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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garia Love/유럽 한국

불가리아와 남북한: 장미의 땅에 새겨진 복잡한 외교사

by KBEP 2025. 7. 9.

 

 

불가리아에 새겨진 남북한의 발자취: 장미의 땅에서 통일의 씨앗을 찾다

 

불가리아는 과거 남북 분단의 아픔을 겪었으나 7년 만에 자력으로 통일을 이룬 역사를 가진 나라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불가리아는 한국의 동유럽 진출에 있어 경제 및 인적 교류의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해왔습니다.

특히, 불가리아 내 한국 마트에 북한산 제품을 진열하는 작은 시도조차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나서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불가리아와 북한의 관계는 1950년대 북한 유학생 망명 사건으로 한때 악화되었으나,

1960년대 후반 소련의 영향으로 점차 개선되어 1980년대 중반까지 밀월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이 시기 불가리아의 토도르 지프코프 주석과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수차례 상호 방문하며 양국 간의 유대를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밀월 관계는 불가리아가 한국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졌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불가리아는 한국과의 경제 및 인적 교류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 불가리아 해운회사가 한국 현대와 계약을 모색하고, 한국인들의 불가리아 입국 비자 신청이 늘어났습니다.

1981년에는 불가리아 산업무역협회와 KOTRA가 협약을 맺고 불가리아 경제인 3인이 한국을 방문하는 등 교류 시도가 있었으나, 당시 북한을 의식한 불가리아 정부에 의해 좌절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88 서울 올림픽은 한국의 경제 발전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북한과의 경제 관계가 위축되고 정부 간 경제 협력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자, 불가리아는 건실한 한국 기업에 관심을 돌렸습니다. 1987년과 1988년에 KOTRA 사무소가 동유럽에 개소되고, 1988년 불가리아 산업무역협회 회장이 한국을 방문하는 등 교류가 활발해졌습니다. 마침내 1989 4월 소피아에 KOTRA 사무소가 개소되었고, 1990 3월 한-불 수교가 이루어지며 양국 간 무역 산업 위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이 KOTRA를 선봉으로 삼아 동유럽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사례로 평가됩니다.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불가리아는 2004 NATO, 2007 EU에 가입하며 서유럽 편입의 길을 걸었고,

북한과의 관계는 더욱 소원해졌습니다. 반면 한국은 경제 성장뿐만 아니라 K-Pop, 태권도, 한국어, 한국 영화와 드라마 등 문화 콘텐츠를 통해 불가리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과거 한반도에서 불어온 남북 관계의 훈풍이 소피아에도 전해져 북한 대사가 한국 대사관저 모임에 참석하는 일도 있었으나,

남북 관계의 정체로 인해 소피아 내 남북 접촉도 악영향을 받았습니다.

현재 소피아의 북한 대사관은 방역을 이유로 칩거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불가리아는 남북한과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한국과의 경제 및 문화 교류를 심화하며 발전해 왔습니다.

장미의 땅 불가리아에서 남북한 관계의 미래와 통일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shorts/rXwLIp1jPmc