원균이 원인”… 평균 수명 150년새 2배로
인간의 수명은 최근 150년 사이에 2배로 늘어났다. 150년 전 미국인 평균수명이 35세에서 40세 사이였다.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1936년 42세 평균수명에서 2020년 기대수명은 83.5세로 불과 80여년 만에 두 배에 이를 정도로 급속하게 수명이 늘어나고 있다.
그간 인간 수명의 최대의 적은 전염병이었다. 선진국에서조차 20세기 초까지 사망 원인이 거의 전염병이었다. 사람들은 수백 년 동안 전염병은 신이 내린 형벌 또는 공기 중의 독 때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만이 미생물이 병원균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1867년 프랑스 화학자 루이 파스퇴르에 의해 이것이 사실로 밝혀졌다. 당시 파스퇴르연구소에는 백신 개발에 기여한 유대인 연구원이 있었다. 바로 병원균을 잡아먹는 식세포를 최초로 발견해 면역학의 기초를 확립한 일리야 메치니코프였다.
이후 면역학 등 의학의 발달로 인류의 평균수명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평균수명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국가가 우리나라이다. 유엔은 향후 세계 최장수국으로 한국을 꼽았다. 평균수명의 증가는 다양한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과거에는 사람의 인생이 환갑을 전후해 끝났다면, 이제는 정년 이후 2막의 삶을 준비해야 하고, 앞으로 100세 시대에는 인생을 3막으로 나누어 설계해야 한다.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
출처 : 조선일보
기사원문 :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2/01/25/NQHVH3BJZRHIHGQQTU7SO37B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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