Майк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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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文化/침묵의 시간

두려움과 내적평화의 이중주

KBEP 2008. 12. 11. 01:13
두려움과 내적평화의 이중주

 

우리는 삶의 의미를 일상에서 찾아야합니다.

내적평화에 이르는 길은 우리의 태도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삶 가운데 나타나는 두려움은 내적평화에 이르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이 두려움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두려움의 감정을 피하기 위해 도망칠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움은 우리에게 변화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본 모습이 아닌 모습,

즉 남들에게 보이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합니다.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강한 척 연약한 모습을 감추려 가면을 씁니다.

이 가면은 한번 쓰기 시작하면 또 다른 가면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인간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삶 가운데 반복적으로 느끼는 두려움은 우리의 본성을 인정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두려움이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그 두려움을 우리는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 두려움에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대면하므로

우리를 위축시키며 고통을 안겨주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면서 거기에 머물지 않고 그 너머를 보아야한다는 데 있습니다.

두려움에 대한 승리는 그 너머에 있습니다.

승리가 있음을 확신하는 믿음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곳에서 자신은 결코 혼자가 아님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힘이 두려움에 직면했을 때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무엇으로부터 생겨난 것일까요?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이 괴물의 정체를 우리는 바르게 알아야합니다.

이 두려움은 하나님을 떠남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이 떠남이 인간들의 죄로 말미암은 내면의 깊은 상처를 안겨주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들이 겪는 아픔을 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우주 만물과 인간을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복을 주시고 그 창조하신 세계를 다스리게 하시며,

완벽한 아름다운 모습의 에덴동산에 두셨습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과의 친밀한 만남과 교제 가운데

인간은 참된 행복을 누리는 복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금하셨습니다.

그것은 동산의 모든 실과는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동산 중앙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금하셨을까요?

사람들은 의문을 갖기도 하고 불만족스러운 질문들을 합니다.

왜 선악과를 만들어 놓으셔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게 하셨는지?

선악과만 없었다면 인간은 죄로부터 죽음과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면서

하나님께 불평을 하기도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99개를 마음껏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 선악과만을 금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복을 주셨지만 피조물 됨을 잊지 않도록,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기억케 하시기위해서 금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경배의 대상이시며,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부인한 것이며,

우리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하나님을 거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거부한 인간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습니다.

 

다시 찾아오신 하나님께 반응한 인간들의 모습은 두려움과 수치심입니다.(창3:8-10)

그리고 하나님이 잘못을 묻는 질문에 오히려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며

서로에게 책임을 지우는 태도를 보입니다.

그리고 타락한 이후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에게 나타난 최초의 모습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시기심으로 비롯된 형제간의 살인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거부한 인간의 가슴 아픈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이렇게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름답게 창조하신 세상에게 행복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두려움이 없는 행복은 우리 모두 안에 원래 있었습니다.

두려움은 본래 우리 안에 존재한 감정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죄를 짓도록 유혹한 사단이 심어놓은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보다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유혹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고 우리를 속인 것입니다.

 

과연 사단이 약속한 것과 같이 그런 모습으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므로 하늘로부터 쫓겨난 타락한 천사,

사단은 거짓의 아비이며 우리 인간을 파멸로 몰고 가는 존재입니다.

이 세상의 화려한 파티를 차려놓고 유혹하지만 그 파티의 끝은 어떻습니까?

파티의 끝은 얼마나 추합니까?

사단에게 속은 인간은 이 끝난 추악한 파티자락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사단에게 속아 하나님을 거부한 순간 사망과 고통 가운데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하여 사망과 고통 가운데 있는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사

다시 회복하시기 위해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사망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를 이길 힘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먼저 직시하고 고백해야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요3:16)

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요1:12)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주 소중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두려움의 치유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지구상에서 유일하며,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 있습니다.

자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은 더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이 의미는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자신을 내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아는 사실-을 발견할 때

두려움과 상처 난 모든 감정들은 치유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두려움이 사라질 때 비로소 우리는 꿈(죄로 인하여 두려움 가운데 있는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갖게 됩니다.

이 꿈을 가진다는 것은 영혼에 날개를 다는 것입니다.

꿈을 가진 자가 행동합니다. 꿈을 가진다는 것은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도전입니다.

그러나 꿈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꿈이 성취할 결과를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꿈을 향한 우리의 태도에 따라 세상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죄로 인하여 사망과 고통에 신음하며

두려움에 쌓여 있는 영혼들을 향해 이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야할 책임을 부여 받은 것입니다.

꿈이 이루어지는 곳은 바로 우리가 서있는 그곳이기 때문입니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칼  럼  필  자 -백광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